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전 참패 원죄 정몽규 회장과 KFA, 클린스만 손에서 지휘봉 빼앗아야 [최규섭의 청축탁축(清蹴濁蹴)]
OSEN 우충원 기자
발행 2024.02.08 08: 59

한마디로, 인재(人災)다. 출범 때부터 좌초가 예상됐던 ‘클린스만호’다. 유기적 체계의 작동에 의하지 않은, 아집에 의해 건조돼 닻을 올린 배가 희망봉에 닿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애초에 품지 말았어야 할 헛된 꿈이었다. 원죄(原罪)의 멍에를 메고 강행한 출항은 끝내 난파의 운명을 벗어날 수 없었다.
AFC(아시아축구연맹) 아시안컵은 기쁨과 희망을 안겨 주는 ‘약속의 봉우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좌절과 회한을 강요하는 ‘저주의 높은 산’이었다. 64년 만에 재등정에 나선 도전의 여정은 정상 문턱(결승전)에 이르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끝났다. 원죄와 맞물린 아시안컵의 주술에 휘말려 심연의 어두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클린스만의 어처구니없는 행동과 맞물린 KFA의 방조, 아시안컵 저주를 자초

한국 축구가 치욕의 나락으로 굴러떨어졌다. 지난 7일(한국 시각), 2023 카타르 AFC 아시안컵 준결승전에서, 뜻밖의 졸전 끝에 요르단에 0-2로 졌다. 그야말로 ‘참사’라고 할 만한 ‘완패’였다. 한 수 아래로 봤던 상대에 당한 패배여서, 더욱 충격의 바다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한판이었다. ‘아시아 맹주’의 자부심은 어느 순간 덧없이 스러지고, 수모의 분노만 치밀어 오르게 한 일전이었다.
1차적 원인은 태극 승조원들을 이끌고 항해에 나선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한 나라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전장에 나선 장수로서 전략 부재는 대회 내내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했다. 큰 줄기의 전략이 없으니, 적시 적소에 응용하고 대처할 전술이 변변히 운용될 리 없음은 물론이었다. ‘무색무취 축구’의 결과는 당연히 좌초였다. 간댕간댕한 항해로 애태움만 자아내더니 마침내 생각지 못한 암초에 걸려 난파의 비운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한 꺼풀 더 벗기고 들여다보면, 보다 근본적 원인이 똬리를 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클린스만 감독을 사령탑에 앉힌 대한축구협회(KTA·회장 정몽규)다. 유기적으로 작동하던 시스템을 도외시한 감독 선임이 자초한, 피할 수 없었던 재앙이었다. 정몽규 회장의 독단에 따른 영입 전략으로 말미암아 파생된 결과물이 ‘요르단전 참패’임을 직시해야 한다.
한국은 2022 카타르 FIFA(국제축구연맹) 월드컵에서 원정 16강을 이루며 아시아 전통 강호로서 자존심을 지켰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내놓은 성공작이라고 할 만했다. 치밀하고 체계적 선임 과정에 따라 영입된 벤투 감독이 약 4년 4개월(2018년 8월~2022년 12월) ‘태극호’를 지휘하며 창출한 작품은 그런대로 볼만했다.
그래서 KFA는 벤투 감독과 재계약을 맺으려 했다. 하지만 벤투 감독은 멋진 추억으로 기억하고 싶은 듯 국가대표 사령탑직을 고사하고 한국을 떠났다. 그 후임이 클린스만 감독이다.
그런데 KFA는 벤투 감독 후임 사령탑 선임 과정에서부터 이상해졌다. 겉으로는 종전의 시스템 전략을 답습하는 듯했으나, 실질적으로는 개인의 독단이 주도하는 인선 과정을 취했다. 2023년 1월 부임한 미하엘 뮐러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장은 이를 부채질했다. 국가대표 감독 인선 과정을 위원들과 공유하지 않은 채 선임 과정을 밟아 나갔다.
아이러니하게도 뮐러 위원장도 클린스만 감독의 선임에선 배척됐다. 자신은 선임 과정에 개입했다고 밝혔으나, 어디까지나 여론의 질타에 몰려 궁색한 지경에 빠진 KFA를 곤경에서 구하려는 항변에 불과했다. 클린스만 감독 선임은 정 회장의 의중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뮐러 위원장도 희생양에 불과했다”라는 평가가 터져 나온 배경이다.
유기적 시스템에 따르지 않고 베일에 싸인 선임 과정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사령탑으로서 부적격성이 대두되며 여론의 뭇매가 가해졌으나, 정 회장과 KTA는 이미 계약에 합의했다며 의도를 강행했다. 클린스만 감독의 고국인 독일에서조차 회의적 반응을 보였는 데도 말이다. 심지어는 “사령탑으로서 효용성의 한계를 드러낸 클린스만을 KFA가 여론을 무시하고 ‘기꺼이’ 국가대표 사령탑으로 영입했다”라고 조롱했을 정도였다.
클린스만 감독은 예상과 어긋나지 않았다. 미국에 있는 자택에서 근무하는 이른바 ‘재택 지휘’로 “한국에 상주하겠다”라는 약속을 헌신짝처럼 저버렸다. 그뿐이랴! 근무 태만은 물론 이중 부업의 치졸한 행태로 여론과 팬들의 거센 비난을 스스로 끌어냈다.
가장 근본적 문제는 KFA의 방조다. 국가대표 사령탑으로서 본분을 벗어난 클린스만 감독의 이런 어이없는 행동에 전혀 제동을 걸지 않음으로써 카타르에서 일어난 참극의 씨앗을 뿌렸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파행적 항해 끝에 결국 난파된 ‘태극호’의 비운은 원초적 죄를 저지른 KFA에서 말미암았다고 할 수 있는 접점이다. 선임은 정 회장의 뜻에 따랐다고 하지만, 그 후 관리는 KFA의 의무이자 권리였다.
클린스만 감독은 취임 일성으로 밝혔던 아시안컵 우승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도 별반 부끄러운 기색이 없다. 2026년 북중미 FIFA 월드컵까지 사령탑을 지휘하겠다고 밝혀 사퇴할 의사가 전혀 없음을 내비쳤다. 역대 아시안컵에 나선 한국 국가대표팀 사상 최강의 전력을 구축했다는 자타의 공인된 평가에도 불구하고 정상 복귀에 실패한 사령탑이 떳떳하다는 듯 취할 태도가 아니었다.
이제 공은 원죄의 책임이 있는 KFA와 정 회장에게로 넘어왔다. 결단의 회초리를 들 시점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오히려 빠르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더는 방에만 틀어박혀서 클린스만 감독의 궤도에서 벗어난 행동을 관망만 해서는 안 된다. 비록 사후 약방문으로 여겨질지 모르지만, 사령탑 교체의 ‘극약 처방’을 취해야 하지 않을까? 나락에서 빠져나올 동아줄은 정 회장과 KFA의 손안에 이미 쥐어져 있다.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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