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영화 '파묘', 오컬트 아래 묻었던 민족주의...겁나 힙하게 험했다 [Oh!쎈 초점]
OSEN 연휘선 기자
발행 2024.03.24 22: 24

(*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극장가 불황에도 '천만 영화'가 탄생했다. 서늘한 오컬트의 탈을 쓴 뜨거운 민족주의 영화 '파묘'다.
24일 한국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파묘(감독 장재현)가 드디어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지난달 22일 개봉한 지 32일 만의 성과다. 배급사 쇼박스에 따르면 최민식, 유해진, 김고은을 비롯한 주요 배우들이 군 복무 중인 이도현까지 등신대로 삼아 영화의 흥행을 함께 기념했다. 
국내 오컬트 장르 작품 중 첫 천만 영화, 올해 2024년의 첫 천만 영화 등 '파묘'의 천만 관객 돌파는 그 자체로 여러 의미를 지닌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념비적인 것은 최근 영화계의 불황에도 불구하고 올해 1분기가 채 지나기 전에, 개봉 1개월 여 만에 흥행을 기록했다는 점이다. OTT 월 구독료와 극장 티켓값을 저울질하는 게 익숙한 최근 관객들의 마음을 '파묘'는 어떻게 파고들었을까.

# 오컬트 아래 첩장된 민족주의
'파묘'는 단언컨대 오컬트 영화다. 작품을 만든 장재현 감독부터가 '검은 사제들', '사바하'로 '오컬트 외길'을 걸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여러 단계로 나눠진 작품의 전개 과정 가운데 초중반까지 공포 영화에 가까울 정도로 오싹함을 선사한다. 특히 박지용(김재철 분)이 전화를 건 목소리와 호텔 객실 문을 두드리는 목소리 사이 누가 진짜 김상덕(최민식 분)인지 혼란에 빠지는 장면은 현실적인 소재들을 호러로 풀어낸 탁월한 설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중후반에 접어들며 '파묘'의 정체성은 민족주의를 강조한 드라마로 변모한다. 모두를 겁에 질리게 만들었던 '겁나 험한 것'의 정체가 한반도의 지맥을 끊기 위해 쇠말뚝이 된 일본의 악령이었던 것. 그 위에 첩장된 조상 역시 나라를 팔아넘긴 친일 매국노였음이 드러나며 영화는 강한 항일 정서를 자극한다.
주요 인물들의 이름마저 범상치 않았다. 계속해서 독립운동가 '윤봉길 의사'를 떠올리게 만들었던 젊은 무당 윤봉길(이도현 분)이나, 그와 함께 활약한 또 다른 여성 항일운동가의 이름을 딴 이화림(김고은 분), 반민특위 위원장의 이름을 딴 김상덕, 을미사변 주동자 우범선을 처단한 의인의 이름을 딴 고영근(유해진 분)까지. 영화 시작부터 깔아둔 '항일' 코드가 후반부 험한 것과 함게 정체를 드러내며 작품의 맥을 새롭게 뛰게 한다. 
물론 작품 끝까지 '오컬트'를 기대한 관객들에게 '파묘'의 민족주의 메시지는 일면 실망감을 안기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일 매국노의 묫자리 아래 일본의 악령이 첩장돼 있던 것처럼 영화는 오컬트 아래 민족주의 드라마를 숨기는 영리함으로 오컬트라는 마니아들의 장르도, 민족주의라는 한국이라면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감정선도 동시에 풀어냈다. 
# 중장년층 파고 든 풍수지리&무속신앙
'파묘'는 미국 LA에 사는 부자 교포에게 거액의 의뢰를 받은 젊은 무당 화림과 봉길은 기이한 병이 대물림되는 집안의 장손을 만난다. 조상의 묫자리가 화근임을 알아챈 화림은 이장을 권하고, 돈 냄새를 맡은 최고의 풍수사 상덕과 장의사 영근이 합류해 기이한 묘를 파묘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 과정에서 전통적인 장례 문화부터 풍수지리, 무속 등 한국의 전통적인 가치관에 큰 영향을 준 토속신앙들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묘탈, 묫바람, 대살굿(타살굿) 등 작품을 둘러싼 전반적인 소재 자체가 한국인이라면 낯설지 않은 소재임은 당연하지만, 그 중에서도 중장년층 관객들에게는 당연한 일상이었을 정도로 친숙한 소재들이다.
자연스레 '파묘'의 관객들 연령층도 다양해졌다. CGV에 따르면 국내 영화 흥행을 주로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진 2030 여성이 '파묘' 관객 56%를 차지하긴 했으나, 성별을 뛰어넘은 4050 중장년층 관객들도 38.5%에 달할 정도다. 자칫 진입장벽일 수 있는 영화의 소재가 중장년층에게는 한층 자연스럽게 다가갔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는 부분이다. 
# '할꾸' 최민식·'MZ 무당' 김고은X이도현
그런가 하면 배우들의 면면은 젊은 관객들을 '파묘'의 판으로 끌어당겼다. 단적인 예로 최민식은 '파묘'에서의 열연 만큼이나 작품 홍보 과정에서의 모습들로 더욱 화제를 모으고 있다. 무대인사마다 맨들에게 선물받은 머리띠, 과자 가방 등을 거부감 없이 착용하는 모습으로 친근감과 호감을 동시에 자아내고 있는 것. 그의 모습을 본 관람객들 사이 '할꾸(할아버지 꾸미기)'라는 표현까지 익숙하게 등장했다. 
김고은과 이도현은 영화 스틸 컷과 포스터부터 '힙'한 존재감을 뿜어냈다. 경문을 전신에 문신으로 새기고, 헤드셋을 끼고 다니는 봉길은 물론 컨버스를 신고 굿을 하는 화림까지. 'MZ무당'이라는 이들의 설정값을 탁월하게 소화해낸 김고은과 이도현은 중장년층의 소재일 줄 알았던 토속신앙을 젊은 관객들에게도 거부감 없이 전달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 결과 '파묘'는 세대를 뛰어넘어 관객들을 사로잡고 있다. 다수의 흥행영화가 으레 그렇듯 'N차 관람' 열풍을 불러온 것은 물론 팬 감성으로 만들어신 스페셜 포스터와 무대인사 '할꾸' 문화까지 만들어내면서. 땅 속 깊숙하게 박혀 있다 파내진 험한 것은 어쩌면 관객들이 티켓값 생각 않고 흠뻑 빠져 즐길 수 있던 영화가 아니었을까. '파묘'가 친일 매국의 잔재부터 관객들의 꺼져가던 열망과 극장가 흥행의 열기까지 거침 없이 파냈다. / monamie@osen.co.kr
[사진] 영화 포스터 및 스틸 컷 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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