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그들이 최고의 상태가 아닐 때 우승할 수 있다" 야망 잃은 꿀벌 군단, 유럽을 뒤흔들던 낭만과 패기는 이젠 옛이야기 [정승우의 분데스토리]
OSEN 정승우 기자
발행 2023.12.05 11: 59

2023-2024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죽음의 조'로 꼽힌 F조에서 가장 먼저 16강 진출을 확정 지었지만, 낭만과 패기, 젊음으로 무장했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성적과 재정 문제 어려움으로 신음하던 15년 전 도르트문트에는 젊은 감독이 새롭게 지휘봉을 잡았다.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FSV 마인츠 05 등에서 수비수로 활약했던 젊은 감독은 2010-2011시즌, 2001-2002이후 9년 만에 다시 도르트문트에 마이스터샬레(분데스리가 우승 트로피)를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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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키커'는 지난 2011년 5월 15일 "도르트문트의 거리는 '비상사태'에 가까웠다. 차량이 통제됐고 수많은 사람들이 도로에 모여들었다. 그리고 '젊은 감독' 위르겐 클롭은 구단 버스 위에서 목청껏 노래 불렀다"라며 도르트문트의 분위기를 전했다. 
한동안 도르트문트의 전성기가 펼쳐지는 듯했다. 2010-2011시즌에 이어 2011-2012시즌까지 분데스리가 챔피언에 올랐다. 2012-2013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레알 마드리드, 아약스, 맨체스터 시티와 한 조에서 당당히 1위에 오르며 결승까지 단숨에 내달렸다. 비록 결승전에서 뮌헨에 패배했지만, 이들은 유럽에서 가장 매력적인 젊은 팀으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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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은 강했다. 클롭 감독이 부진 끝에 팀을 떠났고 도르트문트에는 토마스 투헬, 페터르 보츠, 페터 슈퇴거, 뤼시앵 파브르, 마르코 로제 감독이 차례로 지휘봉을 잡았다. 도르트문트는 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계속되는 주요 선수들의 이탈과 잦은 사령탑 교체로 좀처럼 기회는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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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뮌헨은 10회 연속 리그 우승(2012-13, 2013-14, 2014-15, 2015-16, 2016-17, 2017-18, 2018-19, 2019-20, 2020-21, 2021-22)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그전까지도 이미 21회 우승을 기록했던 뮌헨은 독일 최고의 클럽으로 더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과거 리그에서 단독 질주를 펼쳤던 뮌헨은 일반적으로 리그 종료를 여러 경기 남겨둔 상황에서 리그 우승을 확정 짓는 상황이 많았다.
하지만 에딘 테르지치 감독이 도르트문트를 이끈 지난 2022-2023시즌은 달랐다. 리그 최종전을 앞두고 도르트문트는 승점 70점으로 1위 자리에 있었다. 2위 뮌헨은 승점 68점을 기록, 자력 우승이 물 건너간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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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도르트문트는 마인츠에 승리하지 못했고 뮌헨이 쾰른을 잡아내면서 역전 우승을 허용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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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로 만든 '마이스터 샬레'를 들고 경기장을 찾은 어린 소년은 이 '종이 샬레'를 내팽개치고 경기장을 떠났다. 선수들은 충격에 빠졌고 81,365명의 관중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충격적인 준우승을 뒤로 하고 다시 우승에 도전하는 도르트문트다. 스타 플레이어를 영입하기보다 어린 선수를 키워내며 스타를 발굴해 온 도르트문트는 제이든 산초, 엘링 홀란을 차례로 매각했고 2023-2024시즌 개막에 앞서서는 팀의 중심을 잡아 오던 주드 벨링엄까지 레알 마드리드에 넘겼다. 그런데 2023-2024시즌, 도르트문트는 크게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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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보기엔 큰 문제가 없다. 챔피언스리그 '죽음의 조'에서 뉴캐슬 유나이티드, 파리 생제르맹(PSG), AC 밀란과 경쟁해 가장 먼저 16강 진출을 확정 지었고 리그에서는 5위를 달리고 있다. 2위 뮌헨과 승점 차는 7점이다. 
진짜 문제는 자세히 살펴보면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번 시즌 도르트문트는 경기 결과와 별개로 매 경기 최악에 가까운 경기력을 보여준다. 지난 11월 8일 뉴캐슬과 맞붙었던 경기에서는 뛰어난 경기력을 보여준 것이 맞지만, 다른 경기는 그렇지 못하다. 단순한 패스만 선보이고 매섭고 날카로운 장면은 찾아보기 어렵다. 패기롭게 압박하고 빠르게 역습하던 모습은 이제 남아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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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력보다 더 큰 문제는 수뇌부의 마음가짐이다. 지난 2005년 도르트문트 수뇌부에 부임한 한스-요아힘 바츠케 CEO는 팀의 레전드인 미하엘 초르크 단장과 함께 2000년대 어려움을 겪었던 도르트문트를 부활시킨 '주역'으로 큰 지지를 받았다. 2008년 클롭 감독을 영입한 이도 바로 바츠케 CEO다.
그러나 이제 바츠케에겐 야망이 없는 모양이다. 독일 '루어 나흐리히텐'에 따르면 그는 지난 3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린 뮌헨이 최고의 상태가 아닌 시즌에만 우승할 수 있다. 언젠가 그런 시기가 또 올 것이다. 뮌헨이 매년 선수 영입에 2억 유로(한화 약 2,830억 원)를 투자하는 상황에서 우리에겐 우승 기회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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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결과가 어떻든 늘 같은 자리에서 열렬한 응원을 보내던 팬들의 힘을 말 그대로 '쭉' 빼놓는 말이다. 'Echte Liebe', '진정한 사랑'이라는 구단의 슬로건이 민망할 정도다. 시즌이 절반도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 패배선언을 남겼다. 과거 패기와 낭만, 젊음으로 똘똘 뭉쳤던 '꿀벌 군단' 도르트문트는 사라진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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