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SSG 랜더스는 지난 1월초 FA 시장에서 베테랑 포수 이지영(38)을 깜짝 영입했다. 내부 FA 포수 김민식과 협상이 지지부진할 때 이지영도 리빌딩에 나선 원소속팀 키움 히어로즈에선 자리가 마땅치 않았다. SSG와 이지영 그리고 키움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사인&트레이드가 성사됐다.
SSG는 2025년 신인 드래프트 3라운드 지명권과 현금 2억5000만원을 키움에 주는 조건으로 이지영을 받았다. 계약 조건은 2년 최대 4억원(연봉 총액 3억5000만원, 옵션 5000만원). 내야수 강한울(삼성·1+1년 3억원)에 이어 투수 김대우(삼성·2년 4억원)과 함께 지난겨울 FA 선수 19명 중 두 번째 적은 계약 규모였다.
키움에 보낸 현금을 포함해 SSG는 이지영 영입에 총 6억5000만원을 썼다. 과할 정도로 치솟은 FA 시세를 감안하면 큰돈이 아니다. 그런데 이 영입이 예상보다 엄청난 대박을 치고 있다. 지난 2일까지 이지영은 SSG의 올 시즌 34경기 중 27경기에 선발 마스크를 썼다. 교체 출장까지 총 32경기에 나선 이지영은 타율 3할4리(102타수 31안타) 14타점으로 쏠쏠한 타격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규정타석 타율 22위로 팀 내 2위이자 포수 전체 2위.
2일 대전 한화전에도 이지영의 컨택 능력이 빛을 발했다. 2회초 1사 2,3루 찬스에서 한화의 특급 신인 선발투수 황준서의 3구째 바깥쪽 높게 들어온 포크볼을 잘 밀어쳤다. 한화 1루수 안치홍 옆을 지나 우측에 빠지는 2타점 적시타로 기선 제압을 이끌었다. 올해 득점권 타율 3할8푼5리(26타수 10안타)로 찬스에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이지영은 “노려서 치는 스타일은 아닌데 (황준서가) 위기 상황에서 포크볼을 많이 던진다고 들었고, 그걸 생각하긴 했다”며 노림수를 갖고 들어갔다고 밝힌 뒤 트레이드마크인 극단적인 오픈 스탠스에 대해 “직구에 타이밍을 늦지 않으려고 이 폼으로 변경했는데 변화구도 잘 보인다. 7년째 이렇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SSG는 지난 몇 년간 포수 타석이 쉬어가는 타순으로 여겨질 만큼 약했는데 이지영이 와서 확 달라졌다. 하위 타선에서 장타는 별로 없어도 극강의 컨택 능력으로 찬스를 살리거나 연결하며 전체적인 타선의 힘이 강해졌다. 규정타석 타자 65명 중 삼진율(5.5%)이 가장 낮기도 하다. 이지영은 “타율 3할은 어차피 금방 깨진다. 타율보다는 팀에 마이너스가 되지 않게 한 베이스라도 더 보내주는 타격을 하려고 한다. 내가 막 치고 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번트도 대면서 팀이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게 노력한다”고 강조했다.
타율 3할 포수라는 점이 부각되고 있지만 이지영 하면 수비 좋은 포수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SSG에서도 다르지 않다. 9이닝당 폭투 및 포일이 0.26개로 100이닝 이상 수비한 포수 12명 중 두 번째로 적다. 투수 리드, 볼 배합까지 안정적으로 이끌고 있어 이숭용 SSG 감독도 그를 쉽게 못 뺀다.
당초에는 한 주에 이지영을 4경기, 유망주 조형우를 2경기 비율로 쓸 구상이었지만 갈수록 이지영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이숭용 감독은 “팀이 안정권에 접어들 때까지는 지영이를 많이 쓰려고 한다. 워낙 안정적이다”고 큰 신뢰를 표했다. 포수로 247이닝을 소화했는데 LG 박동원(259이닝)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이닝. 38살 베테랑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팀 내 비중이 예상보다 훨씬 커졌다.
지난해 키움에서 신인 포수 김동헌이 기회를 받으면서 후반기에 거의 전력 외였던 이지영은 SSG에 와서 경기 출장의 갈증을 풀고 있다. 그는 “솔직히 이렇게 뛸 거라고 생각은 못했는데 감독님께서 기회를 많이 주시고 있다. 선수들도 많이 도와주다 보니 이렇게 많이 뛰는 게 행복하다”며 “아직 날도 덥지 않아 (체력적으로) 괜찮다”고 자신했다.
포수로서 투수들을 이끄는 것에 큰 책임을 느끼는 이지영은 “우리가 중간과 마무리까지는 완벽하게 자리잡았는데 선발이 점수를 많이 주고 있다. 선발투수들과도 더 많이 대화해서 자기 공을 던질 수 있게 하고 싶다”며 “젊은 투수들에겐 ‘내가 사인내고 리드하는 것이니 책임도 내가 진다. 너희들은 (결과에) 책임이 없으니 자신 있게 네 공을 던져라’는 말을 한다”고 이야기했다.
이숭용 감독도 이날 한화전 위닝시리즈를 거둔 뒤 “지영이가 초반 2타점 적시타와 번트로 공격에서도 기여하고, 좋은 투수 리드로 승리에 큰 역할을 했다”고 콕 집어 칭찬했다. 고액 FA 선수들이 차고 넘치는 상황에서 이지영은 가성비 최고 활약으로 SSG를 미소짓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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