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혜자, 고두심에 이어 김미경까지. 이들을 떠올리면 연상되는 단어는 ‘국민 엄마’다. 엄마처럼 따뜻하게 품어주며 언제나 내 편일 것만 같은 든든함을 주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엄마’를 넘어 엄마의 서사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안방에 웃음과 눈물, 감동을 선사하는 ‘국민 엄마’ 김미경을 만났다.
1985년 연극 ‘한씨연대기’를 통해 데뷔한 김미경은 26회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 신인 여자 연기상을 수상하며 주목을 받았다. 드라마 ‘전원일기’, ‘카이스트’를 시작으로 ‘태왕사신기’, ‘며느리 전성시대’, ‘탐나는 도다’, ‘성균관 스캔들’, ‘너의 목소리가 들려’, ‘주군의 태양’, ‘아홉수 소년’, ‘힐러’, ‘용팔이’, ‘화려한 유혹’, ‘또 오해영’, ‘마음의 소리’, ‘고백부부’, ‘20세기 소년소녀’, ‘같이 살래요’, ‘하이바이, 마마!’, ‘18 어게인’, ‘기상청 사람들:사내연애 잔혹사 편’, ‘대행사’, ‘닥터 차정숙’, ‘웰컴투삼달리’, ‘이재, 곧 죽습니다’, ‘밤에 피는 꽃’ 등 굵직한 작품에서 활약하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여러 작품에서 다양한 엄마 역할을 공감대 있게 펼쳐내고 있는 김미경은 김혜자, 고두심을 잇는 ‘국민 엄마’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김미경은 ‘국민 엄마’라는 타이틀에 대해 “쑥스럽다”며 “‘국민 엄마’라는 타이틀은 아직도 낯설다. ‘내가 무슨’, ‘내가 감히’라는 마음도 든다. 가끔 재방송으로 나오는 ‘전원일기’를 보는데, 김혜자 선생님을 보면 너무 경이롭다. 그런 분이야말로 정말 국민 엄마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김미경이 엄마 역할을 시작한 건 ‘햇빛 쏟아지다’에서 류승범의 엄마를 맡으면서였다. 김미경은 “당시 엄마 역할이 부담스러웠던 건 사실이다. 고민했는데 분장하면 된다고 했고, 내가 28살에서 80살 노인 역할도 해봤는데 나이 때문에 못한다는 건 아니다 싶었다. 연기자인 만큼 경계를 두고 선을 긋는 건 아니라 생각했다. 그 이후로 엄마 역할이 물밀 듯이 들어왔다”고 돌아봤다.
김미경에게 유독 ‘착한’ 엄마 역할이 들어오는 이유는 뭘까. 김미경은 “난 나쁜 사람인데 내게 나쁜 역할은 안 들어오더라”고 웃은 뒤 “엄마 역할 제안을 받으면 기준은 따로 없다. 작품, 인물은 매번 새롭기 때문에 연기자라면 도전하는 게 임무라고 생각한다. 딱히 고르고 거르고 계산하진 않는 편이다”고 말했다.
비슷한 엄마 역할이어도 김미경 만의 ‘엄마’는 다르게 느껴지는 게 사실. 김미경은 “엄마 역할도 보통 엄마의 서사가 없는 작품이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우러짐 속에서 엄마가 힘을 보탤 수 있는 것들이 있다면 얼마든지 좋다. 소모적인 역할을 하면 연기하면서도 재미가 없을 것 같다”며 “그 엄마의 마음으로 연기를 하려고 한다. 자식을 향한 엄마의 마음은 다 같은데, 거기서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표현하는 엄마, 진짜 아이에게 대하는 엄마로서의 자세는 내 어머니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10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슬프거나 힘들거나 외롭지 않게 해주셨다. 강한 분이지만 강하다고 무서운 게 아니다. 네 자매를 모두 따뜻하게 품어서 키워주셨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엄마 역할을 많이 해오며 ‘국민 엄마’ 반열에까지 오른 김미경. 난감한 때는 없었을까. 그는 “‘닥터 차정숙’에서 엄정화의 엄마 역할은 기가 찼다. 제안이 왔을 때 살펴보니 엄정화와 내가 6살 차이 밖에 나지 않았다. 이건 아무리 변장을 해도 안되겠다 싶었는데 제작진은 가능하다고 했고, 연기자인 만큼 나이 때문에 경계를 두고 선을 긋는 건 아니다 싶었다”고 말했다.
‘국민 엄마’인 만큼 김미경을 엄마로 둔 톱스타도 즐비하다. 대표적으로 ‘고백부부’ 장나라, ‘하이바이, 마마!’ 김태희다. 작품이 종영한 지도 꽤 시간이 흘렀지만 꾸준히 연락을 주고 받으며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김미경은 “장나라는 나이 차이가 있는데도 이야기를 하다보면 그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몸 속에 90살 먹은 노인이 있는 것 같이 생각도 깊어서 사는 이야기를 하는 게 재밌다”며 “김태희는 자주 보진 못하지만 톱스타 같지 않은 털털함과 소박함이 너무 예쁘다”고 말했다.
김미경은 현재 ‘국민 엄마’가 아닌 ‘이하늬의 시어머니’로 ‘밤에 피는 꽃’에 출연 중이다. 모녀 사이는 아닌 고부 사이로 호흡을 맞추는 이하늬에 대해 김미경은 “이하늬의 성격은 정말 보시다시피 짱이다. 촬영장에서도 완전 분위기 메이커다. 분위기를 들었다 놨다 하는 친구인데 늘 밝은 기운으로 주변 사람들을 밝게 해준다”고 밝혔다.
‘국민 엄마’ 김미경이 있어 안방은 따뜻하다. 김미경은 “2024년에도 열일하고 싶다. 작년 12월에 촬영이 끝나서 잠깐 숨 좀 돌리고 못했던 것들을 하며 해소하고 있는데, 노는 게 지겨워질 때 쯤 빨리 일을 해야할 것 같다”며 “연극으로 연기를 시작하면서 ‘연기로 먹고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었다. 그건 연기로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게 아니라 연기를 오래 하고 싶다는 뜻이다. 나는 감사하게도 지금까지 연기를 해왔고, 앞으로도 죽기 전까지 연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elnino8919@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