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보는 기분이었어요.”
한화 신인 좌완 투수 조동욱(20)이 겨울 비활동기간 서산 신인 캠프에서 만난 정우람(39) 플레잉코치를 보곤 이런 느낌을 받았다. 조동욱은 “어릴 때부터 좌완 투수 영상을 많이 봤는데 정우람 코치님이 롤모델이었다”며 “코치님이 변화구 그립부터 골반, 하체 활용을 위한 운동 방법을 세심하게 가르쳐주셨다”고 고마워했다.
지난해 시즌을 마치고 구단의 플레잉코치 제안을 받아들인 정우람은 현재 잔류군 투수코치를 겸하고 있다. 지난 12~1월 신인 캠프 기간 일주일씩 서산에 나와 신인 선수들을 처음 보며 플레잉코치로 첫발을 내딛은 정우람은 “신인 선수들이 질문을 하면 피드백을 해준 정도였다. 아직까지는 나도 새로운 자리에서 배워야 하는 시기라 선배 코치들에게 많이 물어보고 있다”고 말했다.
1군과 퓨처스 팀 모두 해외로 스프링캠프를 떠나면서 서산 잔류군에는 10명 남짓한 선수들만 남아있다. 3군 성격의 잔류군은 어린 선수들이 주를 이룬다. 즉시 전력감 선수들이 아니기 때문에 기본기를 다지면서 동기 부여해야 하는 게 잔류군 코치들의 임무다.
정우람은 “기존 선수들에겐 여러 가지 조언을 해줄 수 있지만 신인들에겐 조심스러운 게 있다. 이제 시작하는 단계의 선수들이다. 잘해서 프로에 왔기 때문에 본인들이 자기 것으로 먼저 해보고 느껴야 한다. 부족한 것이 뭔지 스스로 느낀 뒤 상의해서 고쳐나가야 한다. 신인은 조금 잣대를 다르게 보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지도관을 드러냈다.
오랜 기간 선수를 하면서 수많은 감독, 코치들을 만났다. 향후 본격적인 지도자의 길로 들어설 정우람은 “아직은 시작 전 단계, 준비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지도 철학을 말하기는 이르지만 선수하면서 제일 크게 느낀게 인내, 기다리는 것이다. 선수를 강압적으로 끌고가는 것보다 인내를 통해 신뢰관계를 쌓아야 한다. 여기에 현대적인 트레이닝 방법이 잘 어우러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이야기했다.
선수와 코치를 겸하는 플레잉코치. 코치에 조금 더 비중이 실리지만 선수로 등록된 만큼 자신의 몸을 만드는 것도 신경써야 한다. 어느 한쪽에만 치중하기가 어려운 자리이지만 선수를 은퇴하지 않은 만큼 언제든 1군에 올라갈 수 있게 준비를 해둬야 한다. 한화 불펜에는 아직 김범수 외에 확실한 좌완 투수가 없다.
정우람은 “전체적으로 몸 상태를 회복하는 단계에 있다. 아직은 날이 추워서 투구는 하지 않고 있다. 내가 (선수로서) 급한 입장은 아니지 않나”라며 웃은 뒤 “언제 (1군에서) 찬스가 올지 안 올지 모르겠지만 몸이 괜찮다는 전제하에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날이 따뜻할 때 끌어올리는 게 좋다. 지금 내가 매일 공을 던져서 실력이 늘 나이는 아니다. 3~4월 봄이 오기 전까지는 코치로서 선수들을 지켜보며 이 자리에 적응하는 데 집중할 것이다”고 말했다. 20년간 KBO리그를 넘어 아시아 프로야구 최다 1004경기를 던지며 오랜 시간 쌓이고 쌓인 피로를 풀고 팔 상태를 회복하는 과정에 있다.
SK 왕조 시절을 함께한 3살 선배 외야수 김강민이 한화에 오면서 24년차 시즌을 준비하는 것도 ‘선수’ 정우람에겐 큰 울림을 준다. 그는 “좋은 자극이 된다”면서도 “자극은 되지만 지금 상황에서 내 것만 할 순 없다. 그럼 잔류군 선수들은 누가 봐주나. 어린 선수들과 같이 부대끼면서 발전된 모습을 이끌어내고 싶다. 퓨처스 팀에서 캠프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잔류군 선수들이 바로 경기에 나갈 수 있는 상태를 만드는 게 지금 내게 주어진 역할이다”고 강조했다.
올 시즌 목표도 예년과는 사뭇 다르다. 정우람은 “우리 팀이 꼭 가을야구에 가는 것과 기적이라는 말은 우습지만 팔 상태가 많이 좋아진다면 (1군 등판) 기회를 만들어보고 싶다. 또 한 가지 바람도 있다. 잔류군 코치로서 지금 여기 있는 선수 중 누구라도 1군에 한 번 다녀올 수 있는 선수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잔류군 선수가 1년 만에 1군에 올라가는 건 쉽지 않다. 플레잉코치로 1005번째 등판에 도전하는 것만큼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