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지 풍파를 겪고 상처가 나으면서 굳은살이 더 단단해지는 게 인생인 거 같다. 모든 사람들의 인생이 그럴 것이기 때문에 안쓰럽고 애잔하다.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헤쳐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응원하듯 모든 사람들을 응원해 주고 싶은 마음이다.”
배우 김규리(45)가 26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OSEN과의 인터뷰에서 그간의 행보를 돌아보며 “모든 배우들이 저와 똑같은 고민을 한다. 작품은 한정돼 있는데 출연할 배우들이 많기 때문에 자신의 작품을 만나기 전까지 스스로 잘 쌓아나가며 쉬어야 한다. 화려한 만큼 그림자도 짙다. 저에게는 그림이 있기 때문에 제 것을 해나가면서 작품을 기다리고 있겠다”라고 이 같이 의연하게 말했다.
김규리는 이달 21일까지 ‘쉼표,’라는 주제로 개인전을 마쳤다.
“2021년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게 됐다. 그해 6월에 첫 개인전을 열고 목포에 내려가서 촬영했던 게 이 영화다. 이 영화의 촬영을 마치고 드라마 ‘그린 마더스 클럽’을 찍었다. 배우로서의 길을 걸어왔지만 제가 힘은 없다. 작가로서 활동하며 저만의 힘을 기르려고 한다. 첫 번째 정체성은 배우다. 작품 출연 제안을 받으면 최선을 다할 것이다.”
김규리는 그러면서 “경험치가 쌓일수록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거 같다”라며 “배우라는 직업은 이제 막 데뷔해서 신선한 에너지를 전달하는 것도 너무 중요한 일인데, 한편으로는 같이 늙어 온 경력과 연륜도 무시하지 못 한다. 저는 선배님들의 연기를 더 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드러냈다.
김규리가 새 영화 ‘1980’(감독 강승용, 제작 ㈜히스토리디앤피·(주)디에이치미디어·굿픽처스, 제공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공동제공 (주)MK 글로리아, 공동배급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와이드릴리즈(주))으로 스크린 컴백했다. 주연작은 ‘화장’(2015) 이후 9년 만이며, ‘악인전’(2019) 특별출연 이후 5년 만의 신작이다.
‘1980’은 제목대로 1980년대 광주와 전남 일대를 배경으로 삼은 드라마 영화다. 전남도청 뒷골목에서 5월 17일 중국 음식점을 개업한 철수네 가족과 이웃들의 이야기로 12·12 군사반란이 일어난 지 불과 5개월 후를 풀어냈다. 김규리가 연기한 철수 엄마는 둘째 아이를 임신한 채 가족을 돌봐야 하지만 언제나 환한 미소를 잃지 않는 며느리다. 집안의 활력소이자 동네의 궂은일 해결사로서 활약한다.
이날 김규리는 “‘1980’의 감독님으로부터 출연 제안을 받고 대본을 읽어봤는데 너무 좋았다. 대본이 좋아서 하게 됐다”라고 출연 이유를 전했다.
그러면서 김규리는 “‘1980’의 출연 제안을 받고 나서 제가 진행하던 라디오 ‘퐁당퐁당’이 폐지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폐지 일주일 전에 국장님께 들어서 너무 속상했다”라며 “라디오 DJ를 할 때 제가 직접 대본을 썼을 만큼 애정이 컸다. 게스트를 초대해서 인터뷰를 하기도 했었고. 그 정도로 프로그램에 애정이 컸는데 어떻게 헤어져야 하는지 몰라서 가슴이 많이 아팠다. 근데 막다른 길은 없는 거 같다. 인생이라는 게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게 되더라”고 담담하게 털어놨다.
그녀는 지난 2019년 2월부터 2021년 3월까지 2년 넘게 TBS FM ‘김규리의 퐁당퐁당’ DJ를 맡았다. “지금도 ‘퐁족’이라고 말씀해 주시는 분들을 만나면 너무 반갑다”라고 애정을 드러냈다.
‘1980’의 개봉은 3월 27일. 그러나 당초 올 초까지 구체적인 일정은 잡히지 않았던 바. 이에 김규리는 “올해 초까지 개봉일이 결정되지 않았다. 개봉을 한다고는 했는데 날짜가 계속 변경이 되더라. 영화 ‘서울의 봄’ 덕분에 개봉하게 된 거 같다”라고 말했다.
이어 김규리는 “텀블벅(크라우드펀딩 사이트) 덕분에 개봉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있다. 정말 기적적인데 금액은 3만 원, 7만 원(후원)이 기본이다. 그렇게 2억 5천만 원이 모였다. 이 영화가 개봉할 수 있었던 것은 기적이다. 그 소식을 듣고 눈물이 나더라”고 개봉 소감을 전했다.
“1980’이 정치 영화는 아니다”라고 강조한 김규리는 “배우가 작품에 출연하는 게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 정치적인 프레임 안에 넣고 나를 재단하면 ‘쟤는 저런 아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다. 근데 나도 내 인생이 어떤지 모르기 때문에 누군가 나를 쉽게 판단하고, 보고 싶은 대로 나를 그렇게 부르는구나 싶다. 근데 제가 어릴 때부터 배우의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이것도 내 숙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규리는 하고 싶은 장르가 있느냐는 물음에 “저는 액션배우가 되고 싶다. 제가 ‘댄싱 위드 더 스타’를 하면서 춤을 춰봤는데 몸을 잘쓴다고 느꼈다. 제가 여배우들 가운데 몸을 잘쓴다고 생각한다.(웃음) 마동석 오빠가 (자신이 차린) 복싱장에 다니라고 하더라. 회원제라서 50명만 받는다고 하는데 저를 불러주셔서 이미 회원 등록을 마쳤다. 전시회를 마치고 가겠다고 했다”라고 답했다.
김규리는 앞으로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떤 틀에 갇히지 않는 연기 활동을 하고 싶다는 바람을 토로했다.
“나한테 왜 이런 일이 벌어지나 싶을 때도 있지만 뒤돌아봤을 때 ‘이게 나한테 도움이 되네?’ 싶은 순간이 있다. 그때는 필요 없다고 생각했던 일이 지금 와서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인생 전체를 놓고 봤을 때 무의미한 일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다 의미가 있다. 경계하고 조심해야 할 것은 건강을 잃는 일이다. 그러면 그게 단맛인지, 신맛인지 모른다. 그게 가장 슬픈 일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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