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있다.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이르기도 하지만, 성실하게 노력하는 이들은 주변 사람들도, 하늘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말일 수도 있다. 부단히 노력하고, 자신을 갈고 닦은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눈이 가고 기회를 주고 싶기 마련. ‘고려거란전쟁’을 통해 발견된 김오복이라는 배우가 바로 그렇다.
‘고려거란전쟁’ 촬영장에서의 에피소드는 좋든 나쁘든 김오복으로부터 시작됐다. 수염이 잘 붙지 않는 탓에 분장팀이 늘 신경을 써야 했고, 식사 시간이 빠듯한 탓에 급하게 밥을 먹다 옷에 음식물을 묻힌다거나 미처 떼지 못한 턱수염이 없어지기도 했다. 휴대전화는 물론 자동차 키도 잃어버려 스태프들이 가져다 주는 등 덜렁거렸다는 김오복. 분장팀이 ‘금쪽이’라고 부를 정도였다고 하지만 그를 얄밉게 보거나, 미워하는 이는 없었다. 밝고 쾌활 성격 때문이었다.
그리고 김오복은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배우다. 그래서 사람들을 더 잘 대하려 했다. 현장에선 늘 웃으면서 배우, 스태프 가릴 것없이 먼저 인사하고 눈을 맞췄다. 실수를 하면 바로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하고 고치려고 노력한 게 바로 김오복이다. 이런 성격 덕분에 미워할 수 없었는데, 그가 ‘고려거란전쟁’에서 맡은 역할 ‘양협’ 또한 김오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저와 너무 비슷하고 닮았어요. 제 배우 생활은 늘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었지만 그 속에서 어떻게든 씨를 뿌리고 열매를 맺기 위해 노력했거든요. 그래서 양협을 생각하면 측은한 마음에 가끔씩 눈물이 나요.”
내관 특유의 빛바랜 옥색 관복, 현종(김동준)을 보좌하면서도 그가 지시한 일을 100% 완수하지는 못하지만 시청자들이 양협을 아끼고, 눈여겨 보며 응원한 이유는 우리 인생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은 양협에게서 힘든 상황과 시련 속에서도 고군분투하는 우리의 인생을 발견, ‘하찮지만 누구보다 강인하고 강직한 강아지’라는 별명을 지어주며 애정을 보였다.
“양협을 보면 제 자신을 보는 것 같고, 더 나아가 우리의 삶을 보는 느낌이 들었어요. 인물 특유의 인간미가 있고 짠내 나는 측은지심, 어딘가 어리숙하고 서투르지만 누구보다 강인한 충성심, 섬세하고 풍부한 공감성과 감수성 등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그런 점들이 우리의 삶 속에 느낄 수 있는 평범한 모습이기에 감정이입을 해서 봐주신 것 같아요. 제게는 더없이 소중한 기회였고 간절했기 때문에 동료 배우와 작품에 누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내 연기를 보여주려 부단히 애썼죠. 그래서 촬영장에 갈 때마다 다양한 방식의 연기톤을 준비해 보여드리고 의논했고, 그런 간절함이 많이 보여져서 사랑해주신 게 아닌가 싶어요.”
2008년 한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며 데뷔한 뒤 ‘호텔델루나’, ‘꽃길만 걸어요’, ‘진심이 닿다’, ‘펜트하우스3’, ‘갯마을 차차차’, ‘구경이’, ‘옷소매 붉은 끝동’,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사랑의 이해’, ‘천원짜리 변호사’ 등 흥행작에 출연한 김오복. 하지만 비중이 적은 탓에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자신을 ‘프로다작러’, ‘열일의 아이콘’이라고 생각하며 한 작품 한 작품 소중하게 여겼고, 자신의 몫을 해냈다. 그렇게 노력한 끝에 찾아온 게 바로 ‘고려거란전쟁’이라는 기회였다.
“역할에 대한 갈증과 열망도 컸는데 내게는 왜 기회가 안 올까 생각하던 중 전우성 감독님과 인연으로 ‘고려거란전쟁’에 참여하게 됐어요. 전우성 감독님과 일전에 ‘꽃길만 걸어요’로 호흡을 한 적이 있는데 이후 제가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 시강관 역할을 하면서 내관과 비슷한 이미지라 인상 깊게 보시고 캐스팅을 해주신 것 같아요. 제게는 평생 은인이자 감사한 분입니다.”
“실제로 경쾌한 역할이 내게도 잘 맞긴 하지만 그런 역할만 계속 하면 반쪽짜리 배우가 될 수 있어 진중한 역할을 하고 싶었는데, 양협을 만나게 되면서 새롭게 연기 변신을 할 수 있었어요. 처음에는 내관이라고 해서 그저 왕에게 종속적이고 받쳐주는 역할이라 생각했죠. 하지만 대본을 읽어보니 상당히 큰 배역으로 느껴졌고, 그때부터 심장이 요동쳤어요. 처음에 대본을 받고 분석을 해보니 양협의 극 중 대부분의 역할은 현종에게 정보를 전달해주는 것이었지만 몽진 길 때부터는 정보 전달 뿐만 아니라 독립적으로 상황을 함께 이끌어가고 촉진시키는 기능이 첨가되면서 역할이 커졌어요. 호흡이 길다보니 언젠가는 양협의 극 중 역할 방향성과 흐름이 달라지거나 커질 수 있겠다 싶어서 준비를 해왔는데 작가님께서 양협을 다채롭게 만들어주셔서 좋았습니다. 감사해요.”
소속사 없이, 매니저 없이 혼자 움직인 탓에 김오복의 촬영은 녹록치 않았다. 10개월 간의 강행군 속에서 5kg가 빠질 정도였고, 일주일에 적게는 4일, 많게는 5~6일을 전국을 누비며 촬영했다. 그럼에도 행복했던 건 자신을 더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10개월간의 긴 호흡의 작품, 정말 몸이 두 개여도 모자랄 정도로 바빴어요. 체력적인 고갈과 함께 5kg가 빠질 정도로 모든 걸 쏟아 부었는데요. 내관이라는 역할과 사극이라는 특성상 일정이 자주 바뀌고 대본에 양협이 없어도 출연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즉흥적으로 투입되는 경우도 있어서 쉬는날에도 대기하는 마음으로 지냈습니다. 일주일에 적게는 4일, 많게는 5~6일 동안 전국을 누비며 촬영했어요. 소속사가 없어 혼자 촬영을 다니니 식사를 챙겨먹기도 힘들었고, 늦은 밤에 촬영이 끝나고 나면 집에 갈 때는 졸음이 쏟아지기도 해 매번 휴게소에 들러서 7~8시간을 자고 바로 촬영장으로 가곤 했어요. 10개월 동안 저와의 정신 없는 싸움을 했는데, ‘여기서 몸이 으스러져도 좋으니 더 연기하고 싶다’는 마음이었어요. 촬영하는 자체가 너무 행복하고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노력한 끝에 김오복은 ‘양협’ 역으로 현종, 강감찬(최수종), 채충순(한승현)과 함께 ‘고려거란전쟁’ 32회에 모두 출연한 캐릭터로 이름을 남겼다. 이는 김오복의 자부심이고, 배우로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됐다.
“전회차를 모두 나온 배우는 4명 정도에 불과하기에 나는 내 스스로가 제3의 주인공이다라는 마음으로 임했어요. 우스갯소리로 하면 많이 웃으시고 놀리는 분도 계시지만 내 역할의 크고 작음을 떠나 주인공이라는 마음으로 연기를 하면서 작품에 임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잘할 수 있었는데라는 아쉬움이 있죠.”
“배우로서 이번 기회를 통해 한단계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된 것 같아요. 그래서 ‘고려거란전쟁’에 더 애착이 있었던 것 같고요. 새해가 시작되면서 촬영할 때 ‘난 참 운이 좋다’라는 생각을 하며 뿌듯했어요. 마음 속에 좋은 추억들을 깊이 새기면서 간직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고려거란전쟁’ 그리고 양협이 언젠가는 잊혀지겠지만 오래 기억해주시고 아껴주셨으면 하는 작은 바람입니다.”
전회차에 출연하며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김오복. 양협을 생각하는 마음에 울컥해 눈시울이 붉어진 김오복은 지금도 10년 전 배우 박성웅이 해준 조언을 마음에 새기며 배우로서, 사람으로서 길을 잘 걸어가고자 한다.
“‘검사외전’ 촬영 때 박성웅 선배님이 ‘힘들게 올라온 사람은 그 가치를 알기에 변하지 않고 오래 간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올라오더라도 분명 쉽게 떨어진다’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10년 이상 그 말을 마음에 간직하고 있어요. 내관이 잘 안 보이는 캐릭터이기도 한데 양협의 매력을 보여드리려고 노력했고, 그 매력을 잘 봐주시고 좋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해요. 제게는 평생 잊지 못하는 영광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어떤 역할을 맡아도 다음 작품과 더 큰 역할을 기대했는데, ‘고려거란전쟁’을 마치면서 내가 또 이런 비중 있는 역할을 맡지 못하더라도 정말 많은 걸 누리고 사랑 받았기에 너무 영광스럽습니다. 시청자 분들의 반응을 찾아보며 키득키득 댔던 기억들이 스쳐가면서 사랑 받는 기분이 이런 거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앞으로도 배우로서 가치 있는 연기를 보여드리고 싶고, 더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긍정적인 생각을 심어주는 유쾌한 배우가 되고 싶어요. 지켜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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