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감을 갖고 타석에 들어섰다.”
롯데 자이언츠의 2024년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개막 4연패에 이어 8연패의 수렁에 빠졌다. 반등의 모멘텀 마다 고꾸라지면서 여전히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이제는 서서히 반전을 모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베테랑 선수들은 주어진 기회에서 제 몫을 해주고 있다. 우선순위로 기회를 부여받지는 못했지만 묵묵히 때를 기다렸고 자신을 증명하고 있다. 정훈(37)이 그렇다.
정훈은 당초 개막전 주전 1루수가 아니었다. 상무에서 돌아온 나승엽이 김태형 감독에게 먼저 눈도장을 받았고 선발 1루수로 중용됐다. 하지만 나승엽은 헤맸다. 역대급 재능의 선수라는 기대감이 있었지만 아직 1군에서 자신의 본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이전과 달라진 현장과 프런트의 기조 속에서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다.
대신 정훈은 간절하게 자신을 어필했다. 최근 건전한 경쟁 기회가 없었던 정훈은 올해 김태형 감독 부임과 함께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그라운드 위에서 투혼을 발휘했다. 나승엽이 비교적 안일했던 플레이들을 했지만 정훈은 37세의 베테랑임에도 1루에서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하는 등 팀을 위해 몸을 던졌다. 개막 4연패를 당하고 있던 지난달 29일, 사직 NC전에서 역전승의 발판을 만든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은 팀 전체에 울림을 줬다. 그리고 현재 정훈은 주전 1루수로서 나서고 있다.
올 시즌 정훈의 성적은 25경기 타율 2할9푼1리(86타수 25안타) 2홈런 9타점 OPS .777의 성적을 마크하고 있다. 특출나지는 않지만 1루에서, 그리고 상위타선에서 해결사 역할을 해주고 있다. 김태형 감독이 당초 생각했던 주전 선수는 아니지만 정훈은 팀을 위한 헌신으로 주전 자리를 꿰찼다.
롯데는 지난 24일 사직 SSG전 7-12로 역전패를 당했다. 엎치락뒤치락 했던 경기. 그래도 롯데가 경기 중후반 7-4로 앞서고 있었고 분위기를 휘어잡고 있었다. 그러다 5회 2사 후 최정에게 솔로포를 얻어 맞았다. KBO 역대 최다 홈런 신기록이 달성된 순간이었다. 롯데는 대기록의 희생양이 됐고 최정이 롯데의 안방에서 신기록 행사를 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이 때를 기점으로 롯데는 분위기를 SSG에 내줬다. 전미르, 최준용 등 필승조들이 무너지며 역전패와 마주했다.
여러모로 좋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롯데는 25일 경기를 치렀다. 하지만 롯데는 초반 타선이 적재적소에서 득점을 올리면서 주도권을 쥐었다. 그러다 6회 2사 후 2실점을 했다. 4-2로 쫓기던 상황. 그리고 이어진 6회 공격에서 무사 만루 기회를 놓쳤다. 롯데로서는 역전패의 악몽이 생각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7회 2사 1,2루의 위기를 극복한 뒤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 중심에 정훈이 있었다. 정훈은 7회 1사 주자 없는 상황 1스트라이크에서 SSG 좌완 한두솔의 2구째 147km 패스트볼을 걷어 올렸다. 34.6도의 높은 발사각으로 날아간 타구는 좌중간 담장 너머에 꽂혔다. 시즌 2호포이자 달아나는 솔로포. 5-2로 한숨을 돌린 롯데는 추가점을 뽑으며 리드를 지켰다. 정훈의 역할이 다시 한 번 빛난 순간이었다. 정훈은 경기 후 홈런 상황에 대해 “중요한 상황이었는데, 최근에 이기고 있어도 동점을 허용하거나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가 있어서 최대한 타석에서 집중했다. 한 점 한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베테랑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타석에 들어갔다”라며 7회 타석에 임한 마음가짐을 설명했다.
이어 “최대한 집중해서 2루타라도 쳐서 스코어링 포지션에 갈 수 있게 준비하고 쳤는데 운좋게 잘 맞아서 좋은 타구가 나왔던 거 같다”라고 홈런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팀에 중요한 점수를 낼 수 있어서 너무 기쁘고 앞으로 남은 경기도 선수들과 같이 집중해서 더 좋은 경기할 수 있도록 베테랑으로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경기 후 김태형 감독 역시 정훈을 비롯한 전준우 등 베테랑 선수들의 역할을 칭찬했다. 김 감독은 “전준우와 정훈 등 두 베테랑 선수와 손호영 선수의 활약으로 승리할 수 있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정훈은 잠시나마 외면 받았던 선수였다. 하지만 묵묵히 음지에서 준비했고 결국 자리를 쟁취했다. 팀 내 어린 선수들에게는 정훈의 각성이 달갑지 않을 수 있지만 이를 이겨내면 된다. 간단한 진리다. 정훈은 어린 선수들에게 뒤쳐지지 않고, 살아남는 선수가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