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가 다쳤으니 호재라는 말은 쓸 수 없다. 그래도 냉정하게 득실을 따지자면 이정후(26·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겐 나쁠 게 없다.
이정후는 23일(이하 한국시간)부터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오라클파크에서 뉴욕 메츠 상대로 홈 3연전을 갖는다. 이정후에겐 다소 부담스런 일정이 될 수 있었는데 바로 메츠의 좌완 불펜 브룩스 레일리(36) 때문이었다.
지난 2015~2019년 5년간 롯데 자이언츠에서 활약하며 국내 팬들에게도 낯익은 레일리는 이정후가 KBO리그 시절 가장 두려워한 투수였다. 2017~2018년 레일리와 2년간 총 17차례 맞붙었는데 15타수 무안타 1볼넷 1사구 6삼진으로 이정후가 안타를 단 하나도 때리지 못했다.
레일리는 좌완 스리쿼터로 공을 숨기고 나오는 디셉션이 좋고, 팔 회전까지 빨라 좌타자들에게 ‘저승사자’ 같은 존재다. KBO리그 시절 5년간 통산 피안타율 .232, 피OPS .557에 불과했다. 이정후 외에도 제라드 호잉(.053), 로저 버나디나(.083), 이승엽(.174), 이용규(.192), 박용택(.200) 등 여러 좌타자들이 레일리에게 애먹었다.
결국 2019년 이정후는 레일리를 피해갔다. 그해 레일리는 키움전에 4경기 선발등판했지만 이정후는 한 번도 선발 라인업에 들지 않았다. 그해 3월23일 사직구장에서 열린 시즌 개막전을 포함해 3경기를 레일리가 내려간 뒤 대타로 투입됐다. 당시 개막전 때 장정석 키움 감독은 “레일리를 상대하고 난 뒤 타격 밸런스와 리듬이 깨진 게 4~5경기 이어졌다. 앞으로도 레일리가 나오는 날은 이정후의 휴식일”이라고 설명했다.
레일리는 2020년 마이너 계약을 거쳐 메이저리그에 복귀했고, 수준급 불펜 요원으로 자리잡으며 다년 계약도 따냈다. 신시내티 레즈, 휴스턴 애스트로스, 탬파베이 레이스, 뉴욕 메츠 등 4개 구단을 오가면서 올해까지 5시즌 213경기(184⅓이닝) 5승8패12세이브70홀드 평균자책점 3.42를 기록 중이다. 2022~2023년 탬파베이, 메츠에서 2년 연속 25홀드를 거두며 2점대 평균자책점으로 스텝업했다.
올해도 메츠에서 8경기 1승4홀드 평균자책점 0.00으로 호투하고 있었다. 7이닝 동안 안타 2개, 볼넷 3개만 내줬을 뿐 삼진 9개를 잡으며 무실점. 강력한 위력을 떨치며 메이저리그에 온 이정후와 6년 만의 맞대결 성사 여부에 관심이 모아졌지만 부상 변수가 발생했다. 왼쪽 팔꿈치 염좌로 15일짜리 부상자 명단에 오른 것이다.
22일 ‘MLB.com’을 비롯해 현지 언론에 따르면 레일리는 MRI(자기공명영상) 검사 결과 구조적인 손상은 드러나지 않아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 레일리는 등판 후 다음 경기까지 회복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지난 20일 LA 다저스전 등판 이후 상태가 악화됐다. 레일리는 “한계에 다다랐다”고 표현했다.
염증을 줄이기 위해 코티손 주사를 맞은 레일리는 당분간 휴식과 회복에 집중한다. 카를로스 멘도사 메츠 감독은 “지난주 레일리의 회복이 잘되지 않았다. 몇 번이나 등판 기회가 있었지만 쓰지 않았다”며 “2주 이상 부상이 아니길 바란다”고 말했다.
레일리가 빠진 자리에 메츠는 우완 투수 그랜트 하트윅을 트리플A 시라큐스에서 콜업했다. 이번 샌프란시스코 원정 때 메츠의 좌완 불펜은 제이크 디크먼 1명뿐이다. 좌우 투수를 크게 가리진 않지만 우투수 상대 성적(타율 .288 OPS .757)이 좌투수(타율 .269 OPS .644)보다 조금 더 좋은 이정후에겐 긍정적 요소라 할 만하다.
한편 이정후는 22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전에서 6회 ‘스플래시 홈런’이 될 것 같았던 타구가 우측 폴대 바깥으로 살짝 벗어나 아쉬움을 삼켰다. 볼넷과 몸에 맞는 볼로 두 번 출루했지만 2타수 무안타로 11경기 연속 안타 행진이 끊긴 이정후는 시즌 타율 2할8푼2리(85타수 24안타)를 마크했다. 23일 메츠전에서 다시 안타 생산에 도전한다. 메츠에선 좌완 호세 퀸타나가 선발등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