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줘야 할 선수라는 것을 이제 기대하면 안 될 것 같다.”
김태형 롯데 자이언츠 감독은 커리어를 쌓아온 베테랑 선수들, 이름값 있는 주전급 선수들에 대해 예우를 해주는 스타일이다. 괜히 그만한 경력을 쌓아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고 우선적으로 기회를 주려고 했다. 다만 스타급 선수들이라고 하더라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아쉽다면 1군에서 제외하는 등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그동안 지도했던 선수단이 아닌, 새로운 팀인 롯데에서는 우선 기존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는 듯 했다. 프로야구 최고의 명장으로 평가 받는 김태형 감독에게 롯데는 도전이었다.
이 도전의 초반 결과는 험난하다. 생각했던대로 경기는 풀리지 않았고 빈약한 선수단 뎁스의 민낯이 빠르게 드러났다. 주축으로 생각했던, ‘해줘야 할 선수들’이라고 생각한 선수들이 부상으로 개막부터 함께하지 못했고 또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다. 롯데는 개막 4연패로 시즌을 시작했고 최근에는 2019년 이후 약 5년 만에 8연패 수렁에 빠지기도 했다. 그나마 지난 18일 잠실 LG전에서 8연패를 탈출한 뒤 더블헤더가 포함된 KT와의 주말 3연전에서 2승1무를 마크, 3연승을 반등세로 돌아섰다.이 과정에서 김태형 감독은 선수단에 변화의 신호를 줬다. 단순히 엔트리 변동으로 메시지를 던진 게 아니다. 이미 롯데는 야수진의 FA 듀오인 포수 유강남과 유격수 노진혁을 2군으로 내려보냈다. 유강남은 17경기 타율 1할2푼2리(41타수 5안타)로 부진한 끝에 지난 15일 1군에서 제외됐다. 노진혁도 14경기 타율 1할7푼6리(34타수 6안타)에 그친 채 지난 11일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다.
각각 주전 포수와 주전 유격수로 생각했던 선수들이었지만 이들에게 무한하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2군에서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렇다고 섣부르게 1군으로 불러 올리지 않고 있다. 노진혁은 이미 2군으로 내려간지 12일이 됐지만 아직 1군에 올라오지 못했다. 지난 19일 상무와의 경기에서 3타수 2안타(1홈런) 1타점 1볼넷으로 활약을 했다. 다시 1군에 올라올 수 있는 상황인데, 23일 1군 등록 가능성도 있지만 열흘 후 무조건적인 콜업은 없었다.
유강남은 아직 1군 등록 시점이 되지 않았지만 마음을 좀 더 추스리고 감각을 찾기까지 시간이 더 필요할 전망. 지난 19일 상무전 3타수 무안타에 병살타 1개를 기록했다. 또한 김태형 감독은 FA 선수들 못지 않게 기존 젊은 선수들에 대한 기대감도 높았다. 대표적인 게 한동희와 김민석이었다. 한동희는 ‘포스트 이대호’로서 지난해 극심했던 부진을 딛고 올해 김태형 감독의 중심 타선에서 역할을 해주기를 바랐다. 지난 비시즌에는 롤모델 이대호의 지원을 받고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강정호 아카데미에서 개인 레슨을 받는 등 기대감을 높였다. 비록 6월 초 상무 입대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입대 전까지 타선에서 장타를 펑펑 터뜨려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시범경기에서 내복사근 파열 부상을 당해 개막 엔트리에 포함되지 못했다.
김민석도 올해 주전 좌익수로 낙점을 받았다. 스프링캠프 동안 좌익수 자리에서 발전된 모습을 보였고 김태형 감독도 김민석의 의지를 확인했다. 하지만 시범경기 직전 수비 훈련 과정에서 역시 내복사근 부상을 당해 이탈했다. 김태형 감독은 두 명의 젊은 활력소가 없는 상황에서 개막전을 치러야 했다. 부상 없이 시즌을 준비했다면 롯데의 시즌 초반은 어쩌면 다를 수 있었다.
그러나 김민석은 지난 10일, 부상에서 회복돼 1군에 등록됐지만 21일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1군에서 김민석은 8경기 타율 1할7푼9리(28타수 5안타)에 그쳤고 김태형 감독은 2군으로 내려보냈다. 김태형 감독은 김민석이 부상에서 회복된 이후 빠르게 1군으로 불러 올렸지만 준비가 안됐다는 것을 확인하자 곧바로 2군으로 갔다. 그 사이 황성빈이 맹활약을 펼치면서 김민석의 활용도가 떨어졌다.
김 감독은 “타격감도 좋지 않고 여기에서 선발로 나가는 것은 조금 어렵다. 대주자나 대수비로도 확실한 카드는 아니다”라면서 “2군에서 경기를 뛰면서 방망이를 좀 더 치는 게 본인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사직 아이돌’이라고 불렸고 주전으로 생각했지만 경기력을 직접 확인한 뒤 2군행을 지시했다. 거포로서 힘을 보태주기를 바랐던 한동희를 향한 기준과 잣대도 마찬가지. 한동희는 부상에서 회복한 뒤 지난 19일 KT전을 앞두고 1군에 등록됐고 곧바로 선발 라인업에 포함됐다. 18일 2군 경기에서 멀티 홈런을 때리면서 몸 상태가 괜찮아졌다는 판단을 하자 곧바로 불러 올렸다.
하지만 한동희는 복귀전에서 송구 실책을 범했고 8회초 2사 1,2루의 승부처 수비 상황에서 중도 교체됐다. 21일 KT와의 더블헤더 1차전에서도 6회 한동희는 문상철의 타구를 한 번에 잡아내지 못했다. 수비 실책. 이후 황재균 타석을 앞두고 한동희는 다시 수비에서 빠졌다. 수비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김태형 감독의 특성상, 한동희는 여전히 신뢰받지 못했다는 의미라고 풀이할 수 있었다.
아울러 주전으로 낙점 했던 고승민, 나승엽이 슬럼프 끝에 2군으로 내려보낸 이후 섣불리 불러 올리지 않고 있다. 김 감독은 “아직 올릴 만한 좋은 보고를 받지 못했다. 1군에 올리려고 하며 누구를 내려야 하는데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고 잘라 말했다.
김태형 감독은 그동안 경험과 커리어를 존중하기 보다, 당장 현재의 성적과 컨디션, 페이스에 더 초점을 두기로 했다. 김 감독은 “이제 해줘야 할 선수라는 것을 이제 기대하면 안 될 것 같다”라면서 “당연히 해줘야 할 선수들이 잘해줘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당장 현재 못하고 있는데 그 선수들에게 기대하는 것보다는 현재 잘하는 선수를 쓰는 게 맞는 것 같다”라고 강조했다.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고 2군에 내려간 선수들은 좋아졌다는 보고가 올라와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는 “만약 2군에서 좋은 보고가 올라오면, 그때는 당연히 1군에 올라오는 것이다. 그리고 본인이 잘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못하면 다시 내려가야 하는 그런 상황이다”라며 냉정하게 선수단을 꾸리고 운영하겠다고 강조했다. 선수단에게 분명한 시그널을 준 김태형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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