‘웰컴투 삼달리’ 잘 망가지는 여배우 신혜선, 볼 맛 난다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 김재동 기자
발행 2023.12.03 12: 43

[OSEN=김재동 객원기자] 망가지는 게 볼 맛 나는 (젊은) 여배우는 많지 않다. 신혜선은 참 볼 맛 나게 잘 망가지는 여배우다.
드라마 ‘철인왕후’ 시절 꼰 다리를 달달 떨며 불량하게 손가락으로 코를 팔 때부터 범상찮더니 2일 방영을 시작한 JTBC 토일드라마 ‘웰컴투 삼달리’(극본 권혜주, 연출 차영훈·김형준)에선 과음으로 인한 도파민 과다분비의 폐해를 온 몸으로, 시청자조차 기가 차도록 시연했다.
신혜선의 배역 조삼달은 이제 등용문에 올라선 사진작가다. 세계적 패션잡지 파리매거진이 월드투어의 파트너로 선정했으니 월드투어를 마치고 나면 바야흐로 용이 되어 하늘을 주름잡을 찰나다.

송중기, 전지현, 김태희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셀럽들이 그녀의 모델이었고 그녀의 모델이 되길 원한다. 삼달은 사진작가 15년을 정리하는 의미에서 개명할 이름 ‘조은혜의 사람들’을 테마로 한 전시회를 앞두고 있다.
이렇게 좋은 일이 많으니 바야흐로 사자성어 ‘호사다마(好事多魔)’의 존엄이 빛을 발할 여건은 숙성됐다.
전시회 일정 탓에 늦은 일과를 마치고 남자친구인 매거진X의 편집자 천충기(한은성 분)에게 만나자는 문자를 보내보지만 천충기는 야근이란다. 삼달은 모범적인 여친답게 야식거리를 사들고 찾아간다. 그리고 천충기의 사무실 밖에서 천충기의 바람장면을 목도하고 만다.
순간적으로 찾아든 버퍼링. 삼달은 오히려 천충기의 눈에 띌까 몸을 숨기고 돌아 나오다 다리가 풀려 주저앉고 만다. 길 위에주저앉은 여자, 대책없이 흘러내린 긴머리칼 아래서 터져나오는 스산한 독백. 버퍼링은 끝났다. “나 이런 개빡시키를 씹어 먹어. 갈아먹어. 어서 개짓거리를..” 분노게이지가 상승 한도를 넘어 끝내 입으로도 터져온다. “넌 뒤졌어, 이 개새꺄! 뭔 할 짓이 없어서 바람을 펴! 이 년놈들을 그냥 확 씨”하며 달려들 듯 돌아서다 끝내 발길을 돌린다. 자고로 복수는 차게 먹어야 맛있는 법.
다음 날 매거진X 로비를 찾은 삼달은 여직원들을 상대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천충기의 머리 위로 곰팡이 펴 버리려던 엄마표 물김치를 쏟아붓는다.
발작하려는 천충기를 손가락으로 만류하며 쏟아붓는 독설도 예술이다. “주둥이 열지 말지. 그냥 전 여친한테 물김치 쳐맞고 차인 찌질이로 소문 날려면? 바람피다 걸려서 물김치 쳐맞은 쓰레기 보단 낫잖아?”
미소 띈 채 한숨에 쏟아낸 이 대사는 신혜선의 완벽한 딕션에 힘입어 고막을 파고든 후 신혜선이 자리를 박찰 때쯤 이해된다.
천충기의 불륜상대가 밝혀졌다. 삼달의 4년차 퍼스트 어시스턴트 방은주(조윤서 분)다. 시기와 질투에 매몰된 방은주가 남친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내상 흔적 하나 없는 삼달이 얄미워 스스로 정체를 밝혔다.
“너 똥 밟아봤니? 밟았을 땐 기분 더럽고 짜증나는데 그렇다고 내 하루를 망칠순 없잖아. 얼른 닦고 내 일 해야지... 니들이 똥이라고 나한테.”
모진 소리로 매조졌지만 상처가 없을 순 없는 일. 혼술로 위로받아보려 찾아든 술집에서부터 삼달의 주정이 시작된다. 약 3분간의 술주정. “친구도 없이 왜 맨날 혼술이냐?”는 주인장의 지적에 전화번호를 뒤적여보지만 불러낼 사람이 없다. 전지현은 광고 찍기 바빠서 안되고, 매트리스 선전하는 김태희는 잘 시간이라서 안되고... 결국 삼달의 수많은 친구들은 그녀가 외롭고 슬플 때 불러낼 수 없는 친구들였다.
언니 조진달(신동미 분), 동생 조해달(강미나 분), 조카 차하율(김도은 분) 앞에서 펼친 집에서의 2차 술주정 장면은 2분 10여초간 이어진다.
“왜 나한테 안미안해? 미안해해야지, 사과해야지? 멀쩡히 보이면 안미안해해도 되는 거야. 그럼 뭐 막 질질 짜기라도 할까? 나도 속상하고 자존심 상하고 나도 화 난다고오오오.. 아 진짜 내가 지들한테 얼마나 잘해줬는데에.”
방은주는 성공했다. 삼달의 취중진심은 그녀가 얼마나 상처받고 아파하는 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신혜선의 연기엔 리듬이 있고 강약이 있다. 정박도 있고 엇박도 있다. 배우가 자신만의 리듬으로 시청자들에게 대사와 대사가 품은 감정을 잘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성취다. 신혜선은 그런 의미에서 성공한 배우다.
자신이 조삼달 상처주기에 성공한 줄 모른 방은주는 한발 더 나가 투신쇼를 연출한 후 직장 내 갑질 주범으로 조삼달을 지목한다. 그녀를 찬양하던 세평은 한순간에 돌변한다.
파리매거진의 월드투어에선 탈락했고 사진작가 세월 15년을 중간 정산하는 사진전 ‘人, 내 사람’전은 삼달이 내 사람이라고 믿었던 모델들의 거부로 사진들을 내려야 했다.
“개천으로 돌아가지 않으려구요. 어렸을 때부터 꿈이 ’개천에서 난 용‘이었거든요. 제주라는 개천에서 난 용이요. 그래서 개천으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이 악물고 버텼습니다.”
잡지 인터뷰에서 ‘4년도 못버틴다는 혹독한 어시생활을 8년이나 버텼다. 어떻게 버텼나?’란 질문을 받았을 때 삼달이 한 말이다.
하지만 승천하다 추락한 용이 돌아갈 곳은 개천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개천 제주에는 영원한 삼달의 개천이고자 하는 조용필(지창욱 분)이 있다.
똘기 있는 순정남 조용필과 서울살이 버티다 버티다 숨이 다해 숨고르러 찾아온 조삼달의 18년 만의 재회. 연기 잘하는 두 배우의 앞으로의 케미가 자못 기대된다. 개인적으로는 신혜선이 회당 한 번 꼴로는 망가져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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