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여왕’ 김수현-김지원의 낯선 키스..‘시한부’가 선사한 기적?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 김재동 기자
발행 2024.03.17 12: 59

[OSEN=김재동 객원기자] “내 말 잘 들어요. 사실 나 서울대 나왔어요. 그것도 법대. 우리 집 지방이긴한데 그래도 마을에선 유지 소리 듣는 집이구요. 예를 들면 소가 30마리가 넘어요. 엊그제 새끼 낳아서 35마리에 육박하고요. 지금 사는 오피스텔도 월세 아니고 전세, 예요. 그만큼 목돈이 있단 얘긴 거구.”
tvN 토일드라마 ‘눈물의 여왕’ (극본 박지은/연출 장영우, 김희원) 백현우(김수현 분)에게 삭제하고 싶은 첫 순간이 바로 그때였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홍해인(김지원 분)이 물어왔을 때 “그쪽이 인턴 짤리고 재취업이 안돼도 내가 당신 책임질 수 있다. 그 얘기요. 솔직히 맞벌이 선호했는데 홍해인씨라면 외벌이도 감당해 보고 싶어졌어요. 부담은 갖지 말고. 내가 좋아서 그래요. 그러니까 나 어때요?” 라며 가당찮은 프로포즈를 건넨 그 입을 지금도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다.

삭제하고 싶은 두 번째 순간은 홍해인이 퀸즈그룹 3세임을 알고난 후 사표내고 집에 칩거했을 때다. 헬기 타고 집으로 찾아온 홍해인을 보며 ‘천사 강림’으로 착각해 달려가 부둥켜 안은 순간이다. 그 거짓된 환영을 강요한 두 눈을 지금도 후벼 파고 싶다.
그렇게 ‘사위’라 쓰고 ‘노비’라 읽히는 퀸즈그룹의 일원이 된 3년은 그야말로 인고의 시간이었고 ‘하루를 살아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욕망에 마침내 이혼을 결심한 순간 청천벽력같은 희소식(?)이 당도했다. “나 죽는데. 석달 정도 남았데.” 생명의 위협을 감수하고 이혼을 감행할 이유가 삽시간에 사라져 버렸다. 요행 해인이 유언장이라도 고쳐준다면 과수원집 아들로 돌아갈 필요도 없어진다. 지난 3년도 견뎠는데 고작 석 달 쯤이야.
3개월 시한부 선고는 아무래도 실감이 안간다. 할 말 있다고 방을 찾아온 현우에게 그 사실을 알렸을 때 남편 현우가 눈물을 글썽이며 “너 없이 살라는게 나한테 말이 돼?”라며 안아준다. 이거 진짜야?
대학 친구인 윤은성(박성훈 분)이 ‘백현우가 널 사랑한다고 믿냐?’고 물었을 때 “어.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싫어서 죽을 것 같은 걸 견뎌주는 거야. 도망가지 않고 계속 같이 있는 거. 그 사람이 그렇게 하고 있어”라고 답해 줬었다.
퀸즈그룹 처가살이가 고된 것은 해인도 잘 알고 있다. 그렇게 싫어서 죽을 것 같은 시간들을 백현우는 견뎌내 주었다. 사실 그 사랑이 진짜일까 긴가민가 싶긴 했지만 시한부 사실을 전해듣고부터 백현우는 백방으로 기적 소생의 사례들을 찾아 웹서핑하느라 밤잠을 설치기도 했고 느닷없이 상처입은 채 나타나 해인에게 돌진하는 멧돼지에 맞서 해인을 구해내기도 했다.
세계각국의 의료기관에 문의해본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그래서 내가 정말 죽는다고? 헤르키나 입점이 코앞이다. 1조클럽 진입이 코앞이다. 사놓고 입어보지도 못한 리미티드가 몇 개고 사놓고 가보지도 못한 섬들이 몇 갠데. 다 두고 가라고? 작가 죽으면 오를 거라고 소장해둔 예술품이 몇 점인데 그 할아버지들보다 내가 먼저 죽는다고? 그리고 잠든 백현우. “네가 제일 아까워!”
백현우가 아깝기 시작하자 끊임없이 백현우만 보게 된다. 단정한 이마, 그린듯한 짙은 눈썹, 웃을 때 하얗게 드러나는 고른 치열. 심장이 뛴다. 그 눈망울을 보면 이렇게 험한 세상에서 이 여린 남자가 버텨나가는 게 안쓰러워 안아주고 싶기도 하고. 어떤 날은 남편의 어깨가 너무 넓어 안기고 싶기도 하고 이렇게 위험하고 치명적인 남자를 세상에 매일 내놓는 게 맞나 싶는 등 결혼 3년이 지나도록 못 느낀 감정들이 널뛰듯 불쑥불쑥 치솟는다.
자문을 구한 나비서(윤보미 분)는 용하게도 ‘뇌에 큰 병이 든 탓’이라 진단했다. 병 탓이 맞아 보인다. 불쌍한 걸 보면 동정심이 들지 않나, 자꾸만 사람들에게 공감이 되질 않나, 남편보고 설레질 않나. 홍해인이란 완벽한 인생에 느닷없이 끼어든 이물질 같은 감정들. 의사는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들의 공통된 심경변화라고 분석했다. 그러니까 결국 난 죽는다는 얘기잖아. 아닐 걸? 또 다른 기적이 기필코 날 살려낼 걸?
허세는 부려보지만 마음은 불안하다. 그래서 안하던 짓 다 해보고 살기로 했다. 늦은 귀가에 마중 나온 남편 현우의 입술을 훔치는 것 포함해서. 도대체 그동안 뭔 짓을 한거야. 이 좋은 남편을 쇼윈도용으로만 써먹다니.
해인을 멧돼지로부터 구해낸 후 처가의 온도가 달라졌다. 꿩백숙 중 그 귀한 다리를 장인 홍범준(정진영 분)이 직접 뜯어주질 않나. 시끄러운 집안 뒤처리 하느라 고생한 걸 인정해 주며 어깨를 두드려주지 않나. 이대로라면 아내 사후 그림좋게 자유를 획득할 수 있을 모양새다.
하지만 인생 고꾸라트릴 허방은 어디나 있는 법. 가장 가까운 형 백현태(김도현 분)와 누나 백미선(장윤주 분)이 그 장본인일 줄이야. 현우의 이혼 결심에 안달 난 이 둘이 이혼을 만류하는 문자를 해인에게 보내고야 말았다.
그 해인은 술에 취해 현우에게 진심을 밝혔다. “나 배신하고 뒤통수 치고 뒤에서 딴 짓하는 놈들 확 다 죽일라구.” 말인즉슨 석 달 밖에 못사는 판이니 누구 하나 죽여도 재판 몇 번 받다보면 죽을테니 상관없다는 속셈. 해인이 미선의 문자를 보는 순간 현우의 인생은 그렇게 끝장나기로 예약된 판이다.
오버에 오버를 더하여 해인의 핸드폰을 떨쳐낸 현우. 이번엔 느닷없이 육박해오는 해인의 입술박치기에 정신이 혼미해진다.
기억 속에만 어렴풋한 낯선 키스. 그 낯선 감촉이 불러올 낯설어질대로 낯설어진 낡은 감정들. 이 부부에게 남은 석 달이 예사롭지 않게 전개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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