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타자가 쉽게 들락날락하면…팀이 가벼워 보인다.”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외국인 타자 요나단 페라자(26)는 지난 9일 대전 NC전을 앞두고 1군 엔트리에서 전격 제외됐다. 지난달 31일 대구 삼성전에서 6회 안주형의 좌익수 뜬공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펜스에 강하게 부딪쳐 가슴 통증을 호소한 페라자는 즉시 앰뷸런스를 타고 병원으로 이동했다.
검진 결과 특이사항이 없는 것으로 나왔지만 후유증이 남아있었고, 5경기 연속 결장했다. 지난 7일 대전 NC전에서 9회 대타로 복귀를 알린 뒤 8일 NC전에선 3번 지명타자로 라인업에 복귀했다. 그러나 4타수 무안타 3삼진으로 무기력했다. 특히 7회 3번째 타석에선 초구에 헛스윙을 하고 난 뒤 몸에 불편함을 느꼈는지 트레이너가 나와 상태를 체크하기도 했다.
8일 경기를 끝까지 소화했지만 9일 경기 전 페라자가 개운치 않은 상태를 보이자 김경문 한화 감독은 과감하게 1군 엔트리 제외를 결정했다. 김경문 감독은 “몸 상태가 완전치 않다고 하니 며칠 쉬고 나서 (2군) 경기에 나갈 것이다. 뛰는 것을 보고 완전하게 회복되면 올리겠다. 괜찮다는 리포트가 올라오면 10일 뒤 올릴 수 있다”고 밝혔다.
제대로 회복되지 않은 채 1군에서 억지로 끌고 가는 것보다 시간을 주고 확실하게 낫게 한 뒤 베스트 상태로 쓰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다. 그래도 쉬운 결정은 아니다. 엔트리에서 말소하면 재등록까지 최소 열흘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한화처러 타선의 기복이 심한 팀은 외국인 타자의 비중이 크다. 대타로라도 1군에 있는 것과 없는 건 상대가 느끼는 압박감부터 다르다.
김 감독이 페라자를 1군에서 제외한 것은 단순히 부상 관리 차원만은 아니었다. 김 감독은 “우리나라는 외국인 선수 3명이 어떻게 활약하느냐에 따라 팀의 위치가 달라진다. 외국인 타자가 (라인업에) 쉽게 들락날락하면 팀이 가벼워 보인다. 아무리 잘하는 선수가 있어도 한화 이글스 팀이 선수 하나에 흔들려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강조했다.
김 감독은 “페라자도 열심히 수비를 하다 다친 것이다. 엄살 부리는 건 아니고, 본인도 답답할 것이다”며 혹여나 외국인 선수 길들이기로 비쳐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김 감독의 말은 팀이 특정 선수의 부상이나 부진에 의해 경기력이 오락가락해선 안 된다는 의미로 강한 팀을 만들기 위한 김 감독의 오래된 지론이다.
가벼워 보이지 않는 팀이 되기 위해선 확고 부동한 고정 라인업도 필요하다. 김 감독은 지난 8일 NC전에서 8회 좌완 김영규 상대로 좌타자 황영묵을 대타 투입했다. 결과는 좌익수 뜬공. 황영묵의 좌투수 상대 타율은 8푼(25타수 2안타)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황영묵은 9일 NC 좌완 선발 카일 하트를 상대로 1번 타순에 기용됐다. 황영묵은 하트에게만 3안타를 몰아치며 시즌 내내 이어진 좌투수 상대 약점에 대한 실마리를 찾았다.
김 감독은 “지금 우리가 경기를 이기는 것도 생각해야 하지만 톱타자를 발굴하고 만들어야 한다. 팀의 주전이라면 왼손 투수 상대로 삼진 먹고 죽더라도 싸우는 법을 배우고 터득해야 한다. LG 같은 강팀은 좌타자들이 왼손 볼을 더 잘 친다. 영묵이 같은 경우도 왼손들을 많이 만나서 싸우고 이기는 법을 스스로 느껴야 한다. (최)인호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좌투수 상대 타율이 1할대(.171)에 불과한 최인호이지만 7일, 9일 NC전에서 좌완 다니엘 카스타노와 하트 상대로 모두 선발 출장해 각각 3루타, 2루타를 때렸다.
김 감독은 “왼손 투수가 나왔다고 해서 너무 들락날락하고 (라인업에서) 빼면 그렇다. 주전으로 자리잡으면 주전이다. 상대 투수가 바뀌었다고 주전을 중간에 빼는 건 아니다. 우리 좌타자들도 왼손 투수들한테 이기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자꾸 경험을 쌓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며 기계적인 좌우 놀이로 라인업 변동이 잦은 것보다 확실한 주전 선수들을 만들어 고정 라인업을 구축할 뜻을 내비쳤다.
김 감독 체제에서 한화는 당장 성적도 내야 하지만 뿌리부터 단단한 팀을 만들어야 한다. 첫 주 성적은 6경기 3승2패1무. 주중 수원 KT전 3연승 싹쓸이 기세를 주말 대전 NC전 2패1무로 이어가지 못한 게 아쉽지만 이제 서서히 김 감독이 팀을 파악하며 선수단에 메시지를 심어주는 과정에 있다. 요체는 특정 선수에 의존하지 않는, 무게감 있는 라인업이다. 과거 두산과 NC 시절 경쟁을 통해 만든 고정 라인업을 뚝심 있게 밀어붙인 것처럼 ‘옥석 가리기’ 과정을 지나면 김 감독 체제 한화 야구의 뼈대도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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