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의 토종 에이스 원태인에게 사직구장은 홈인 대구 삼성 라이온즈파크보다 더 편한 곳이었다.
원태인은 26일 사직 롯데전 선발 등판 전까지, 사직구장에서 등판한 11경기(9선발)에서 5승1패 평균자책점 2.02를 기록했다. 대구 삼성 라이온즈파크에서 성적은 68경기(63선발) 25승16패 평균자책점 4.02였다. 당연히 홈구장 등판 횟수가 많지만 등판 대비 성적은 사직구장이 훨씬 훌륭했다.
올 시즌에도 지난 4월 9일 6이닝 4피안타 1볼넷 3탈삼진 1실점을 승리를 챙긴 바 있다. 26일 사직 롯데전을 앞두고 박진만 감독 역시 “다른 팀을 상대로도 자신감이 워낙 큰 선수지만 롯데전, 그리고 사직구장에서 좋은 모습과 결과를 냈던 선수이기 때문에 오늘도 좋은 활약이 기대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원태인과 삼성에 흐름이 쉽사리 오지 않았다. 그동안 원태인이 등판했던 사직구장의 기류와는 사뭇 달랐다. 일단 1회 2사 후 맥키넌, 김영웅, 이재현의 3연속 안타로 선취점을 뽑았다. 집중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1회말 2사 후 고승민에게 좌전안타와 폭투로 2사 2루 위기에 몰렸고 레이예스에게 중전 적시타를 허용했다. 1-1 동점이 허용했다.
2회초에는 상대 선발이었던 찰리 반즈가 왼쪽 내전근 통증으로 조기 강판됐다. 2사 만루의 기회에서 맞이한 변수. 롯데에 한없이 불리한 상황이었다. 최이준이 긴급하게 공을 이어받았다. 타석에는 맥키넌이었다. 그러나 맥키넌이 유격수 땅볼로 물러나면서 삼성 입장에서 절호의 기회가 무산됐다.
그래도 원태인은 2회말 유강남 박승욱 김민석을 공 5개로 삼자범퇴 처리하며 분위기를 다잡았다. 하지만 3회말, 다시 한 번 롯데 상위타선의 집중력을 당해내지 못했다.
3회말 2사 후 윤동희에게 좌전안타를 맞았고 고승민에게 볼넷을 내주며 2사 1,2루 위기에 몰렸다. 그리고 레이예스에게 5구째 던진 몸쪽 커터를 공략 당하며 2타점 2루타가 됐다. 1-3으로 끌려갔다.
4회초에도 또 다른 변수가 발생했다. 앞서 반즈의 강판을 틀어막은 최이준이 김지찬과 상대하는 도중 오른손 중지 손톱이 깨지면서 마운드를 내려간 것. 두 번째 경기의 분수령이었다. 그러나 삼성은 이 기회도 살리지 못했다. 롯데 김상수를 상대로 김지찬이 2루수 땅볼, 맥키넌이 투수 땅볼로 물러났다. 1-3에서 상대를 더 압박하고 경기를 뒤집을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무산시켰다.
원태인은 외롭게 버텨나갔다. 5회에는 선두타나 윤동희를 중전안타로 내보낸 이후 레이예스에게 2루타를 맞았지만 홈에서 윤동희가 횡사했다. 5회까지 실점 없이 겨우 넘겼다. 투구수는 89개였다.
앞서 21일 대구 KT전 5이닝 7피안타 1볼넷 5탈삼진 3실점을 기록하면서 100개의 공을 던졌던 원태인. 4일 휴식 등판이었기에 힘이 떨어질 법 했다. 그래도 6회까지 원태인은 마운드에 올랐다. 에이스의 책임감이기도 했고 벤치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김태훈 이승현 김재윤 등 필승조 투수들이 모두 3연투에 걸려 있던 상황. 당장 나설 수 있는 필승조는 임창민과 마무리 오승환이 유이했다. 접전 승부였기에 6회까지 원태인이 책임지는 게 가장 나은 선택이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선택은 패착이었고 더 큰 재앙으로 다가왔다. 6회 선두타자 손성빈은 7구 승부 끝에 삼진을 솎아냈다. 투구수가 96개까지 불어났다. 하위타선이지만 감 좋은 타자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박승욱에게는 우려대로 우전 안타를 맞았다. 그리고 김민석과 다시 8구 접전을 벌였다. 삼진으로 솎아냈지만 투구수는 106개까지 늘어났다.
이날 앞서 안타가 있었고 23일 KIA전 멀티 홈런을 기록한 이학주가 타석에 들어섰다. 하지만 3구째 던진 체인지업이 이학주의 방망이에 정확하게 걸렸고 중견수 키를 넘기는 적시 3루타가 됐다. 여기서 중견수 김지찬까지 공을 더듬으면서 이학주도 홈까지 쇄도했다. 순식간에 2실점을 더 하면서 1-5로 격차가 벌어졌다.
삼성 벤치는 그제서야 원태인을 마운드에서 내렸다. 사직에서는 언제나 포효하는 모습이 익숙했던 원태인이 고개를 숙였다. 삼성은 뒤늦게 필승조 임창민을 올렸지만 임창민도 아웃카운트 1개를 잡아내지 못한 채 2실점을 더 하며 승기가 완전히 기울었다.
타선이 외면했고 벤치도 손을 쓸 수 없었다. 원태인은 외롭게 109개의 공을 던졌지만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게 됐다.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