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데뷔 첫 시즌 전체 일정의 23.5%를 보낸 이정후(26·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게 아직 ‘0’인 기록이 몇 가지 있다. 3루타가 없고, 번트도 없다. 희생 번트는 물론 번트 안타도 전무하다.
하지만 이정후의 번트 능력이 없진 않은 모양이다. 아직 경기에서 보여준 적이 없지만 샌프란시스코 경기를 전담하는 ‘NBC스포츠 베이에어리어’ 중계진이 이정후의 번트 능력을 칭찬한 점이 이채롭다.
지난 9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 쿠어스필드에서 열린 콜로라도 로키스전. 2회 1사 1,3루에서 샌프란시스코 9번타자 닉 아메드가 2구째 공에 기습 번트를 댔다. 투수 앞쪽으로 굴러간 타구. 콜로라도 투수 피터 램버트가 몸을 날려 백핸드로 공을 잡고 홈으로 뿌렸지만 3루 주자 마이크 야스트렘스키가 먼저 들어왔다.
기습 번트로 1점을 내면서 이어진 1사 1,2루 상황. 이정후가 타석에 들어서자 중계진은 또 한 번의 번트 가능성을 보며 “타격 연습할 때를 보면 이정후는 정말 훌륭한 번터다. 한국에선 주로 3번타자로 나가서 번트에 대한 요구가 많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정후는 지난 2017~2023년 7년간 KBO리그 키움 히어로즈에서 뛰며 통산 희생 번트가 10개밖에 되지 않았다. 주로 중심타자로 활약하다 보니 번트를 댈 일이 많지 않았다. 기습 번트 안타는 통산 10개. 미국에선 주로 1번타자로 나서고 있는 이정후라 기습 번트를 보여줄 상황은 충분히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까지 번트 능력을 꽁꽁 감춰둔 이정후는 이날 아메드의 기습 번트 이후에도 타격에 집중했다. 램버트의 4구째 몸쪽에 들어온 시속 88.7마일(142.7km) 슬라이더를 잡아당겨 우측으로 날카로운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만들었다. 시속 104.6마일(168.3km), 발사각 19도로 빠르게 뻗어아간 타구는 쿠어스필드 우측 펜스 상단을 직격했다. 비거리 368피트(112.m)로 측정된 1타점 2루타.
메이저리그 전체 30개 구장 중 21개 구장에서 넘어갈 타구였지만 쿠어스필드 우측 16피트(4.88m) 높이의 펜스에 걸리면서 2루타에 만족했다. 지난 1~3일 펜웨이파크에서 열린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원정 3연전 내내 우측 홈런성 타구가 뜬공으로 잡혀 아쉬움을 삼킨 데 이어 이날도 아쉽게 홈런이 불발됐다.
하지만 스코어를 4-0으로 벌린 2루타로 지난달 21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전 이후 16경기 만에 모처럼 장타 손맛을 봤다. 2루타가 나오자 중계진은 “이정후는 번트 대지 말라. 그냥 쳐라”며 웃은 뒤 “정말 레이저 같은 타구였다. 아름다운 스윙이었다. 어젯밤 3안타에 이어 오늘 2루타가 나왔다. 이번 시리즈가 끝날 때쯤에는 2루타 3개는 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구장은 그에게 아주 좋은 곳이다”면서 쿠어스필드에서 장타 생산을 기대했다.
이후 3타석에선 1루 땅볼과 좌익수 뜬공 2개로 물러난 이정후는 이날까지 올 시즌 36경기 타율 2할6푼2리(145타수 38안타) 2홈런 8타점 15득점 10볼넷 13삼진 2도루 출루율 .310 장타율 .311 OPS .641을 기록 중이다. 눈에 확 띄는 성적은 아니지만 최근 6경기 연속 안타로 꾸준함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 기간 타율 3할1푼(29타수 9안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