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외야수 장진혁(31)이 1군 콜업 첫 경기부터 존재감을 보여줬다. 멀티 출루에 공격적인 주루 플레이로 경기 흐름을 바꿨다. 발 빠른 선수가 부족해 장타 아니면 답답하던 한화 야구의 갈증을 풀었다.
장진혁은 지난 19일 대전 삼성전에 9번타자 중견수로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최원호 한화 감독은 “이진영이 지난주부터 페이스가 좋지 않고, 상대 선발이 우투수(이호성)라 장진혁이 선발로 나간다. 그린 라이트로 뛸 수 있고, 우리 팀에서 높은 수준의 수비력을 갖췄다”고 기대했다.
최원호 감독 기대에 제대로 부응한 경기였다. 3회 첫 타석에서 삼성 선발 이호성의 4구째 커브를 받아쳐 중전 안타로 출루한 장진혁은 요나단 페라자 타석 때 초구에 폭투가 2루까지 냅다 뛰었다. 원바운드된 공이 멀리 튀지 않고 포수 강민호가 빠르게 잡았지만 과감하게 2루로 스타트한 장진혁이 마치 도루를 하듯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으로 살았다. 이후 페라자의 좌전 안타 때 2루에 진루한 장진혁은 노시환의 좌전 적시타로 홈을 밟아 선취 득점을 올렸다.
4회에도 2사 후 장진혁이 포문을 열었다. 최하늘의 4구째 공에 맞고 사구로 1루에 걸어나간 장진혁은 다음 타자 최인호 타석 초구에 또 뛰었다. 강민호의 2루 송구가 정확하게 갔지만 또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한 장진혁의 베이스 터치가 빨랐다. 최인호의 볼넷으로 계속된 1,2루에서 페라자의 우측 2타점 2루타가 터지면서 장진혁이 또 득점을 올렸다.
한화의 선취점과 추가점 모두 장진혁부터 시작됐다. 시즌 첫 1군 경기에서 3타수 1안타 1사구 2득점으로 활약하며 한화의 6-1 승리에 큰 힘을 보탰다. 경기 후 장진혁은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해보려고 노력했다. (퓨처스) 고치 스프링캠프부터 더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발전하려고 나름대로 준비를 많이 했다. 외야수라면 방망이를 잘 쳐야 하기 때문에 그 부분에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2016년 2차 4라운드 전체 39순위로 한화에 지명된 우투좌타 외야수 장진혁은 2018년 1군에 데뷔했고, 2019년 113경기 타율 2할5푼4리(315타수 80안타) 1홈런 24타점 13도루로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2002년 시즌 중 군입대한 뒤 성장이 멈췄다. 2022년 후반기 복귀했지만 지난해까지 1~2군을 오르내리며 자리를 잡지 못했다.
공수주에서 잠재력은 인정받고 있다. 공을 맞히는 컨택이 되고, 발이 빨라 수비와 주루에서 쓰임새가 많다. 한화를 거친 감독들마다 한 번씩 장진혁을 밀어주는 기간이 있었다. 충분히 재능 있고, 성실함도 갖췄지만 내부에선 조용하고 내향적인 성격이 성장을 가로막는 요소로 봤다.
외부에서 보는 눈도 비슷했다. KBO리그 통산 최다 2256경기에 출장 중인 삼성 포수 강민호는 지난해 연말 ‘한화 레전드’ 김태균 KBSN스포츠 해설위원이 운영하는 개인 방송에 출연, 노시환과 문동주를 제외하고 좋아 보이는 한화 선수로 장진혁을 꼽으며 “포수를 하면서 보면 변화구 대처 능력이 좋다. 어깨 좋고, 발도 빠르다. 단지 성격이 내성적인 것 같더라. 같은 팀에서 생활을 해보진 않았지만 경기장에서만 봐도 조용조용한 성격이다. 뭔가 표현이 없다. 성격을 바꾸고 밝게 하면 야구 잘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장진혁도 이 방송을 보고 느낀 게 많았다. 지난 1월 그는 “삼성과 경기하면 타석에 들어서서 준비할 때마다 강민호 선배님이 ‘웃어, 웃어’라고 하신다. ‘웃으면 야구 진짜 잘할 것 같다’고 매번 말씀하셨다. 따로 인연은 없는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다. 다들 나를 좋게 보는데 내가 나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던 것 같다. 나 자신한테 조금 더 믿음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올해는 1군 스프링캠프에서 제외돼 시범경기와 시즌 개막 후에도 계속 2군에 머물렀다. 하지만 장진혁은 좌절하지 않고 기회를 기다리며 준비했다. 녹록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주변으로부터 밝아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다. 그는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에만 집중하다 보니 압박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조금 더 웃는 것 같다”며 “오늘도 타석에서 강민호 선배님이 웃으라는 얘기를 해주셨다”고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