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투수'의 부활에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가 반색했다. 류현진(37)이 9실점 충격을 딛고 바로 다음 경기에서 무실점 투구로 완벽하게 살아났다.
류현진은 지난 11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원정경기에 선발등판, 6이닝 1피안타 1볼넷 8탈삼진 무실점 호투로 한화의 3-0 완승을 이끌었다. 메이저리그 진출 전 마지막 승리였던 2012년 9월25일 잠실 두산전 이후 4216일(11년6개월21일) 만에 KBO리그 승리투수가 됐다.
직전 등판이었던 5일 고척 키움 히어로즈전에서 4⅓이닝 9피안타 2볼넷 2탈삼진 9실점으로 크게 무너졌지만 바로 반등에 성공했다. 류현진부터 시작된 한화의 5연패도 류현진이 직접 끊었다. 팀이나 개인에게나 여러모로 의미가 큰 승리였다.
무엇보다 주무기 체인지업이 살아난 게 고무적이었다. 첫 3경기에선 체인지업이 효과적이지 않았다. 메이저리그 시절에도 갈수록 체인지업 구종 가치가 하락했는데 한국에 와서도 타자들의 배트를 유인하지 못했다. 커브 비중을 늘렸지만 카운트를 잡으려고 들어간 직구나 커터가 상대 타자들의 컨택에 공략당하면서 고전했다. 그러자 류현진은 평소 루틴과 다르게 등판 이틀 전 불펜 피칭에 나섰고, 팔 스윙을 빠르게 가져가는 식으로 조정을 하며 체인지업 되찾기에 나섰다.
이날 두산전에는 류현진다운 체인지업이 돌아왔다. 평소보다 조금 더 빠른 구속으로 움직이다 떨어지는 체인지업에 상대 타자들의 스윙이 계속 따라나왔다. 2회 박준영 상대로는 7구 연속으로 체인지업을 던져 헛스윙 삼진을 빼앗기도 했다. 체인지업 위력이 살아나자 몸쪽 깊은 직구나 커터, 낙차 큰 커브도 같이 살아났다. 체인지업으로 잡은 삼진이 4개로 직구와 커브도 각각 3개, 1개. 직구로 잡은 삼진 3개는 전부 우타자 몸쪽 낮게 들어간 공으로 루킹 삼진이었다. 제구도 기가 막혔다.
최원호 한화 감독도 12일 대전 KIA 타이거즈전을 앞두고 류현진에 대해 "체인지업을 속도를 조금 올렸다. 앞서 3경기에서 던졌던 체인지업보다 속도를 조금 높여서 무브먼트 조금 줄였다. 수치상으로 달라진 건 그것밖에 없다. 스스로 바꿨다"며 "커터와 직구의 코너워크가 잘되고, 그 다음에 카운트 잡는 커브도 스트라이크로 잘 잡혔다"고 설명했다.
실제 류현진의 체인지업 구속은 키움전에서 최고 131km, 평균 125km였지만 두산전에선 최고 136km, 평균 133km로 크게 빨라졌다. 평균 구속 기준으로 8km 체인지업이 빨라졌다. 우타자 기준 바깥으로 흘러나가는 무브먼트는 줄었지만 직구처럼 비슷하게 날아오다 아래로 떨어지면서 타자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이날 직구 구속도 트랙맨 기준 최고 149km, 평균 146km로 힘이 넘쳤고, 체인지업이 더욱 위력을 떨쳤다. 스스로 팔 스윙에 변화를 주면서 돌파구를 찾았고, 1경기 만에 9실점 충격을 빠르게 극복했다.
한화 팀으로서 봐서도 5연패 탈출이란 점에서 의미가 크다. 최 감독은 "그래서 에이스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다. 키움전부터 연패가 시작됐으니 본인도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이다. 선수들한테 미안한 것도 있고, 팬들한테 창피한 것도 있고 여러 가지로 복합적으로 있지 않았을까 싶다"며 "상당히 비장하게 준비해서 나왔는데 결과가 좋게 나왔다. 상대팀도 에이스급 선수(브랜든 와델)가 나왔는데 류현진이 최고의 피칭을 보여주면서 연패를 끊을 수 있었다"고 큰 의미를 부여했다.
5회까지 투구수가 82개라 교체도 살짝 고민했지만 다른 투수도 아닌 류현진이라 믿고 갔다. 최 감독은 "황준서나 문동주, 이런 어린 선수들이었으면 잘 던졌을 때 좋은 기억을 갖게 해줄 수 있는데 류현진은 그럴 필요가 없다. 82구에서 빼면 감독이 불안해서 빼는 것밖에 안 된다. 불펜에서 준비는 하되 류현진을 올렸다. 앞서 두 번 교체 타이밍이 늦었으니 준비를 하면서 상황을 봤다. 90구 언저리였으면 바꿨을 텐데 어제는 볼 자체도 좋았다"고 에이스에 대한 믿음을 드러냈다.
한편 한화는 이날 KIA 좌완 선발 윤영철을 맞아 최인호(좌익수) 요나단 페라자(우익수) 노시환(3루수) 채은성(1루수) 안치홍(지명타자) 문현빈(2루수) 최재훈(포수) 이도윤(유격수) 임종찬(중견수) 순으로 선발 라인업을 내세웠다. 선발투수는 펠릭스 페냐. 좌완 윤영철을 상대로 우타자 이진영 대신 좌타자 임종찬이 중견수로 들어간 게 눈에 띄는 특징.
최원호 감독은 “임종찬이 시범경기에서 확 좋았다가 페이스가 꺾여서 회복할 시간을 줬다. 이진영이 최근 2경기에서 조금 그랬고, 윤영철이 우타자에 비해 좌타자한테 조금 어려움을 겪어서 임종찬을 넣었다. 좌투수 볼에 컨택이 안 되는 선수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윤영철은 올해 피안타율을 보면 좌타자(.294)보다 우타자(.211)가 훨씬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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