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리그를 호령했던 에이스의 면모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현재 평균자책점 순위가 그렇다.
한화 류현진(37)의 부진이 심상치 않다. 류현진은 지난 8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해 5이닝 8피안타 7탈삼진 5실점을 기록하고 강판됐다. 팀의 1-6 패배를 막지 못하면서 시즌 4패 째를 당했다.
이날 류현진은 1회 선제 실점을 허용했지만 2회부터 5회 1아웃까지 10타자를 연속 범타 처리하는 등 위력적인 피칭을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5회 집중타를 얻어 맞고 4실점 했다. 중견수 정은원의 포구 실책이 실점 과정에 있었지만 류현진이 실책 이후 상황들을 모두 제어하지 못하면서 실점은 모두 자책점으로 기록됐다.
이로써 류현진의 평균자책점은 5.65까지 상승했다. 규정이닝을 소화한 선발 투수 25명 가운데 24위에 해당한다. 최하위권 기록이다. 25위 꼴찌는 KT 엄상백(6.20). 2013년 LA 다저스에 입단했고 2020년에는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4년 8000만 달러의 프리에이전트 계약까지 맺는 등 한국인 빅리거로서 범접할 수 있는 기록들을 썼다.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2위,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 3위 등의 업적도 남겼다. 지난해 팔꿈치 토미존 수술 영향이 있었지만 화려한 커리어, 경험과 연륜 등으로 여전히 빅리그에서도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는 토론토와 4년 계약이 끝난 뒤인 지난해 11월, “류현진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 내년(2024년)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던질 것”이라면서 빅리그 잔류를 확신했다.
하지만 류현진은 한화로 돌아왔다. “아직 힘이 있을 때 한화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빅리거가 아닌 한화 이글스의 류현진이 되는 것을 택했다. 한화는 류현진을 데려오기 위해 8년 170억원, 역대 최고액을 투자했다. 대한민국의 에이스, 빅리그에서도 화려한 족적을 남긴 에이스에 걸맞는 대우를 했다. 류현진이라는 이름의 상징성과 더불어, 어린 선수들과 팀의 마운드를 이끄는 에이스 역할을 해주기를 바랐던 것.
하지만 상징적이고 선수단 안팎에서 영향력과 별개로 마운드 위에서의 모습은 현재까지 실망스럽다. 류현진다운 칼날 제구는 여전하다. KBO리그 수준에서는 보기 힘든 보더라인 피칭은 상대 선수들과 지도자들 모두를 혀를 내두르게 했다. ABS(자동볼판정시스템)에 의문을 제기할 정도로 류현진은 자신의 제구력에 자신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제구도 힘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힘이 동반되지 않으면 던지면 던질수록 타자들의 눈에 익을 수밖에 없다. 올해의 류현진은 타순이 한바퀴 돈 이후 성적이 급락했다. 1회 피안타율 1할7푼9리, 피OPS .386, 2회 피안타율 2할7리 피OPS .488, 3회 피안타율 1할7푼2리 피OPS .422에 불과하다. 특히 1회부터 3회까지는 단 한 개의 장타도 맞지 않았다. 2루타 이상의 장타 허용 자체가 워낙 적지만 1~3회까지는 언히터블이었다.
하지만 4회부터 성적은 급격히 상승한다. 피홈런을 비롯한 장타도 4~5회 집중됐다. 4회 피안타율 3할4푼3리, 피OPS .871이고 5회에는 피안타율이 5할에 육박하고 피OPS는 1.161에 달했다. 그만큼 이닝을 거듭할수록 류현진의 공에 타자들이 익숙해진다는 의미이고 커터 체인지업 등의 각이 무뎌진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8일 롯데전 역시 5회에 집중적으로 두들겨 맞았다. 5회 1사 후 이주찬과 박승욱에게 연속안타를 맞았다. 박승욱의 안타 때 중견수 정은원의 포구 실책이 곁들여지면서 1사 2,3루 위기를 자초했다. 이후 윤동희에게 중견수 희생플라이를 내준 뒤, 고승민에게 적시 2루타, 레이예스에게 중전 적시타, 전준우에게 우중간 적시 3루타를 내주며 무너졌다.지난 겨울 미국의 FA시장이 더디게 흘러가면서 류현진은 기다려야 했고 한화와 2월 말이 되어서야 계약을 맺었다. 한화의 2차 스프링캠프에 합류했지만 온전히 스프링캠프를 치르면서 몸을 만들었다고 볼 수는 없었다. 몸을 제때 만들지 못한 영향도 없지 않을 터.
하지만 류현진은 170억 역대 최고액 대우를 받는 선수다. 이러한 영향도 변명으로 들릴 수도 있다. 무엇보다 류현진은 8년 계약을 맺었다. 옵트아웃 조건이 포함되어 있지만 8년 계약이 마무리 될 경우 2031년, 류현진의 나이는 45세가 된다. 이때까지 1군 선수들과 경쟁력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170억원의 이유가 증명이 된다.
하지만 현재 류현진은 힘이 떨어지는, 전형적인 에이징 커브에 접어든 투수와도 다름 없다. 앞으로 2031년까지, 류현진과 함께할 시간들이 한화에는 감당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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