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84’ 기안84가 고향인 여주에 금의환향했다.
25일, 유튜브 ‘인생84’ 채널에 ‘고향 여주 탐방기’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다. 지난해 12월 ‘2023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대상을 거머쥔 기안84는 이를 축하하는 현수막을 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연예인들이 어렸울 때 뉴욕, 파리 이런 데에 살았다 백날 얘기해도 이런 현수막 안 달아준다. 대도시는 정이 없다. 대도시는 싸가지가 없다. 계신리는 정이 많다”고 자랑할 정도.
여주시 계신리는 기안84의 고조할아버지 때부터 식구들이 함께 살았던 곳이다. 기안84는 “할아버지 이전부터 대대로 뿌리를 내리고 산 곳이다. 지금은 헐어서 창고처럼 쓰는데 큰집에서 4남3녀가 같이 살았다. 우리 아버지는 두 번째 막내였다. 할머니가 우리 아버지를 좋아하셨다. 공부를 잘했으니까. 아버지가 공무원 시험을 봐서 여주에서 공직 생활 하셨다. 초임 시절 같이 일하신 분이 지금 여주 시장님”이라고 알렸다.
할머니에 대한 애정은 컸다. 기안84는 “친할머니는 18살에 시집 와서 4남 3녀를 길러 내고 수원에 아버지랑 같이 가서 저까지 키워주셨다. 엄마 아빠 화날 때 할머니 뒤로 가면 굉장한 쉴드가 됐다. 할머니 없으면 세상 무너지는 줄 알았다. 18살까지 할머니랑 잤다. 고딩 기안의 화두는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어떡하나 였다. 따라가야지 싶었다. 내가 20살 딱 될 때 돌아가셨다. 모진 시집살이를 견디며 자녀들을 길러냈다”며 돌아가신 할머니를 그리워했다.
이어 그는 “수원에서 초등학교 다닐 때 방학에 두 달씩 계신리에 왔다. 어학연수 오듯 계신리로 어학연수를 왔다. 많은 걸 배웠다. 지금이야 광역버스, 전철이 있지만 그땐 버스가 하루에 6~7대 있었다. 계신리에선 쌀, 참외 농사를 지었다. 돈 되는 작물은 없었다. 가끔 논두렁을 삽으로 파면 미꾸라지가 나왔다. 그땐 닭도 함부로 못 잡았다. 돼지나 소는 잔칫날에 잡는 것”이라고 남다른 어린시절을 떠올렸다.
‘계신리 키즈’인 기안84의 추억은 특별했다. 기안84는 “계신리 언덕배기에서 아이들은 비료포대를 타고 놀았다. 시즌권을 끊은 것 마냥 눈이 없어도 탔다. 눈이 쌓인 날은 엉덩이가 보호 됐지만 눈이 없을 땐 쓸리기도 했다. 500년 묵은 은행나무가 있었다. 보호수다. 계신리의 바오밥 나무다. 아기 때 500년 됐으니까 이제 600년 다 돼 간다. 계신리에선 까르띠에 아무도 안 알아준다. 반려 집게벌레가 있었다. 앞엔 여주강이 있다. 여름엔 여기에서 카누를 즐겼다. 스티로폼 하나 붙잡고 수영했다. 하지 말라면 더 꿀잼이었다”며 활짝 웃었다.
이어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계신리 형들은 학교가 머니까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다. 여주의 고등학생들은 폭주를 뛰어도 비행을 하러 가는 게 아니었다. 아버지 새참을 가져다 드렸다. 달릴 땐 상남 2인조였지만. 쿨러닝도 했다. 롤러브레이드 바퀴를 판자에 달아서 봅슬레이처럼 탔다. 손도 다 찢어졌다. 계신리 와서 노는 게 에버랜드 가는 것보다 더 재밌었다”고 미소 지었다.
기안84는 마을회관에 들러 주민분들과 믹스커피를 함께 마셨다. 고모부 댁에 가서는 먼 친척들과 함께 식사를 즐겼다. 얼굴 모르는 조카들에게 용돈을 아끼지 않았고 잔칫상을 차려준 고모와 고모부에게도 각각 50만 원씩 용돈을 선물했다. 그는 “오랜만에 본 조카들한테 해줄 게 많이 없다. 고모랑 고모부도 음식 한다고 돈 많이 쓰셨을 테니 각각 50만 원씩 드렸다”고 밝혔다.
생전 부친이 처음 발령 받았던 곳도 찾았다. 면사무소의 면장실을 방문한 기안84는 “교장실 포스가 나는 곳에 가면 저도 모르게 위축이 된다. 아버지가 공무원 합격하셨을 때에도 플랜카드를 걸었다 하더라. 이젠 제가 이렇게 플랜카드 대신 걸어서 돌아오니 쪼렙이었던 새끼 거북이가 망망대해로 나가서 경험치도 왕창 쌓고 나름 고렙이 돼 돌아와서 모래사장에 알을 좀 까고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뿌듯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마침내 여주 시청에 입성했다. 기안84는 “마약 같은 거 안 했는데 검찰 포토라인에 선 기분이다. 정치인 당선된 것도 아닌데 너무 감사했다”며 자신을 열렬히 반겨주는 시청 직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여주시장을 만나고선 “군대 있을 때 중대장실에 갈 때 부담감의 4배였다. 부담감이 컸다”면서도 “방송에서 여주 얘기를 자제하고 있다. 너무 많이 했다. 주제 넘는 말 할 순 없는데. 시는 잘 돌아가고 있나요”라고 물어 웃음을 자아냈다.
“먹거리 사업, 기업 유치 이런 걸 물어서 식은땀이 났다. 선 넘을 뻔했다”는 그는 “얼떨떨하다. 감사한 마음을 까먹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대중의 사랑을 먹고 사는 사람이 그 감사함을 까먹는 순간 연예인병이 된다고 생각한다. 많은 분들이 재밌다고 해주셔서 관심도 받고 연예대상도 받고 여주시장님도 만났다. 모든 좋은 일이 있었다. 너무 감사드린다. 앞으로 우리 여주시가 전 세계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멋진 도시가 되길”이라고 힘차게 파이팅을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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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인생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