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강타자 브라이스 하퍼(32·필라델피아 필리스)가 ‘축구의 본고장’ 영국 런던에서 축구 선수 같은 홈런 세리머니를 펼쳤다. 특유의 스타성을 영국에서도 유감없이 뽐냈다.
하퍼는 9일(이하 한국시간) 영국 런던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4 메이저리그 월드투어 런던시리즈 뉴욕 메츠와의 경기에 3번타자 1루수로 선발 출장, 4회 홈런 포함 4타수 3안타 1타점 1득점으로 활약하며 필라델피아의 7-2 승리를 이끌었다.
가장 눈길을 끈 장면은 4회말 홈런이었다.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메츠 좌완 선발투수 션 마네아의 6구째 몸쪽 높게 들어온 시속 78마일(125.5km) 스위퍼를 받아쳐 우측 담장을 넘겼다. 타구 속도 107.2마일(172.5km), 발사각 36도로 날아간 시즌 15호 홈런. 1-1 동점을 만들며 6득점 빅이닝의 서막을 알린 한 방이었다.
베이스를 돌고 홈을 밟은 하퍼는 3루 덕아웃 앞에서 갑자기 무릎 꿇으며 슬라이딩하더니 양팔을 하늘 위로 크게 펼치며 환호했다. 마치 축구 선수의 골 세리머니 같았다. 이어 “난 축구를 사랑한다”고 반복해서 말하는 하퍼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TV 중계에도 생생하게 전달됐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MLB.com’은 ‘과거 이곳에서 골 세리머니를 했던 프리미어리그 슈퍼스타 중 한 명처럼 보였다’고 전했다. 이날 경기가 치러진 런던스타디움은 2012년 런던올림픽 당시 주경기장으로 영국 프리미어리그(EPL) 웨스트햄 유나이티드가 홈구장으로 쓰고 있다. 메이저리그 월드투어가 열릴 때마다 야구장으로 개조된다.
축구의 본고장에서 특별한 홈런 세리머니를 선보인 하퍼는 이날 경기 전 훈련 때 이 같은 아이디어를 고민했다. 그는 “팀원들을 모두 놀라게 하고 싶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며 “홈플레이트를 지나 실제로 축구 세리머니를 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유일한 두려움은 무릎이 잔디에 걸리는 것이었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고 말했다.
롭 롬슨 필라델피아 감독도 같은 걱정을 하고 있었고, 하퍼가 세리머니를 펼치는 순간 별다른 리액션 없이 굳은 표정으로 바라봤다. 다행히 부상이 아니라 한숨 돌린 톰슨 감독은 “다칠까봐 그랬다”며 “하퍼는 슈퍼스타다. 사람들은 하퍼의 플레이를 보기 위해 구장에 온다. 그는 그걸 잘 알고 있는 완벽주의자다. 타석에 설 때마다 안타를 쳐야 한다고 생각하고, 안타를 치지 못하면 화를 낸다. 그런 점이 하퍼를 위대하게 만든다”고 치켜세웠다.
필라델피아 팀 동료들도 하퍼의 축구 세리머니에 깜짝 놀랐다. 이날 승리투수가 된 선발 레인저 수아레즈는 “상징적인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유격수 에드문도 소사는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하퍼가 축구 선수처럼 세리머니를 하면서 우리도 같이 전염됐다. 정말 행복했다”며 기뻐했다. 외야수 닉 카스테야노스는 “하퍼는 쇼맨이다. 놀랍지도 않다. 유럽 팬들에게도 뭔가 보여줘야 했다”며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13시즌 통산 홈런 321개로 MVP 2회, 올스타 7회, 실버슬러거 3회에 빛나는 하퍼는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슈퍼스타이지만 영국에선 밖에 돌아다녀도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했다고. 하퍼는 “사람들이 내가 누군지 알아채지 못하는 게 정말 즐거웠다”며 웃었다. 하지만 이날 5만3882명 대관중 앞에서 강렬한 홈런 세리머니를 펼쳤으니 이제는 하퍼를 알아보는 영국 사람들이 많아질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