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MLB였다면…이유찬의 2루 세이프는 물론, 3루 진루권도 줄 수 있다
OSEN 백종인 기자
발행 2024.06.05 10: 25

[OSEN=백종인 객원기자] 어제 문제의 장면이다. 원정팀이 1-0으로 앞선 9회 초다. 1사 후 이유찬이 볼넷으로 출루했다. 다음 조수행 타석 때 2루로 뛴다. 도루 시도다. 2루심(이용혁)은 천천히 양팔을 벌린다. 여유 있는 세이프 신호다. 홈 팀은 반발한다. 비디오 판독 요구다. 리플레이 결과 판정이 바뀐다. 아웃이다. (4일, 창원 두산-NC전)
손해 본 쪽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이승엽 감독이 벤치를 뛰쳐나온다. 강력한 이의 제기다. 상대 수비(유격수 김주원)가 베이스를 막았다며 항의한다. 느린 화면으로 보면 이유찬의 손이 김주원의 발에 막혔다. 그러나 억울함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비디오 판독 결과에는 항의할 수 없다는 원칙이 작동한다. 이 감독에게 퇴장이 선언된다.
이 장면은 SNS와 여러 커뮤니티에서 논란이 됐다. ‘수비 쪽의 부당한 플레이였다’라는 주장과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논리가 치열하게 부딪치고 있다.

4일 창원NC파크에서 열린 경기에서 두산 이유찬이 9회 초 2루 도루를 시도했으나 비디오 판독 끝에 아웃됐다. 2024.06.04 / foto0307@osen.co.kr

공교롭게도 다이노스는 비슷한 일이 또 있었다. 지난 1일 자이언츠 전이다. 하필이면 주연이 ‘마황’이다. 황성빈이 3루로 뛰다가 횡사했다. 이때는 서호철의 발에 막혔다. 역시 항의가 있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슬라이딩하는 손이 들어갈 틈은 있었다는 설명이었다.
두산 이승엽 감독이 9회 이유찬의 도루가 비디오 판독 결과 아웃으로 정정되자 심판진에게 항의하고 있다. 2024.06.04 / foto0307@osen.co.kr
비슷한 이슈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있었다. 지난 3월 시범경기 때다. 워싱턴 내셔널스와 뉴욕 메츠의 경기였다. 2회 내셔널스가 무사 1, 2루의 기회를 잡았다.
메츠 수비가 기습을 감행한다. 2루 주자를 향한 픽오프(견제)다. 신호에 따라 2루수(조이 웬델)가 베이스로 뛰어든다. 투수는 타이밍에 맞춰 재빠른 견제구를 쏜다. 주자는 화들짝 놀란다. 가까스로 몸을 돌이켜 귀루한다. 마침 2루수가 공을 떨어트린다. 다행이다. 세이프다.
그런데 끝이 아니다. 2루심이 갑자기 경기를 중단시킨다. 그리고 주자를 향해 3루로 가라고 지시한다. 무슨 일이지? 투수 보크였나? 그럼 1루 주자도 2루로 가야 하는데? 모두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오른다.
이윽고 설명이 나온다. 2루수의 태그 동작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즉, 주루 방해라는 판정이다. 따라서 2루 주자에게 추가 진루권을 준 것이다.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다. 이미 관련된 규정을 공지한 뒤였다. 스프링캠프가 시작되는 2월 14일이었다. MLB 사무국이 30개 구단 앞으로 공문 하나를 발송한다. 올 시즌 강조 사항이다. 그중 하나가 룰 6.00(H)에 대한 것이다. 특별히 엄격하게 적용하겠다는 의지가 포함됐다.
메츠의 견제 과정에서 2루수가 베이스를 가로막는 태그 동작을 하고 있다. 2루심은 이를 주루방해로 인정해 3루까지 진루권을 인정했다.  MLB.com 캡처
룰 6.00(H)은 ‘야수가 공을 소유하지 않고, 공을 수비하지 않는 동안 주자의 플레이를 방해했다고 판단되면 주자에게 최소한 1개의 진루권을 부여할 수 있다는 규정이다. 즉 주루 방해(obstruction)로 판정한다는 뜻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이렇다. 주자를 막기 위해 발이나 무릎으로 베이스 전체를 가리는 행동(blocking base)을 단속하겠다는 말이다. 이 규정은 1루와 2루, 3루에 적용된다. 홈은 예외다. 이미 2013년부터 ‘버스터 포지 룰’이라고 불리는 충돌 방지 조항이 시행 중이기 때문이다.
물론 새삼스러운 규칙은 아니다. 원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그걸 새롭게 강조한 것일까?
우선은 부상 방지다. MLB 사무국은 작년 애리조나 가을 리그를 면밀히 관찰했다. 여기서 문제의 위험한 베이스 차단 동작이 크게 증가했다고 판단했다. 이로 인해 다치는 선수가 늘어났다. 실제로 어제(4일) 이유찬도 손가락 통증으로 교체됐다.
또 한 가지가 있다. 공격적인 주루는 메이저리그가 추구하는 방향성이다. 그걸 위해 견제구를 제한하고, 베이스도 크게 만들었다. ‘철벽 수비’는 이를 정면으로 위배하는 행동인 셈이다.
이유찬의 장면은 여러 각도의 중계 화면에서 볼 때 베이스를 터치할 손이 들어갈 여유가 없어 보인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티빙 중계방송 화면 / 유튜브 채널 KBO 캡처
비단 MLB뿐만이 아니다. 일본야구기구(NPB)에도 사례가 있다. 작년 8월 한신 타이거스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전에서 생긴 문제다. 가로막기로 인해 판정이 번복됐다. 이유찬의 경우처럼 2루 도루가 세이프에서 아웃으로 정정된 것이다.
한신의 오카다 아키노부 감독은 “수비가 발로 베이스를 가리는 바람에 우리 주자의 손이 들어갈 곳이 없었다”고 강력하게 항의했다. 경기 후 비판 여론이 거세게 일어났다. 결국 심판부에서도 인정했고, 이례적으로 엄격한 규정 적용을 약속했다.
마찬가지다. KBO도 다를 게 없다. 규정은 공정한 경쟁과 선수 보호를 위해 존재한다. 더 박진감 넘치고, 역동적인 게임이 최고의 팬 서비스다. 그걸 위해 베이스 크기도 15인치(38.1cm)에서 18인치(45.72cm)로 확대했다. 본래 취지에 맞고, 시대적 흐름에 맞는 경기 진행이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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