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묘’는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 죽는 한 가족의 사연을 파헤치는 풍수사, 장의사, 무당들의 이야기다. 그 중심에는 수십년 간의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돈을 벌어온 풍수사 상덕(최민식 분)이 있다.
현실에서도 많은 후배들에게 존경받으며 배우로서 자신만의 독보적 입지를 구축해 온 최민식이 상덕을 연기했다는 사실은 여러모로 공교롭다.
배우 최민식(62)이 22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OSEN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언급한 말은 “할 줄 아는 게 연기 밖에 없어서 먹고 살기 위해선 잘해야 한다”였다. 딸을 시집보내기 위해 돈을 벌고, 아버지로서 책임감을 느끼는 상덕의 모습과 겹쳐보인다.
‘파묘’(감독 장재현, 제공배급 쇼박스, 제작 ㈜쇼박스·㈜파인타운 프로덕션, 공동제작 ㈜엠씨엠씨)는 거액의 돈을 받고 수상한 묘를 이장한 풍수사와 장의사, 무속인들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담은 오컬트 미스터리 영화.
최민식은 국내 최고의 풍수사 김상덕 역을 맡아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묵직한 에너지를 발산했다. “풍수학적 관점에서 인간의 길흉화복과 흉지를 구분하는 사람이다. 제가 풍수지리학에 대해 잘 몰라도 캐릭터를 맡은 이상 바라보는 시선이 깊어야겠다 싶었다”라며 “등산하는 사람이 산에 올라가서 ‘야호’를 외치는 것과 다르다. 산에 올라가서 나무, 풀 하나를 바라보는 것도 상덕은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캐릭터를 풀어낸 비법을 털어놨다.
상덕이 복잡하고 위험천만한 인물들의 위기 속에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한다. 영화 촬영은 시간 순서대로 찍을 수 없지만, 최민식은 ‘연기 대가’답게 끊임없이 뒤바뀌는 상덕의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상덕 역의 최민식은 “나를 장재현 감독의 조감독이라고 여겼다”면서 장 감독의 디렉션에 따르며 순조롭게 김상덕이라는 인물을 풀어냈다. “상덕은 땅을 통해 돈을 벌어 먹고 산 사람이라도 마지막에는 현실과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지점이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장재현 감독의 생각과 자세가 좋아서 이 영화에 출연을 결정하게 됐다. 감독이 풍수학적인 측면에서 ‘우리나라 땅에 트라우마가 있다’라고 하는 말에 관심이 갔다. 인간에게 혈자리가 있듯 땅에도 자리가 있다는 말이 의미있게 다가왔다. 감독의 그 말에 저는 ‘교회 다니신다면서요?’라고 되물었다.(웃음) 감독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데 종교에 대해 편협하지 않은 사고를 갖고 있다. 기독교임에도 열린 사고를 갖고 있다는 게 마음에 든다. ‘검은 사제들’이나 ‘사바하’에 비해 약간 말랑해진 것에 대해 호불호가 있을 것도 같은데 저는 오히려 장 감독의 유연한 사고가 좋았다. 장재현은 보통 감독이 아니다. 직접 만나서 얘기를 보니 더 매력적이었다. 전작들만 봤지 인간 장재현은 어떤 사람인지 몰랐는데, 실제로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더 열려있는 사람이다.”
이어 최민식은 장재현 감독에 대해 “그가 영화를 어떻게 만드는지 궁금했다. 옆에서 지켜 보니 용의주도함은 기본이고 사전에 준비를 엄청나게 많이 했더라. 기본에 충실한 사람”이라고 주변에서 지켜본 것들을 전했다.
그러면서 “장재현 감독은 현장에서 디렉션을 할 때도 아주 디테일하다. 스트립터 등 연출부에게 지시하는 모습도 믿음직스러웠다. 한두 해 준비해 온 게 아닌 든든함이 느껴졌다. 경력에 비해 연출가가 가져야 할 자세, 자신의 마인드를 행동으로 옮기는 모습이 굉장히 든든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최민식은 인물의 눈빛과 말투 하나로도 인생을 표현한다. 너무 극단적이고, 비현실적인 상황에서도 그가 맡으면 마치 현실 어딘가에서 그와 같은 사람이 살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날 최민식은 “제가 처음부터 연기자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대학교 때 연극 연출을 했었다. 그래서 언젠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영화 연출도 해볼 생각이 있다. 근데 아직까지 계획을 세운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는 시간이 흐를수록 해보고 싶은 캐릭터가 더 많아진다. 그래서 더 나이 먹기 전에 격정 멜로를 해보고 싶다. ‘파이란’보다 더 진한 멜로를 해보고 싶다”고 말하며 부끄럽게 웃음을 터뜨렸다.
“상투적으로 들릴수도 있는데 저는 오랫동안 배우로 살다 죽었으면 좋겠다. 진짜로 제 바람이 그렇다. 극장에 무대인사를 다니는 것도 참 행복하다. 배우라는 직업을 가져서 관객들과 만나는 게 감사하다.”
현재 그는 소속사 없이 활동 중이며 촬영장에 갈 때도 직접 운전을 한다. 또한 작품 출연 및 출연료 협상도 혼자 결정하고 있어 연예계 후배들에게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소속사가 있으면 물론 몸은 편하다. 저도 출연료를 논의하는 것에 있어서 껄끄러운 부분은 있다. 제가 (제작자 및 광고주 등) 그분들의 전화를 받아서 직접 상대해야 한다. 근데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보다 소속사가 있을 때 느꼈었던 다른 부분의 스트레스가 없다는 게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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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주)쇼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