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3년 영화 ‘클래식’으로 데뷔한 이기우. 그간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어느덧 데뷔 21년차에 접어들었지만, 그에게 있어서도 사극은 불모지였다. ‘밤에 피는 꽃’을 통해 무려 20여년만에 첫 사극에 도전한 그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 작품”이라며 “하길 잘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29일 서울 강남구의 스튜디오 더 무로 사옥에서는 MBC 금토드라마 ‘밤에 피는 꽃’ 배우 이기우의 종영 인터뷰가 진행됐다. ‘밤에 피는 꽃’은 밤이 되면 담을 넘는 십오 년 차 수절과부 여화(이하늬 분)와 사대문 안 모두가 탐내는 갓벽남 종사관 수호(이종원 분)의 담 넘고 선 넘는 아슬아슬 코믹 액션 사극. 이기우는 작중 좌부승지 박윤학 역을 맡았다.
이날 그는 “20년 동안 세상이 많이 바뀌었지 않나. 20년 전만 해도 휴대폰이 구닥다리였듯, 일하는 환경도 바뀌었다. 그래서 저도 사극을 할 수 있게 됐다. 처음 데뷔했을 땐 키가 커서 사극은 못하게 될 거란 말을 많이 들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사극 세트에 들어가면 세트 다시 지어야한다’, ‘맞는 옷도 없을 거다’, ‘말이 작아보이니까 못할거다’ 같은 부정적인 이야기가 엄청 있었다. 그래서 저는 데뷔했을 때 사극은 못한다고 생각했다”고 ‘데뷔 20년만의 첫 사극’에 얽힌 속사정을 전했다.
이기우는 “‘혈의 누’에서 차승원 선배님이 사극연기 하는걸 보고 부러웠다. 제가 처음 모델로 데뷔했을 때, 모델 출신 연기자로서 롤모델 같은 분이었다. 그런 분이 편견을 뚫고 사극 영화를 하는 것도 고무적이었는데, 그것도 한참전이지 않나. 최근에는 키 크신 분들도 많이 사극을 하다 보니 저도 무리없이 캐스팅 해주신 것 같다. 한복이 안 어울릴 줄 알았는데 막상 해보니 한복이 예쁘고 멋있는 옷이라는걸 저희 작품을 통해 알게된 것 같다”고 털어놨다.
자신에게 사극 제안이 왔다는 것만으로도 50% 이상 ‘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다는 그는 “안 해본 걸 너무 해보고 싶었다. 감독님도 장태유 감독님이셨고, 제가 좋아하는 이하늬 배우도 나오고. 읽어보니 역할도 너무 괜찮았고 안 할 이유를 찾기 힘들었다. 장태유 감독님의 ‘사자’라는 드라마를 같이 했는데 그게 잘 안됐다. 그때 감독님한테 다 못보여드린걸 더 보여드리고 싶다는 욕심이 개인적으로 있었다”고 출연 계기를 전했다.
첫 사극에서 가장 신경쓴 부분은 말투였다. 이기우는 “제가 평소 말이 빠른 편이다. 사극에서는 양반가다보니 말을 빨리하는것도 안 어울리고, 그 당시의 말투들도 바로 바꾸기엔 힘든 부분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와이프랑 평소 집에서 템포 줄여가면서 말하는 걸 연습했던게 큰 도움 됐다. 또 감독님이 워낙 디테일하셔서 제가 만들어간 톤을 미세하게 조정해주시기도 했다. 감사하고, 하면서 많이 배워가는 현장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제일 친한친구 김산호 배우가 ‘고려거란전쟁’에 나왔다. 그쪽은 정통 대하사극이다 보니 어떻게 보면 현대적인 사극인 저희 드라마보다 좀더 FM 적인 부분이 있는 것 같아서 통화하면서 고민을 많이 나눴다. 또 요즘 OTT를 통해서 사극를 찾아볼수 있어서 ‘옷소매 붉은 끝동’을 보고 많이 고민해가면서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기우는 작중 연선 역의 박세현과 묘한 러브라인을 그렸다. 실제로 17살의 나이차이가 나는 두 사람은 마지막회에서 해피엔딩을 암시하는 결말로 눈길을 끌었던 바. 이에 이기우는 “처음에 나이를 안 물어봤다. 들어도 일부러 기억 안 하려고 했는지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다. 아무래도 고민은 됐다. 어떻게 보면 나이대는 (이)하늬 씨랑 저, (이)종원이랑 (박)세현이가 맞는데 이렇게 돼서 ‘어떻게 해야되지’ 고민 했다”면서도 “나이 차이에서 오는 거리감은 못 느꼈다. 세현이는 어떻게 느꼈는지 모르지만 저는 그런 건 없었다. 배우들이 성향이 비슷비슷하다 강아지 좋아하고, 여행 좋아하고 하다 보니 카메라가 돌지 않을 때 서로 강아지 사진 보여주고 그런 얘기 하면서 친해졌다. 그래서 저희끼리는 나이 차이를 못 느꼈는데 보시는 분들이 초반엔 ‘도망가라’고 많이 말씀 해주시더라”라고 웃었다.
의붓 동생 박수호 역으로 형제 호흡을 맞춘 이종원에 대해서는 “사회생활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박윤학 역할로 캐스팅됐다 했을째 종원이가 좋아했다더라. 그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종원이가 호감이었다. 키차이가 나고 하다 보니 저를 그런걸로 염려하시는 배우들도 있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지 않고 저를 흔쾌히 반겨 줬던건 그 친구가 그만큼 인간적으로 착하고 계산적이지 않은 친구라는 생각 들었다. 현장에서 재밌게 놀고 떠들고 웃고 그렇게 하면서 촬영했다. 촬영하는 신마다 카메라 뒤에서 엄청 많이 웃었다. 종원이가 취한 연기를 하는 장면에서 웃음을 못 참아서 NG가 나기도 했었다”고 현실 케미를 전했다.
또 조여화 역으로 원톱 주연으로서 극을 이끌어나간 이하늬에 대해서는 “이상윤 배우가 저랑 친한데, 상윤이가 같이 드라마 할때 언뜻‘너무 괜찮고 재밌다’, ‘현장 분위기를 밝게 만드는 사람이고 너무 좋다’라는 얘기를 해준 적 있다. 이번에 작품 같이 하면서 상윤이한테 얘기했더니 성격적으로 잘 맞을거라고 하더라”라며 “성격도 너무 좋으시고, 사내 대장부 같은 기질들이 있다. 현장 분위기도 시원하고 유쾌하게 잘 이끌어 줬다”고 감탄했다.
이기우는 이번 작품을 통해 “데뷔 20년만에 새로운것 했다는 것, 사극이라는 갈증을 풀었다는 것 자체가 저한테 큰 동기부여면서도 용기와 힘이 됐다. 드라마도 잘 됐지만 시청자 반응을 보니 연기로 욕하는 분들은 다행히 없더라. 처음 드라마에 들어갈 때도 ‘욕심 안 부리고 준비해서 어색하다는 얘기만 듣지 말자’는게 목표였는데, 작은 목표를 달성했다는 것에서 오는 큰 보람이 앞으로 연기생활을 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다만 ‘밤에 피는 꽃’은 원톱 주연인 만큼 주변인인 박윤학의 활약은 비교적 적었다. 이기우는 “아쉽긴 하지만, 첫 술에 배 부를 순 없지 않나. 첫사극인데 분량이 너무 많았다면 오히려 독이 됐을거라 좋게 생각하려고 한다. 물리적으로 노출되는 빈도가 적은 대본이었기 때문에 가끔 등장하는 신들을 더 많이 고민할수있었던 계기가 됐다. 그 부분도 공부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서 좋았다. 잠깐씩 나왔지만 그래도 그 와중에 연선과 윤학을 응원해주는 분들도 계시고, 왕을 옆에서 보좌하는 모습에 다른 느낌을 가져주시는 분들도 계셔서 저는 실망스럽과 아쉽기 보다 만족할 여지가 더 많은 드라마로 기억하고싶다”고 말했다.
또 ‘12부작’이라는 다소 짧은 구성에 대해서는 “분량의 아쉬움보다 그게 더 컸다. 저희가 연기한 호흡들은 방송에 비친 것보다 훨씬 긴데 12부로 녹여내다 보니 연기하는 입장에서 아쉬웠다. 배우들끼리 16부작이었다면 시청률도 더 나왔겠지만 우리가 했던 연기를 좀더 고스란히 보여줄수 있었겠다는 얘기 나눴다”고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반면, 이 같은 스피디한 전개가 오히려 시청자들이 작품에 빠져든 매력 포인트로 작용하기도 했다. 이기우는 “처음엔 ‘편집을 어떻게 이렇게 했지?’ 의구심을 갖다가 ‘역시 장태유 감독님이다’ 싶었다. 단체 채팅방에서도 ‘천재 아냐?’라는 얘기가 매 회나왔다. 우리가 찍은 이 장면을 이렇게 편집하리라 예상못했는데 ‘띵’ 할 때가 있었다. 특히 회상 들어가고 나오는 신들이 너무 좋더라. 보통은 페이드아웃 된다거나 하는데, 그게 아니라 인물 뒷 배경에서 과거가 나오고 들어간다. 이런 편집이 세련되고 멋었었고 그래서 감독님이 테이크 많이가는 걸 힘들어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대단한분이라는 얘기를 많이 했다”고 감탄했다.
이런 노력이 합쳐진 결과, ‘밤에 피는 꽃’은 첫방 시청률 7.9%에서 시작해 마지막회에서 18.4%로 자체 최고 기록을 세우며 ‘MBC 금토드라마 역대 최고 시청률’이라는 기염을 토했다. 이기우는 “이렇게까지 잘 될줄 알았던 사람은 없었을 거다. 저희도 드라마가 시작하면 단체 채팅방에서 이야기를. 중간중간 통신사별로 순간 시청률을 볼 수 있는 게 있다더라. 그걸 캡처해서 올린다. ‘이러다 10% 넘는거 아냐?’ 이랬다. 그러다 점점 올라가니 다음날 아침에 눈떠보면 단톡방에 온갖 이모티콘들이 다 올라온다. 서로 축하하는 분위기였고, 엄청 고무적이었다. 촬영할때도 그랬지만 끝나고 나서도 에너지가 넘치는 그런 모임이 됐다”고 배우들의 반응을 전했다.
하지만 포상휴가에 대해서는 “보내주시려고 하는 분이 안 계셨다. ‘우리끼리라도 가야하는거 아니냐’는 이야기도 했다. ‘이렇게 끝내긴 아쉽다’, ‘펜션이라도 가서 고기 구워먹고 영수증 청구하면 어떨까’라는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있다. 아쉽더라. 다른 드라마들이 포상휴가를 간다고 하면 아쉽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비하인드를 밝히기도 했다.
무사히 첫 사극을 마쳤지만, 그렇다고 사극에 대한 욕심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이기우는 “이번에 문관이었지 않나. 사실 제 키에 문관 옷보다는 무관 옷이 잘 어울릴것 같다. 운동도 꾸준히 하고 있으니까 무사같은 느낌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사극이 있다면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 수호가 액션신 할때 근질근질 했다. 도포를 휘날리고 검이 반짝거리면서 왔다갔다 하는 모습이 현대극 액션하고 많이 다르다. 그런 요소가 연기할 때 새로운 색을 입혀주는 게 있다 보니 배우로서 욕심 나더라. 사실 연선이가 부채를 발견한 시어머니에게서 여화를 구해낼 때 썰을 풀지 않나. 그때 박윤학의 액션이 있었는데, 편집이 많이 됐다. 제가 어릴때 테니스 선수도 하고 운동을 좋아한다. 키가 큰 사람들이 했을 때 멋스러운 액션들이 있다. 그런 것들은 제가 할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자신했다.
데뷔 20주년을 넘어 21주년을 향해 달려가는 그는 “모델 데뷔는 그 전이지만 연기자 데뷔는 영화 ‘클래식’이다. 모르고 지내다가 작년에 곽재용 감독님한테서 ‘클래식’ 개봉 20주년이라고 연락이 왔더라. ‘이게 벌써 개봉한지 20년 됐나’ 싶더라. 주변에서는 데뷔 20년차라고 얘기하는데 저는 잘 모르겠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냥 나의 흰머리가 좀 더 늘어나고, 결혼 하고 그런 것들 정도”소회를 밝혔다.
이기우는 지난 2022년 깜짝 결혼을 발표했다. 결혼 이후 변화한 점을 묻자 그는 “결혼을 하고 일들이 잘 된 것 같다. 저를 조력해주시는 주변인들의 노력도 분명 있었지만, 가정에서 아내가 그렇게 되게끔 많이 만들어준것 같다. ‘나의 해방일지’도 연습 많이 했고 이 작품도 연습 많이 했다. 연기적으로 도움 많이 됐고 그런걸 편하게 얘기할수 있는 사람이라 감사하다”며 “아내가 고등학교때 연극반이었다. 어떻게 보면 저보다 연기를 더 빨리 접한 친구다. 고등학생때 전국학생연극제에 나가서 무대에 서본적도 있다. 그래서 연기자들과 대본을 이해하는게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 부분들도 저한테 너무 큰 도움 됐다. 그걸 강압적으로 얘기하는 친구는 아니고, 서로 대화를 많이 했다. 빌드업해가는 걸 가정에서 할수있는 게 너무 큰 행운”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도 계속 연기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는 그는 “‘여기서 이탈하지 않고 연기자를 했네?’, ‘앞으로 20년 더 할 수 있을까’ 그런 물음을 많이 던졌다. 지금까지 20년을 어떻게 해왔는지 모르겠지만 젊었고, 최근에는 앞으로 20년은 지금만 같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OTT도 많아지고 작품수도 많아져서 연기할 수 있는 생태계가 풍성해진거 아니냐 싶지만 경쟁이 더 치열해진 부분이 있다. 중년이 넘어가는 시점에서 어떻게 나를 끌고 가야될지에 대한 고민을 굉장히 많이 하고 있다. 그래서 코로나 이후에도 운동이라거나 다른 것들도 다시 가동시키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기우는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것으로 “노래”를 꼽았다. 그는 “저희집이 노래를 잘 하는 집인데 저는 유전이 안 되고 누락된 것 같다. 노래를 잘하고 싶은데, 저도 아직 늦지 않았다는 생각에 노래를 연습하고 배우고 싶다. 친구 김산호가 뮤지컬 배우로서 무대에 서는걸 보면서 부러웠다”며 “뮤지컬 출연은 될지 모르겠지만 작은 역할로 들어가보면 저한테 너무 재밌는 경험, 하나의 아주 작은 가능성을 이루는 느낌이 들어 재밌을 것 같다”고 바람을 전했다.
현재 이기우는 ‘밤에 피는 꽃’을 끝마치고 차기작을 검토 중이다. 그는 갈증 있는 분야를 묻자 “‘밤에 피는 꽃’이 첫 사극이라서 저한텐 고무적인 일이지만, 그 안에서의 역할은 현대극에서 해왔던 역할이랑 어떻게 보면 비슷한 선상에 있다. 그래서 거기에서 그 범주에서 벗어나는 연기를 해보고 싶다. 진짜 친한 친구, 매니저들 알지만 제가 그렇게 키다리 아저씨같은 금수저 특유의 부드러운 남자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저는 재밌고 망가지는거 좋아한다. 운동 하다가 잘 안돼서 다른 일 하는 백수라거나, 더 평범한 역할, 더 재밌는 역할을 실제 성격으로 더 잘할 수 있다. 그런데 데뷔할 때 상류층 이미지가 생겨서 깨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악역도 했다. 지금은 철없는 삼촌같은 역할 잘 할수 있다. 키 큰사람이 망가지면 재밌게 망가진다. 허우대에서 나오는 몸개그가 있다. 물론 슬랩스틱으로 코믹연기를 하겠다는건 아니지만 키큰사람이 망가졌을때 재밌는 부분이 있어서 그런걸 연기를 통해 보여주고 싶다”고 의욕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그는 “‘밤에 피는 꽃’은 20년만에 처음으로 한 사극 드라마인데, 이때까지 했던 작품 중에서 가장 잘 된 드라마인 것 같다. 예전보다 시청률이 나오기 어려운 시장에서 18%라는 쾌거를 이룬건, 그간 제가 한 모든 작품 중에서 가장 좋은 스코어라고 생각한다”며 “좋은 영양제를 맞은 느낌이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하든, 또 사극을 다시 하든, ‘밤에 피는 꽃’의 영향으로 좀더 에너지를 갖고 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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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OSEN 지형준 기자 / jpnews.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