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거전'·'서울의 봄', 어떤 과거는 현재진행형이다 [Oh!쎈 펀치]
OSEN 연휘선 기자
발행 2023.12.04 22: 12

 여요 30년 전쟁에서 고려의 비장함을 살린 '고려 거란 전쟁', 12.12 쿠데타의 내막을 재구성한 '서울의 봄', 병자호란 피난민과 포로의 아픔을 다룬 '연인'까지. 드라마와 영화를 막론하고 과거 역사를 살아 숨쉬게 만든 작품들이 호평받고 있다. 명품 연출과 호연을 만나 되살아난 과거사가 현재 대중에게도 울림을 남기는 중이다.
# '고려 거란 전쟁', 흥화진 늑대 양규 백성들의 영웅으로

최근 방송 중인 KBS 2TV 대하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약칭 고거전)'에서는 흥화진의 늑대라 불리는 양규(지승현 분)가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극 중 양규는 소수의 병력으로 성도 아닌 산성 흥화진에서 40만 거란대군을 막아내며 사투를 벌인 고려 장수다. 그는 활쏘기와 같은 유려한 전투 실력부터 수성 등의 공성전까지 능한 유능한 장수로 묘사되는데, 그 중에서도 시청자들을 감동시키는 지점은 양규가 유독 고려인 포로들을 살리기 위해 분투한다는 점이다. 
실제 역사에서도 양규는 고려인 포로들 구출에 힘썼던 명장이다. 거란군과의 국경지대인 강동6주에서도 압록강 최전선 흥화진을 지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통주, 귀주 등 곳곳에서 고려인 포로들을 구출해냈다. 역사 속 그의 최후 또한 고려인 포로들의 도주를 돕고 거란군의 추격을 막으려다 전사하는 것인 바. '고거전' 속 포로 구출에 목숨을 건 양규의 묘사가 과장이 아닌 셈이다. 
# 병자호란도 인조VS소현세자 아닌 '포로'에 맞췄던 '연인'
지난 달 인기리에 종영했던 MBC 드라마 '연인'은 조선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삼았다. 주된 이야기는 두 남녀 주인공 이장현(남궁민 분)과 유길채(안은진 분)를 중심으로 한 애틋한 멜로였으나, 이들의 이야기를 병자호란과 정교하게 엮어내는 점에서 호평받았다. 
다양한 작품에서 병자호란은 삼전도에서 굴욕을 겪은 열등감에 찌든 왕 인조와 그에게 희생당한 아들 소현세자의 이야기로 그려졌다. 실존하는 역사인 데다가 아버지와 아들의 대립, 왕과 왕자의 갈등이라는 점에서 '연인'에서도 이는 피할 수 없는 소재이긴 했다. 그러나 결코 중심은 아니었다. 오히려 '연인'이 주목한 것은 그 사이 희생당한 조선의 포로들 이야기였다. 전란에 끌려갔던 조선의 포로들은 인조와 소현세자의 정치적 분쟁 사이 조국에서도 애물단지 같은 신세들로 전락했다. 속환에 목숨을 걸어야 했던 '연인' 속 심양 이야기가 유독 시선을 끌었던 이유다. 
# '서울의 봄', 현대사 비극의 재해석
'고거전'과 '연인'이 직접적으로 피지배층 백성들의 애환을 어루만진 드라마라면, 영화 '서울의 봄'은 12.12 군사반란이라는 현대사 사건을 김성수 감독의 상상력으로 재해석해 풀어낸다. 영화는 1979년 12월 12일, 서울에서 총성이 울려퍼지던 밤 9시간의 사투.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로 빗겨간 역사의 심판을, 오히려 실화에 입각하지만 독창적인 이야기로 전개해 새로운 울림과 재미로 호평받는 중이다. 
그 반응이 유독 뜨거운 것이 '서울의 봄'은 개봉 12일 만인 지난 3일 4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최근 국내 극장가가 유독 침체기인 것을 감안하면 더욱 괄목할 만한 수치다. 배우 황정민과 정우성 등 출연진의 연기 열전도 볼만 한 데다 비교적 최근의 역사적 사건인 12.12 군사반란을 자유롭게 풀어낸 감독의 시각이 큰 동조를 얻는 모양새다. 
# 왜 '과거'는 '현재'를 울리나
'고거전'부터 '연인', '서울의 봄'까지 일련의 작품들은 각기 다른 시대를 다루고 다른 장르로 감동을 선사하지만 동시에 모두 과거 역사 속 한 페이지를 현재 2023년의 시청자들에게 재현시키고 있는 작품이다. '고거전'에서는 지난했던 30년 전쟁 속 국난의 참상을, '연인'에서는 돌아와서도 편하지 못했던 포로들의 애환을, '서울의 봄'에서는 심판하지 못해 해석해내야 한 9시간의 사투를 그려낸다. 각각의 역사는 작품 안에서 핵심 사건으로 구현되며 동시에 당시의 처절했던 한복판으로 보는 이들을 소환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인물로 대변되는 소위 '캐릭터 해석'이 보는 이들을 열광하게 한다. '고거전'의 경우 양규 뿐만 아니라 강감찬(최수종 분)이라는 귀주대첩 승리의 주역 또한 단지 한 대회전에서의 장수가 아닌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승리에 미친 광기의 소유자로 그려낸다. '연인'에선 목숨 걸고 고향에 돌아왔지만 '환향녀' 취급을 받은 유길채를 이장현이 "안아줘야지"라고 포용하며 단순한 멜로 이상의 감동을 선사했다. '서울의 봄'에서는 이태신(정우성 분)이라는 '참군인'이 욕망의 화신 전두광(황정민 분)을 막아서려는 모습으로 유사한 울림 포인트를 남기기도.
이들은 현재 대중이 원하는 인물상과 다름 아니다. 양규처럼 목숨을 걸고 과업을 해내거나 강감찬처럼 '승리'라는 최선의 결과를 향해 분투하는 유능한 관리, 경력은 없어도 백성들 앞에 진심으로 소통하려는 고려 현종(김동준 분) 같은 지도자를 꿈꾸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 이장현처럼 유길채와 같이 타인에 의한 피해에 상처받은 여성을 같이 흠집내지 않고 감싸주는 남성상도 마찬가지. 역사로도 심판하지 못한 사건에서도 분투하는 이태신은 실존인물에서 모티브를 삼았다는 게 믿겨지지 않을 지경이다. 시청률과 관객수 기근인 최근 한국 대중문화산업에서 10% 안팎의 시청자들을 열광하게 하고, 400만 명이 넘는 관객들을 울컥하게 만든 이 작품들이 단지 과거사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처럼 풀이되는 이유다. / monamie@osen.co.kr
[사진] KBS, MBC,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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