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의 4번타자 노시환(24)이 18경기 연속 무홈런 침묵을 그랜드슬램으로 깼다. 홈런이 나오기 전에 크게 휘두른 헛스윙이 좋은 징조였다.
노시환은 지난달 30일 대전 SSG전에서 3회 승부를 뒤집는 역전 만루 홈런으로 한화의 8-2 역전승을 이끌었다. 3루 수비에서도 병살타 하나 포함 6개의 땅볼 아웃을 처리하며 공수 양면에서 류현진의 KBO리그 통산 100승을 도왔다.
사실 이날 경기 전까지 노시환은 시즌 30경기 타율 2할5푼(116타수 29안타) 5홈런 22타점 OPS .768로 기대에 못 미쳤다. 지난해 홈런왕(31개)에 오른 만큼 그에 대한 기대치가 커졌기에 아쉬움이 컸다. 지난 7일 고척 키움전부터 28일 대전 두산전까지 18경기 연속 무홈런으로 침묵했다.
팀 성적 부진과 맞물려 노시환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주장 채은성에게 경기 중 “어떻게 쳐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민을 토로할 정도였다. 채은성은 “나도 어릴 때 이런 경험을 했는데 좋은 성적을 낸 다음해가 특히 힘들더라. 그만큼 기대치가 커졌는데 그 기대를 충족시키는 게 제일 힘든 일이다”며 “하지만 이런 것도 좋은 경험이다. 시환이는 아직 어리고, 앞으로가 더 창창하다”고 힘을 실어줬다.
30일 SSG전에서 마침내 노시환의 방망이가 깨어났다. SSG 좌완 선발투수 이기순을 맞아 1회 중견수 뜬공으로 물러났지만 3회 2사 만루에서 기다렸던 한 방이 터졌다. 투볼 유리한 카운트에서 3구째 몸쪽 낮게 떨어진 슬라이더에 오른 무릎이 땅에 닿을 정도로 크게 헛스윙했지만 여기서 뭔가 감을 잡았다.
바로 다음 공으로 또 슬라이더가 비슷한 코스에 들어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앞선 공만큼 떨어지지 않았고, 노시환의 풀스윙에 제대로 걸렸다. 히팅 포인트 앞에서 맞은 타구가 쭉쭉 뻗어나가더니 좌측 담장을 훌쩍 넘어갔다. 얼마나 크게 스윙했으면 타격 이후 노시환은 무게 중심을 잃고 오른 무릎을 꿇었다.
온몸이 뒤로 넘어가면서 오른손으로 땅을 짚을 정도로 힘을 제대로 실었다. 비거리 115m, 시즌 7호 홈런. 24일, 19경기 만에 터진 홈런에 노시환의 꽉 막힌 체증도 풀렸다. 타구가 넘어간 뒤 1루 홈 덕아웃을 바라보며 포효한 노시환은 시원한 배트 플립으로 한화생명이글스파크를 뜨겁게 달궜다. 스코어를 4-2로 뒤집은 만루 홈런으로 이날 경기의 결승타였다.
경기 후 노시환은 “훈련할 때부터 매 타석 타이밍이 늦지 않게 공을 앞에서 친다는 생각으로 계획하고 들어갔다”며 “(3회 홈런 타석 때) 직구를 노리고 있었는데 변화구가 와서 헛스윙이 됐다. 그런데 기분이 나쁘지 않은 헛스윙이었다. 타이밍이 맞는 헛스윙이었다. 변화구가 와도 자신 있었는데 똑같은 코스로 같은 구종이 들어와서 좋은 타구로 연결됐다”고 설명했다.
멘탈이 좋기로 소문난 노시환이지만 무홈런 기간이 길어지면서 몰라보게 위축되기도 했다. 그는 “초반에 페이스가 안 좋아서 나도 모르게 위축된 부분이 있었다. 공을 더 확인하고 치려다 보니 히팅 포인트가 뒤로 갔다. 오늘은 삼진 4개 먹는 한이 있더라도 앞에서 쳐보자는 생각으로 했다”며 “자신감은 항상 있는데 기록이 안 좋다 보니 위축되더라. 최근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는데 그걸 이겨내야 좋은 선수가 된다. 5월부터는 잘해보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이날 노시환은 3루 수비에서도 펄펄 날았다. 2회 이지영의 빗맞은 느린 땅볼 타구에 중심이 무너지면서도 몸을 날려 정확한 1루 송구로 아웃을 잡아냈다. 4회 2사 1,2루에선 최지훈의 3루 선상 땅볼 타구를 백핸드로 잡은 뒤 균형을 잃으며 넘어졌지만 몸을 던져 3루 베이스를 터치하며 이닝을 끝냈다. 5회 2사 1,2루에서도 기예르모 에레디아의 3루 땅볼 타구를 잡은 뒤 빠르게 3루를 밟고 1루로 빨랫줄 같은 송구를 하며 원맨 병살타로 이닝을 마무리했다.
노시환은 “수비는 항상 자신감이 있는데 오늘은 (류)현진 선배님이 100승을 앞두고 있었고, 야수들이 도와줘야 이뤄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진 선배님이 100승 도전을 몇 경기 실패했는데 오늘 홈경기 만원 관중 앞에서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고, 결과가 좋게 나와서 좋다”며 “홈런을 쳤을 때보다 수비를 잘했을 때 선배님이 더 좋아하고 좋은 말을 해주셨다. 소고기 한 번 사셔야 할 것 같다”면서 활짝 웃었다.
류현진은 “당연히 고맙다”면서도 “노시환의 실력이라면 그 정도는 당연히 해야 한다. 그동안 못 보여준 게 많았다”고 앞으로 활약을 기대했다. 노시환은 “4월에 아쉬운 성적을 냈지만 5월에는 분명 치고 올라갈 거라 생각한다”고 자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