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스티븐 연이 욱일기 논란을 딛고 자랑스러운 한국계 배우로 거듭났다.
스티븐 연은 16일(한국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피콕 씨어터에서 열린 제75회 에미상 시상식(Emmy Awards)에서 넷플릭스 시리즈 ‘성난사람들(BEEF)’로 TV 미니시리즈·TV 영화 부문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태론 애거튼, 다니엘 래드클리프, 마이클 섀넌 등을 제치고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무대에 오른 스티븐 연은 “큰 영광이자 축복이라 생각한다"며 "이 자리에 있도록 지지해 준 분들이 많다. 솔직히 대니로 살아가기 힘들었지만, 대니에게 고맙다. 편견, 수치심은 외롭게 만들지만 동정은 우리를 하나로 모이게 만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힘든 시절이 있었지만, 많은 가르침을 주셨고, 판단 능력을 줬다. 부끄러움을 느끼는 건 쉽지만, 남에게 공감하는 건 어려운 일인데 그 방법을 저에게 알려준 분들에게도 감사하다. 아내 조아나 박에게 이 영광을 돌린다”는 소감을 덧붙였다.
스티븐 연은 한국계 미국인 배우로 할리우드에서 활약 중이다. 2005년 데뷔해 여러 작품에 출연해 오다 '워킹데드'에서 주요 등장인물인 글렌 리 역을 맡아 할리우드에서 입지를 다졌다. 한국어 연기도 가능해 ‘옥자’, ‘버닝’, ‘미나리’에서 국내 팬들도 사로잡았다.
무엇보다 ‘미나리’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아시아계 미국인 배우 최초라는 기록을 세웠다. 아쉽게 트로피는 놓쳤지만 ‘놉’, ‘러브 미’, ‘미키17’로 자신의 존재감을 확장시켰고 ‘성난 사람들’로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에 이어 에미상까지 휩쓸었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힘든 시절이 있었다. 2018년 5월 영화감독 조 린치가 어린 시절 욱일기 패턴의 옷을 입고 찍은 사진에 ‘좋아요’를 눌렀다가 국내 팬들에게 맹비난을 받은 것. 한글 사과문과 영어 사과문을 자신의 SNS에 올렸지만 워낙 민감한 상황이라 뿔난 민심은 차가웠다.
‘전 세계 전범기 퇴치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서경덕 교수가 “한국어로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지만, 영어로 된 사과문에서는 자칫 ‘인터넷 상에서의 실수 한 번으로 사람을 재단한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스티븐 연 욱일기 사태 진심으로 반성하세요”라고 일침을 가해 더욱 논란은 커졌다.
결국 스티븐 연은 “저의 무지함으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것에 대해 정말 죄송하게 생각한다. 저의 실수, 특히 어떤 방식으로든 가볍게 다루어서는 안 되는 역사의 상징에 대한 부주의가 얼마나 사람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치는지 배우게 됐다”고 2차 사과문을 올렸다.
특히 그는 “한국계 미국인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이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야 함에도 그러지 못한 점 다시 한 번 사과드린다. 이번 일이 제게는 중요한 배움의 과정이 되었다. 다시는 이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것을 약속드린다”며 거듭 사과의 뜻을 전했다.
스티븐 연의 진심은 통했다. 그는 논란을 딛고 ‘버닝’으로 전 세계를 사로잡았고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한국계 배우로서 한국 감독들과 여러 작업을 통해 할리우드에 대한민국의 정서와 문화를 널리 알렸고 진정성 넘치는 연기로 트로피까지 품에 안았다.
욱일기 논란은 뼈 아픈 실수였지만 보란듯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배우로 자리매김한 스티븐 연이다.
한편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극본 이성진·앨리스 주·캐리 캠퍼·알렉스 러셀, 연출 이성진·히카리·제이크 슈레이어, 제작 A24)은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도급업자 대니(스티븐 연 분)와 삶이 만족스럽지 않은 사업가 에이미(앨리 웡 분) 사이에서 난폭 운전 사건이 벌어지면서 내면의 어두운 분노를 자극하는 갈등이 그려진 10부작 넷플릭스 드라마다. 지난해 4월 6일 처음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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