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로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는 지난 2일 사직 NC전, 6회 7득점의 빅이닝을 만들어 내면서 13-4로 대역전승을 거뒀다.
2-4로 뒤진 6회말 2사 만루에서 대타 김민석의 싹쓸이 3타점 2루타, 그리고 고승민의 그랜드슬램으로 9-4로 역전했고 7회 손성빈의 스리런 홈런, 8회 김동혁의 적시타로 쐐기를 박았다.
6회말 빅이닝으로 가는 과정 자체가 극적이었다. 앞서고 있던 NC도 승부처라고 판단해 사력을 다했고 총력전을 펼쳤다. 하지만 롯데의 재능들은 NC의 계산을 어긋나게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댔고 결과로 보여줬다.
NC 선발 신민혁이 3⅓이닝 5피안타 1사구 1탈삼진 2실점으로 강판됐고 송명기가 1⅔이닝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롯데는 4회 2점을 추격한 뒤 1사 2,3루 기회에서 송명기를 공략하지 못했고 끌려갔다.
6회 NC는 필승조 한재승을 마운드에 올렸다. 선두타자 레이예스가 중전 안타를 치고 나갔고 손호영이 삼진을 당했지만 이정훈이 볼넷으로 출루해 1사 1,2루 기회를 이어갔다.
이때 NC 벤치는 좌타자 나승엽을 겨냥해 좌투수 임정호를 마운드에 올렸다. 사이드암 투수에 가깝게 팔이 옆에서 나오는 임정호는 좌타자들이 치기 까다로운 투수다. 더군다나 나승엽은 올해 사실상 처음 풀타임을 치르는 신예.
김주찬 코치와 임훈 코치는 나승엽에게 임정호의 데이터와 관련된 정보를 제공했다. 이때 벤치에 있던 고승민이 달려와 나승엽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나승엽은 이때를 되돌아보며 “타격 코치님이 임정호 투수의 슬라이더와 팔 궤적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셨다. 그리고 (고)승민이 형이 투수에 대해 많이 아는 것 같더라. 팔 궤적이나 슬라이더가 어떻게 들어오는지에 대해서 설명해줬다”라고 했다.
나승엽은 임정호와 2타석 1타수 무안타였고 고승민은 임정호와 그나마 더 많이 상대를 해봤다. 결과는 6타수 1안타. 그리 ㅁ낳은 표본은 아니었지만 상대했던 경험을 곁들인 조언이 도움이 됐을까. 나승엽은 임정호의 초구와 2구 바깥쪽 코스의 슬라이더에 따라나가지 않고 지켜봤다. 2볼의 유리한 카운트를 선점했다. 3구째 바깥쪽 슬라이더는 보더라인에 걸치며 스트라이크. 그리고 4구째 몸쪽에서 한복판으로 꺾여서 들어오는 슬라이더에 흔들리지 않고 정확하게 타격했다. 2루수 키를 넘기는 우전 안타가 됐고 1사 만루 기회를 만들었다. 나승엽은 “승민이 형이 해준 조언들을 생각하니 많은 도움이 됐다”라고 말했다.
NC 입장에서는 좌우놀이 계산은 어긋났고 아웃카운트 추가 없이 1사 만루 위기에 몰렸다. 뒤이어 올라온 류진욱은 롯데 대타 최항을 삼진 처리했다. 하지만 뒤이어 등장한 김민석에게 싹쓸이 3타점 2루타를 얻어 맞았다. 그리고 나승엽에게 조언을 건넸던 고승민은 승부의 추를 완전히 가져오는 개인 첫 그랜드슬램을 터뜨렸다.
고승민은 나승엽에게 조언을 건넸던 상황에 대해 “평소에도 경기 전이나 경기 중에 투수들에 대한 전력분석과 느낀 점들을 서로 공유한다”라면서 “나도 경험이 많이 없지만, 그나마 내가 했던 경험을 좀 더 많이 했으니까 내가 느끼고 봤던 것들을 (나)승엽이에게 조언해주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데이터 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얘기해주려고 했다. 키도 비슷하기 때문에 ABS존이 어떨지에 대해서도 조언을 했다”라고 설명했다. 프로필상 고승민은 189cm, 나승엽은 190cm다. ABS존이 비슷할 수밖에 없었고 이 점까지 고려해서 상대를 분석했다.
롯데의 현재와 미래를 책임질 재능들이 고민하고 연구하자 결과가 따라왔고, 또 하나의 값진 경험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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