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위기에 강한 괴물이 아닌 걸까. 득점권 피안타율이 5할대에 달하는 류현진(37·한화 이글스)에게 수비 실책은 더욱 치명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류현진은 지난 8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와의 원정경기에 선발등판, 5이닝 8피안타 무사사구 7탈삼진 5실점으로 흔들렸다. 한화가 1-6으로 패하면서 류현진은 시즌 4패(2승)째를 안았고, 평균자책점은 5.21에서 5.65로 올랐다. 규정이닝 투수 25명 중 24위. 그보다 높은 투수는 KT 엄상백(6.20) 1명밖에 없다.
4회까지는 류현진다운 투구였다. 1회 시작부터 빗맞은 타구로 연속 안타를 맞고 내야 땅볼로 1점을 내줬지만 2~4회 안타 1개만 허용하며 추가 실점 없이 막았다. 직구, 체인지업, 커터를 다양하게 활용해 매 이닝 삼진을 잡았다. 5회 첫 타자 김민석을 하이 패스트볼로 헛스윙 삼진 처리할 때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이주찬에게 우전 안타를 맞은 뒤 박승욱에게 중전 안타를 허용하면서 연타를 맞았다. 이때 중견수 정은원이 한 번에 타구를 잡지 못했고, 타자 주자 박승욱이 2루까지 갔다. 올해 외야수로 포지션을 넓힌 정은원에겐 중견수로 나선 3번째 경기. 그동안 큰 실수 없이 무난한 수비 적응력을 보여줬지만 이날 평범한 타구 처리 과정에서 포구 실책이 나왔다.
1사 1,3루가 1사 2,3루 상황으로 바뀌었다. 류현진은 다음 타자 윤동희에게 중견수 희생플라이로 추가점을 내줬다. 계속된 2사 3루에서 고승민에게 좌측 빠지는 1타점 2루타를 맞더니 빅터 레이예스에게 1타점 중전 적시타, 전준우에게 우중간 빠지는 1타점 3루타를 맞았다. 나승엽을 커브로 헛스윙 삼진 잡고 어렵게 5회를 마쳤지만 4실점 빅이닝을 허용하며 경기 흐름이 완전히 넘어갔다.
공교롭게도 실책 이후 급격하게 흔들리면서 대량 실점을 내줬다. 이날 경기뿐만이 아니다. 개막전이었던 지난 3월23일 잠실 LG전에서 4회 2루수 문현빈의 포구 실책이 나온 뒤 류현진은 3점을 내주며 강판됐다. 지난달 24일 수원 KT전에도 4회 2루수 김태연의 포구 실책 이후 4점을 한꺼번에 내줬다. 이날까지 실책 이후 3실점 이상 빅이닝 허용만 3번째.
한화는 올해 수비 실책이 최소 6위(28개)로 수비 효율(DER)도 7위(.659)에 올라있다. 리그 평균에 못 미치지만 ‘행복 수비’라는 반어적 표현처럼 극악 수준은 아니다. 그런데 류현진이 나오는 날 유독 실책이 남발된다. 류현진이 등판한 8경기 43이닝 동안 실책 6개가 발생했다. 팀 전체 실책의 21.4%가 류현진이 마운드 있을 때 나왔다.
아무래도 에이스 투수가 나오는 날에는 야수들도 이겨야 한다는 압박감이 크다. 긴장감이 높아지면 몸이 굳어 경직된 플레이가 나올 수 있다. 한화의 성적이 계속 안 좋고, 주목도가 높은 류현진 선발 날에는 중압감이 더 큰 모습이다.
실책이 발생해도 투수가 실점 없이 막으면 야수도 부담을 덜 수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류현진은 실책 6개 중 5개가 실점으로 이어졌다. 주자가 쌓이고, 득점권이 되면 막을 수 있는 힘이 떨어졌다. 올 시즌 주자 없을 때 피안타율이 1할대(.191)에 불과하지만 득점권 피안타율은 무려 5할대(.512)로 지나치게 높다. 규정이닝 투수는 물론 20이닝 이상으로 기준을 확대해도 54명 중 가장 높다.
메이저리그 진출 전 KBO리그 마지막 시즌이었던 2012년 류현진은 주자 없을 때 피안타율이 2할3푼1리였지만 득점권에선 2할4리로 위기에 강했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반대다. 12년 전처럼 위기 상황을 힘으로 극복할 수 있는 강력한 구위가 사라졌다. 찬스 때 상대 타자들은 짧게 스윙하면서 컨택에 집중하고 있고, 빠른 카운트에 승부를 들어오는 류현진의 공을 집중 공략하고 있다. 올해 3실점 이상 허용한 이닝이 6차례나 된다.
이날 롯데전에도 5회 2사 3루에서 고승민에게 1~2구 연속 스트라이크를 잡고 유리한 카운트을 점한 뒤 3구째 직구가 한가운데 높게 들어가면서 1타점 2루타 이어졌다. 전준우에게도 초구 직구로 스트라이크를 잡으러 들어간 공이 1타점 2루타로 이어졌다. 결과론이긴 하지만 승부를 빨리빨리 들어간 게 3연속 적시타로 직결됐다.
어느덧 5월 중순으로 향하는 시점이고, 신뢰할 만한 데이터가 꽤 쌓였다. 류현진 공략 패턴이 어느 정도 드러난 상황에서 주자를 쌓이게 하거나 한 베이스 더 내주는 수비 실책은 더욱 치명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