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때문에 네가 팀을 갑자기 옮긴 것 같아서 미안하다.”
프로야구 KT 위즈맨이 된 오재일(38)이 트레이드가 성사된 뒤 ‘동갑내기 절친’ 박병호(38)와 전화로 나눈 이야기를 공개해 화제다. 방출을 요청하며 사태를 키운 박병호는 오재일을 향해 사과의 뜻을 전했고, 오재일은 그런 친구를 위로하고 격려했다.
삼성 라이온즈 소속이었던 오재일은 지난 28일 대구 키움 히어로즈전을 마친 뒤 박병호와의 1대1 트레이드를 통한 KT 위즈 이적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했다. 그날 경기에서 대타 홈런을 치며 삼성 홈팬들을 열광시켰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박진만 감독의 칭찬도, 삼성 팬들의 응원도 아닌 KT 유니폼이었다.
이번 트레이드는 거듭된 부진으로 입지가 좁아진 박병호가 지난 주말 KT 구단에 방출을 요청한 게 발단이었다. 박병호는 25일 수원 키움 히어로즈전 4-2로 앞선 8회말 1사 2루 찬스에서 조용호의 대타로 등장해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난 뒤 구단에 면담을 신청했고, 그 자리에서 웨이버 공시 등을 통한 방출을 요청했다. 적은 출전 시간과 좁아진 입지를 이유로 다른 팀을 찾아 나서겠다는 의도였다.
KT 나도현 단장은 “토요일(25일) 방출 요청 이후 선수에게 함께 가자는 의견을 잘 전달했는데 월요일(27일) 오전까지 선수 의지가 완강했다. 그래서 웨이버 공시 고민을 해봤지만 박병호 같은 레전드급 선수한테 방출은 아닌 거 같아서 몇몇 구단에 연락을 돌렸다. 그런데 삼성에서 28일 오후 관심이 있다면서 오재일 카드를 반대급부로 제시했다. 결국 트레이드로 선수를 보내게 됐다”라고 트레이드 막전막후를 전했다.
29일 잠실 두산전에 합류한 오재일은 “홈런 치고 들어와서 옷 갈아입는데 그 때 (트레이드를) 알게 됐다”라며 “이게 잘 가는 건지 못 가는 건지 모르겠다. 정신이 없다. 가족이 가장 당황했는데 그래도 괜찮다고 해줬다. 잘 간 거라고 해서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라고 얼떨떨한 이적 소감을 전했다.
지난 3년 동안 정든 삼성 동료들과의 이별이 쉽지는 않았을 터. 오재일은 “원태인한테 조심하라고 이야기했다. 얼마나 컸는지 보겠다고 했다”라고 웃으며 “(구)자욱이, (강)민호 형, (오)승환이 형과도 짐 싸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미팅할 때 이야기하면 너무 슬플 거 같아서 개인적으로 조금씩 이야기했다. 선수들이 갑자기 경기 끝나고 모여서 내가 간다고 하니까 많이 놀랐다. 나는 새로운 친구가 오니까 잘 부탁한다고 했다”라고 말했다.
박진만 감독에게 어떤 조언을 들었냐는 질문에는 “감독님께서 내 개인적으로 기회일 수 있다고 해서 열심히 다치지 말고 잘하라고 해주셨다”라고 답했다.
오재일은 트레이드 직후 박병호와 나눈 이야기도 공개했다. 그는 “전화 통화를 길게 했다. 가장 친한 친구인데 어떻게 우리 둘이 트레이드가 되냐며 웃기다고 했다”라며 “(박)병호는 자기 때문에 내가 갑자기 팀을 옮기는 거 같아서 미안하다고 했다. 난 괜찮다고 하면서 각 자기 자리에서 잘하면 둘 다 잘 되는 일이라고 말해줬다”라고 설명했다.
오재일은 2021시즌 삼성과의 4년 총액 50억 원 FA 계약 마지막 해를 보내고 있었다. 올 시즌 박병호와 마찬가지로 22경기 타율 2할3푼4리 3홈런 8타점 부진을 겪고 있었는데 트레이드를 통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됐다. 현대, 히어로즈, 두산, 삼성에 이은 오재일의 5번째 팀이다. 오재일의 1군 통산 성적은 1408경기 타율 2할7푼5리 1172안타 207홈런 836타점이다.
오재일은 “KT에서는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이다. 그러면 좋은 결과가 이어지고, 경기에도 많이 나갈 수 있다. 경기에 못 나가더라도 후배들한테 해줄 수 있는 역할이 있다”라며 “난 야구를 되게 재미있게 하는 사람인데 최근에 야구가 조금 안 돼서 조금 처져 있었다. 이제 팀을 바꿨으니 다시 재미있게 하려고 한다. 타격감도 나쁘지 않은 상태다”라고 새로운 각오를 전했다.
그러면서 “난 운이 좋은 사람이다. 착하게 살았기 때문이다. KT는 올라갈 것이다. 이제 우승해야 한다”라고 KT의 반등을 예측했다.
지난 3년 동안 낯선 대구땅에서 열렬한 응원을 보내준 삼성 팬들을 향한 인사도 잊지 않았다. 오재일은 “삼성 팬들이 3년 동안 야구장 안팎에서 너무 많은 관심과 응원을 보내주셨다. 3년 전 처음 대구에 갔을 때 환영해주셨고, 이번 이적을 너무 아쉬워하시는 분들도 많다. 내 야구 인생에서 잊지 못할 3년이었다. 항상 그 감사한 마음 잊지 않고 야구를 할 생각이다”라고 진심을 전했다.
아울러 KT 팬들에게는 “KT가 우승하는 데 있어 내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려고 노력하겠다”라는 짧고 굵은 각오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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