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상황에서 마운드에 올라 일본프로야구 홈런왕을 범타로 처리한 두산 특급 신인 김택연(19). 이는 처음부터 계획된 이승엽 감독의 큰 그림이었다.
김택연은 지난 3일 일본 후쿠오카 PayPay돔에서 열린 일본프로야구 명문 구단 소프트뱅크 호크스와의 스페셜매치에 구원 등판해 1⅓이닝 4피안타 1탈삼진 무실점 15구 호투를 펼쳤다.
김택연은 1-3으로 뒤진 4회말 2사 1, 2루 위기에서 이승엽 감독의 호출을 받았다. 19세 신인이 처음 상대한 타자는 소프트뱅크의 4번타자 야마카와 호타카. 일본프로야구에서 무려 홈런왕을 3차례나 거머쥔 공포의 거포였다.
그러나 김택연은 특급 루키답게 흔들림 없이 자신의 공을 뿌렸고, 단 공 2개로 포수 파울플라이를 유도했다. 이닝 종료였다.
김택연은 5회말에도 마운드에 올라 소프트뱅크 강타선을 삼자범퇴로 돌려보냈다. 아웃카운트 3개를 잡는 데 공 12개면 충분했다. 2사 후 묵직한 직구를 앞세워 이노우에를 삼진 처리한 장면이 압권이었다.
6회말 박치국에게 바통을 넘긴 김택연은 최고 구속 152km의 직구에 커브, 슬라이더를 곁들여 완벽투를 해냈다. 주무기 슬라이더의 최고 구속도 137km까지 나왔다. 2024년 신인드래프트 전체 2순위 클래스를 유감없이 발휘한 한판이었다.
스프링캠프를 마치고 6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이승엽 감독을 통해 김택연의 소프트뱅크전 등판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 감독은 “구위도 구위이지만, 대담한 성격인 거 같다”라며 “소프트뱅크전은 위기 상황에서 올려봤다. 상대 홈런왕 출신 4번타자와 한 번 붙여봤는데 예사롭지 않았다. 워낙 회전력이 좋은 투수다. 빠른 볼을 노리고 있는 타자라도 빠른 볼이 왔을 때 막 공략당하거나 난타를 당하지는 않을 거 같다”라고 높게 평가했다.
김택연의 공을 직접 받아본 주전 포수 양의지는 “오승환 느낌이 난다”라는 극찬을 남기기도 했다. 사령탑의 의견도 같았다. 이 감독은 “충분히 자질을 갖추고 있다. 당장은 모르겠지만 부상 없이 잘 관리해준다면 어떤 투수보다 좋은 투수로 성장할 거라고 믿는다. 좋은 걸 보고 좋은 관리를 받으면서 경험만 쌓는다면 구위 면에서는 19살 중에서는 최고가 아닐까 싶다”라고 역시 극찬했다.
김택연은 성공적인 첫 스프링캠프에 힘입어 두산의 새 마무리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감독은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선수다. 큰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 지금 마음 그대로 김택연이 편안한 마음으로 프로 무대에 적응했으면 한다. 기라성 같은 선배들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선수가 됐으면 좋겠다”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쓸지는 조금 더 봐야할 거 같다. 많은 이닝을 던진 건 아니지만 상대를 압도할만한 구위를 갖고 있다. 이번 시범경기를 통해 조금 더 신중하게 보고 판단을 해서 투수코치와 상의하도록 하겠다”라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김택연은 야마카와를 범타로 돌려보냈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그는 “4번타자 때 나가는 건 알고 있었다. 위기상황이 될 줄은 몰랐다”라며 “막상 던지고 내려오니 홈런왕 출신에 커리어가 있는 타자를 잡은 거 같아서 기분 좋았다. 경기 중에는 들뜨지 않고 내가 할 거를 잘 준비하자는 생각으로 다음 이닝까지 던졌다”라고 밝혔다.
김택연에게 국내보다 한 수 위인 일본 타자들과의 승부는 영원히 기억에 남을 좋은 경험이 됐다. 김택연의 이름 석 자를 제대로 알린 한판이기도 했다.
김택연은 “일본 타자들의 수준이 높다보니 긴장이 많이 된 상태에서 나갔는데 ‘내 공을 후회 없이 던지고 내려오자’, ‘자신 있는 피칭을 보여주자’, ‘배짱 있는 투구를 보여주자’라는 마음을 먹었다. 그런 부분이 잘 됐다. 확실히 일본 타자들이 컨택도 좋고 삼진을 잘 안 당하더라. 많이 배웠다. 좋은 경험이었다”라고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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