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지훈이 ‘이재, 곧 죽습니다’ 촬영 비하인드를 전했다.
12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는 티빙 ‘이재 곧 죽습니다’(이하 ‘이재, 곧’) 배우 김지훈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이재, 곧 죽습니다'는 최이재(서인국 분)가 사는 동안 좌절만 겪다가 결국 스스로 삶을 포기하고 죽음(박소담 분)의 형벌을 받아 12번의 삶과 죽음을 겪게 되는 이야기를 그렸다.
인간의 목숨이나 가치를 하찮고 같잖은 것으로 치부하는 소시오패스 재벌 박태우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 김지훈은 “촬영을 한 6~7개월 정도, 정말 길게 했다. 출연 배우가 10명 이상 되는 데다가, 저는 계속 여기저기 출연해야 해서 촬영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함께했다. 주인공인 최이재보다 촬영을 늦게 끝냈고, 마지막 촬영도 제가 했다”라고 회상했다.
그는 “마지막 촬영이 태우가 운전을 하다 멈춰서 도로 위에서 사람을 죽이는 장면이었다”라면서 “(촬영이 길어져서) 더더욱 힘들었다. 나쁜 X인 태우로 있어야 하는 시간이 계속 길어지다 보니까, 굉장히 힘들었다. 촬영 스케줄도 중간에 계속 변수에 의해 바뀌다 보니 그랬다. 촬영 기간을 쭉, 찍은 것도 아니고, 대기했다가, 미뤄졌다가, 촬영가고, 그런 거다. 맘 편히 쉬었다가 가는 것도 아니고. 제 할거하면서 기다릴 수가 없었다”라고 돌아봤다.
김지훈은 첫 출연 제의를 받았던 때를 떠올렸다. “박태우는 드라마에서 만나기 힘든 정말 강한 캐릭터였다. 그전에도 악역을 몇 번 했는데, 태우는 너무 매력적인 악역이라고 생각을 했다. 흥미진진한 스토리 안에서 이야기의 중심축을 이루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본을 읽고 처음부터 흥미진진하게 이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었는데, 결국 나중에 보면 태우가 캐릭터의 모든 죽음에 관여하고 있었지 않았나. 전지전능한 것처럼 보이는 캐릭터이다 보니, 더욱 범접할 수 없는 매력과 카리스마가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했다”라고 전했다.
더불어 김지훈은 원작 웹툰을 성공적으로 각색해 낸 하병훈 감독에 대해 “정말 대단하신 것 같다. 박태우도 원작에 없던 역할을 끼워 넣은 거지 않나. 이 재미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교묘하게 원작의 재미도 살리면서,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내셨다”라면서 “사실 처음 대본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제가 소름 돋았던 부분은, 이재가 회사원으로 다시 태어났는데, 그게 다시 이재의 과거로 맞물리지 않았나. 원래 원작에서는 수직으로 끝나는 이야기를 무한 회귀물 처럼 각색하셨다. 동시에 이재의 잘못에 대한 죄책감을 가중시키는 기발한 설정이, 정말 소름이었다”라고 언급했다.
이어 “동시에 걱정도 있었다. 대본을 보고 ‘감독님이 정말 하고 싶은 걸 다 쓰셨구나’ 싶었다. 대본만 보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인데, 드라마에서 표현이 가능할까 싶었다. 감독님께서도 그런 스펙타클한 연출을 한 경험이 없으시다 보니까. 그런데 그 우려를 다 불식시키셨다. 결과물을 봤을 때 ‘감독님은 다 계획이 있으셨구나’ 싶었다. 무한의 ‘리스펙’을 보내고 싶다”라고 말했다.
촬영 전 작은 에피소드도 전했다. 김지훈은 합류 계기에 대해 “감독님이 먼저 제안을 해주셨었다. 당시 제 머리가 꽤 긴 상태였는데, ‘이 역할을 하면서 머리를 잘라줄 수 있겠냐?’ 했었다. 역할을 맡은 사람으로서도 긴 머리를 고집하는 게 너무 말이 안 됐다. 한 그룹의 후계자, 재벌이니, 삼성 이재용 회장님 같은 느낌 아닌가. 그런데 장발을 한다는게, 아무리 제 연기로 커버하려 해도 안 되겠더라. 그래서 자르기로 결심했었다. 그렇게 다음번 리딩을 가서서 ‘머리 자르겠습니다’라고 했더니, 감독님이 ‘그냥 길러도 될 거 같아요’ 하시더라. 저를 배려해 주신 거다. 물론 결과적으로 자르긴 했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김지훈은 “태우를 연기하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는 “박태우를 생각해 보면, 극 중 서사가 그렇게 많이 주어지지 않는다. 등장부터 아무 이유 없이 사람들을 죽인다. 연기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행동만이 보이는 장면들만 가지고 인물을 만들어 낼 수가 없다. 인물은 어쨌든 인간이지 않나. 박태우도 인간이다. 사람들은 장면들만 봐도 그 인물이 무섭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만드는 입장에서는 결과를 위한 뿌리를 만드는 작업을 해야 한다. 그래야 해당 인물이 붕 뜨지 않고, 사람들이 봤을 때도 실제 인물처럼 느껴질 거다. 그래야만 캐릭터가 무서울 수 있고, 공감이 가야 매력이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런데 태우는 그런 서사가 친절하게 주어진 캐릭터가 아니었다. 없는 가운데 대본을 계속 즙을 짜듯이 했다. 저에게 주어진 게 대본밖에 없고, 원작에도 없는 캐릭터기 때문”이라며 “얼마나 (대본을 통해) 캐릭터의 서사를 찾아냈냐면, 감독님이 ‘원래 그런 설정이 있었는데, 어떻게 아셨어요?’라고 놀라기도 할 정도였다. 예를 들어 아버지와 동생과의 관계 같은 것들이었다. 원래 대본에는 좀 더 깊이 있는 장면들이 있었는데 각색 과정에서 빠졌다고 하더라. (그런데도) 저는 대본에 남은 느낌으로 캐릭터를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촬영하면서도 계속 감독님과 회의를 정말 많이 했다. 캐릭터에게 주어진 게 많이 없다 보니, 저의 상상력이 많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저는 이 역할을 좀 더 무섭고, 소름 끼치게, 악역의 매력들을 더 살리고 싶은 욕심들이 있었다. 기왕 악역을 맡았으니, 더 무서워했으면 좋겠고, 인상에 남았으면 했다”라면서 “물론 항상 그랬듯이, 만족스럽기도 하고 아쉬운 것도 있다. (회차가) 빨리 지나가서 허무한 점이 있다. 5~6회에 제가 중점적으로 나오는데, 만족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다른 걸 떠나서 너무 빨리 끝나서 아쉬웠다. 나의 노력과 시간이 이렇게 끝났구나, 해서 허탈함이 컸던 거 같다”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캐릭터에 대한 중압감도 있었다. 김지훈은 “박태우의 부분이 마지막 이재 어머니의 이야기로 넘어가기 전에 시청자들을 정신 못 차리게 만들어야 하는 구간 아닌가. 롤러코스터로 치면, 가장 절정에 달하는 부분을 제가 맡은 거다. 어쨌든 다른 분들은 한 회씩 죽으면 퇴장했는데, 박태우는 최이재의 환생이 아니니 계속 존재하면서 여기저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책임감이 크기도 했다. 리딩할 때나 촬영할 때나, ‘여기서 잘 못하면 내가 정말 창피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서 더 목숨을 걸고 했다”라고 고백했다.
결말에 대한 생각도 전했다. 극 중 끔찍한 악행을 저지르던 박태우는 두 다리를 잃고 식물인간 상태로 평생 살아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해당 장면에 대해 김지훈은 “사실 되게 신기했다. 촬영 당시에는 파란색 쫄쫄이를 입었었는데, CG가 너무 감쪽같아서 ‘내가 저랬나?’ 헷갈릴 정도였다. 정말 위화감이 없더라”라면서 “(최후의 모습에 대한) 꺼리는 마음은 없었다. 얼마든지 더 망가져도 괜찮았다. 박태우의 최후가 처참할수록, 망가질수록, 불쌍할수록 좋다고 생각했다. 태우에게 그 최후는 죽음보다 더 가혹한 형벌을 받았다고 생각한다”라고 떠올렸다.
다만 마지막 회차서 최이재는 자살하기 직전, 옥상에서 눈을 뜨며 다시 한번 살 기회를 얻게 되는데, 열린 결말로 인한 일부 시청자들의 아쉬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런 반응에 김지훈은 “아무래도 판을 많이 벌여놨다 보니, 모두를 만족시키는 결말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는 이 정도면 준수하다고 생각한다. 열린 결말이기도 하고, 이재가 자기 잘못을 크게 뉘우치지 않았나. 크게 반성하는 사람에게는 기회를 주는 게 인지상정이기도 하고. 신이 너무 가혹한 것도 슬픈 일 아닌가. 신으로서 아량을 베푸는 결말도 좋다고 생각한다”라고 소신을 드러냈다.
MBC '얼마나 좋길래'(2006), tvN '이웃집 꽃미남'(2013), SBS '결혼의 여신'(2013), MBC '왔다! 장보리'(2014) 등에 출연했던 김지훈은 그간 엄친아, 대기업 부사장과 같은 역할로 주말드라마에 얼굴을 비췄다. 이후 tvN ‘악의 꽃’(2020)을 시작으로 넷플릭스 영화 '발레리나'(2023) 등에서 강렬한 악인 연기로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연이은 ‘빌런’ 캐릭터 활약에 대해 김지훈은 “사람들이 보기엔 비슷한 악역처럼 보이더라도, 저는 사실 모든 캐릭터가 다 다른 느낌이다. 다만 악역을 했을 때는 연습하고 준비하는 과정이 힘들다. 제가 평소에 지을 필요 없는 표정과 느낌을 만들어내야 하다 보니, 거울을 보면서 연습을 굉장히 많이 한다. ‘이재, 곧’ 촬영 중에도 안 쓰던 근육을 써야 하다 보니 한동안 목에 담이 걸리기도 했다. 사실, 악역이 아닌 역할을 더 편하게 잘할 수 있다”라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최근 ‘빌런’ 캐릭터로 시청자에게 자주 모습을 비추게 된 김지훈. 다만 그는 연이은 악역의 활약은 의도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는 “제가 들어오는 작품 중에서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작품, 역할을 선택하다 보니 그게 결과적으로 악역인 것뿐”이라며 “‘이재, 곧’도 보자마자 ‘미쳤네!’ 싶었다. 회사에서는 당시 1~2회 정도만 대본이 나와 있으니 미지근하게 ‘한번 확인해 봐’라고 하셨는데, 저는 보자마자 ‘미쳤는데’ 싶었다. 정말, 8회는 볼 때마다 아직도 폭풍 오열을 한다. 처음 대본을 읽고, 리딩을 할때. 그리고 드라마 볼 때마다 8회는, 진짜 기절한다. 게다가 역할까지 매력이 있으니까, 무조건 해야 한다 싶었다. 그렇게 결정하고 보니 악역인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지훈은 “아무리 그래도 전 작품인 ‘발레리나’를 포함한 이전 작품에서 악역을 연기했던 것을 생각을 안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히려 그 이미지를 깨고 싶었다”라면서 “차기작이 또다시 악역이어도 저는 상관없을 것 같다. 제가 (비슷한) 악역을 계속한다고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모든 사람이 늘 같은 의견을 내진 않지 않나. 그러니 그런 걸 신경 쓰기보다는, 정말 작품을 보고 ‘이건 정말 좋은 이야기다’라는 확신이 생긴다면 악역을 계속하는 것도 그렇게 못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쉬운 연기는 없었다”고 돌아본 김지훈은 원하는 차기작 장르로는 ‘코미디’와 ‘멜로’를 꼽아 눈길을 끌었다. “어렸을 때부터 저는 코미디를 정말 좋아했다. 옛날 인터뷰 때도 말했는데, 주성치와 짐 캐리가 저의 10~20대 때 영향을 많이 끼친 배우들이다. 사실상 코미디적인 요소를 보여드릴 일이 별로 없었던 것 같은데, 나중에 좋은 기회와 작품이 있다면 해보고 싶다”라며 “멜로적인 부분도 연륜이 쌓이다 보니까, ‘이제는 정말 잘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좀 든다”라고 웃었다.
2002년 KBS 드라마 ‘러빙 유’로 데뷔한 김지훈은 올해로 데뷔 23년 차를 맞이했다. 그간의 배우 생활을 돌아본 김지훈은 “정말 오래 했구나, 싶다. 벌써 23년 차라니. 내가 데뷔한 게 맞나, 싶은 정도다. 진짜 긴 시간인데, 저에게는 길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신기하다. 저는 정말 연기자로서 거의 0에서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 전부터 연기자의 꿈을 키운 게 아니라 연기를 하면서 처음 연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내가 정말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그러면서 “‘이재, 곧’은 제 필모에 굉장히 내세울 만한 작품이 될 것 같다. 박태우라는 캐릭터도 제 필모에 굉장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 드라마를 본 시청자분들께도 인생작으로 자리 잡을 분들이 많을 거 같다. 열심히 한 만큼 보람을 느끼는 작품”이라며 “올해는 어떻게 될지 아직 정해진 게 아무것도 없어서. 어떤 재미있는 일이 생길까, 기대하면서 있다. 주어지는 일이 있으면 열심히 하려 한다. 연기자는 항상 늘 새로운 시작이다. 어떤 역을 하든지, 새로운 작품, 새로운 역이다. 캐릭터를 만드는 과정을 겪지 않으면 안 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이런 걸 20년 이상 했지만 걱정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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