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딩 임파서블’ 전종서, 잔다르크 NO!..명실상부 멜로 여주!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 김재동 기자
발행 2024.03.13 14: 27

[OSEN=김재동 객원기자] 난감한 캐스팅 제의를 받았다. 무려 20억짜리 계약. 시나리오의 얼개에 따르면 얽매이기 싫은 자유로운 영혼의 남자 주인공을 회사로부터 구해내 뉴욕으로 도피시키는 탈주 스릴러물의 여자주인공 역이다. 즉 동화 속 공주님보다는 잔다르크가 어울리는 캐릭터다. 문제는 배역을 수락할 경우 현실에서도 물고 뜯길 여지가 충분하다는 점이다.
tvN 월화드라마 ‘웨딩 임파서블’의 나아정(전종서 분)은 15년 지기 친구이자 LJ그룹 후계자 이도한(김도완 분)으로부터 상영기간 3년의 ‘쇼윈도 아내 역’캐스팅 제의를 받았을 때 일단 화부터 냈다.
제 인생 꽃길 걷자고 친구 인생 망치는 건 괜찮다는 배짱 아닌가? 사기공연이 막 내리고 나면 LJ그룹 법무팀이 그냥 있을까? 200억이 됐든 300억이 됐든 인생 끝장 내자고 물고 뜯고 덤빌텐데.. “야, 공주는 무슨 짓을 해도 다 용서받지만 잔다르크는 무려 나라를 구해놓고도 화형 당해 죽었어요. 호적이 무슨 엔딩크레딧야? 이름을 막 올렸다 내렸다 하게?” 15년 우정도 부질없다는 생각만 들었다.

근데 동지섣달 촐싹 나선 개구리같은 인물이 신경을 거슬린다. 이도한의 동생 이지한(문상민 분)이란 물건인데 아주 양팔 걷어부치고 도한으로부터 떼어낼 궁리만 한다.
그 극성이 별스러워 물어봤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왈 “내가 바라는 건 딱 하납니다. 형이 행복해지는 것.” ‘무슨 인생 목표가 그 따위래?’ 싶어 또 물어봤다. “도한이한테 목숨 빚이라도 졌어요?” 다시 왈 “네, 난 형 덕분에 살았습니다. 형이 뭔갈 가진다면 최고로 좋은 것이길 바랍니다.” 듣는 사람 배알 뒤트는 대답을 천연덕스럽게도 한다.
사실 이 위인이랑은 묘하게 얽혔다. 결혼식 친구 알바하고 나오다 부닥쳤을 때 그가 들고 있던 서류가 바닥에 흐트러졌었다. 까칠하게 굴길래 서류 중 한 장 이면에 립스틱 자국을 남겨 건넸었다. 미인의 입술이면 용서할만 하잖아. 사실 그때까지는 놈이 놈인지는 알지도 못했다.
이도한을 들먹이며 촬영장까지 찾아와서 헤어짐을 강요할 때 헛수고가 안쓰러워 다시 립스틱을 찍어 건넸더니 놈이 먼저 알아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자세가 불량했다. 형 친구면 누난데 존장에 대한 예우도 없고 사회생활도 젬병인지 빈손으로 입만 동동 나불댄다.
그래서 사회생활 꿀팁 하나 알려줬다. “평소 드라마 같은 거 안봤어요? 이럴 때는 돈봉투 같은 것도 가져오고 그래야 합의점 같은 것도 찾고 그러는 거예요. 준비성이 부족하셨어.”
이쯤하면 제 부족함을 알고 물러날만 하련만 또 달라붙는다. 그래서 “한 20억정도 줄 수 있어요?” 던져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말을 전다. 제일 친한 친구 동생이라 봐주기로 했었다.
그래도 인성이 마냥 바닥은 아녔던 지 말에서 추락했을 때 병원까지 쫓아와 보호자 행세는 해주었다.
그런가하면 뚱딴지같이 드라마의 조연으로 꽂아넣어 주기도 했다. 뒤늦게 생뚱맞은 낙하산임을 알고 하차하니 쫓아와서 염장을 지른다. 그래서 열받아 외쳐줬다. “니가 뭔데 날 이렇게 추접한 후회를 하게 만들어? 니가 진짜 못돼처먹은 이유는 니가 아니라 내 자신을 싫게 만든거라구!” 그때 작심했다. “도한아, 나 그거 할게. 결혼.”
여성 원톱 주연물이다. 나도 살면서 한번쯤은 꼭 필요하다는 곳에 있고 싶었다. 아무나 말고, 누구 대신도 말고, 그냥 꼭 나야만 하는 그런 역할. 이 역할 맡은 걸 후회할지 말지는 도피의 끝에서 결정하기로 작심했다. 혈육에게도 말 못할 도한의 비밀을 나만 알고 있으니 딱 맞춤 캐릭터 아닌가.
그랬더니 이지한이 안달났다. 명주 LJ 멀티쇼핑몰 부지로 데려가서는 제 형 도한이에게 그곳을 맡기는 게 제 꿈이라며 무릎꿇고 사과도 하고, 날 꼬셔보겠다고 옷 사주고, 부산영화제 에스코트도 하고, 못되게 구는 홍나리(주현영 분) 물먹이고, 내 연기 다 찾아봐 준 내역을 설명하며 감동도 줬다.
그렇게 좀 친해졌나 싶었을 때 제 버릇 개 못준다고 기껏 불러내서는 매너 똥인 엄한 놈을 갖다 붙인다. 뭐 원래는 더 괜찮은 사람 소개시켜 줄랬다나? 그러더니 뭐? 누가 나쁘게 말하면 열받을만큼은 내가 좋아진거 같다구?
어쨌거나 뭐 그렇게 정리는 얼추 끝났다. 양가 상견례도 했고 돌아가신 도한-지한의 친모 봉안당에도 가서 인사도 드리고..그렇게 도한과의 결혼은 작전대로 흘러갔다.
그런데 어째 시나리오가 자꾸 이상해지는 기분이다. 캐릭터가 성장·발전하는 건지, 새로운 갈등구조가 자꾸 끼어들려 한다. 남주가 이도한에서 이지한으로 바뀌는 기분? 비에 얽힌 지한의 트라우마가 안쓰럽고 도한에게 올인하는 지한의 스토리가 안타깝다. 시놉상 도한에게 집중할 캐릭터의 시선이 자꾸 지한 쪽을 바라보게 된다.
마침내 이지한이라는 존재가 충분히 상처줄 수 있는 사람이 됐다는 자각도 든다. 인생에서 서로 관련있는 사람이 된 기분이 들 땐 왜 반가운 웃음이 새어나오는 건데? 결국 이지한의 입에서 그 말도 나왔다. “나아정씨와 형을 인정합니다. 그러니까 한 번 행복해 보세요. 우리 형이랑”
그는 그 말 끝에 곱게 접힌 노란 종이학 한 마리를 손바닥에 쥐어주고 돌아서 갔다. 아정은 그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본다. 무언가 크게 잘못됐다는 기분에 사로잡힌 채.
아정은 몰랐겠지만 애초에 상정했던 탈주 스릴러는 애저녁에 엎어졌다. 장르가 본격 멜로로 바뀐 줄 아정은 7회에서나 깨닫는 모양이다. “이지한씨 정말 괜찮아요? 내가 도한이랑 결혼해도?” 묻는 걸 보면.
‘웨딩 임파서블’, 앞으로 본격 멜로 여주 나아정을 보는 재미를 기대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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