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김하성이 더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타석에서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공에 확실하게 적응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 지난해 김하성은 타율 2할6푼(538타수 140안타) 17홈런 60타점 38도루 OPS .749, wRC+(조정 득점생산력) 112의 성적을 기록했다. 센터라인 내야수 중에서도 손꼽히는 활약상이었다.
계약의 마지막 해, 자금난에 시달리는 샌디에이고는 김하성과 연장계약을 할 여력이 없다. 김하성으로 적절한 자원을 충원하기 위해 트레이드를 시도했지만 만족할 만한 제안을 받지 못했다. 결국 김하성을 트레이드하는 대신, 구단은 기존 유격수 잰더 보가츠와 자리를 맞바꿨다. 김하성을 트레이드하지 못하면서 스프링캠프를 시작하는 날에서야 포지션 전환 결정이 이뤄졌다. 샌디에이고는 김하성과 동행을 택하며 올 시즌을 준비했다.
다만, 김하성의 성적이 지난해에 비해 부족하다. 현재 김하성은 타율 2할2푼(232타수 51안타) 9홈런 32타점 35득점 13도루 OPS .725의 성적에 그치고 있다. 지난해 대활약에 비하면 아쉬운 수치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김하성은 불운을 말했다. 10일(이하 한국시간), 지역 매체인 ‘샌디에이고 유니온-트리뷴’과의 인터뷰에서 김하성은 “솔직히 올해 인플레이 타구들이 운이 조금이라도 더 좋았다면 제가 더 나은 타자라고 말할 수 있었을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부진한 모습일 때 자기 자신을 더 낮추고 분발하겠다고 다짐하는 김하성의 그동안 인터뷰 성향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발언이었다.
그러면서 “아직은 시즌 초반이다. 앞으로 해야 할 경기들이 많다. 매년 어떤 면에서 발전해야 한다는 마음을 늘 갖고 있다. 그래서 시즌이 끝날 무렵에는 더 나은 타자가 될 자신이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지난 8~9일, 이틀 연속 홈런을 때려내는 등 장타력이 다시금 살아나고 있다. 매체는 ‘부분적으로 파워 증가를 목표로 상당한 벌크업을 했지만 최근까지 지난해 17홈런과 비슷한 페이스를 기록하지 못했다’라면서 ‘하지만 지난 10경기 동안 하드 히트 비율은 이전보다 2배인 40%에 달하며 팀을 이끌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김하성은 “내가 원할 때 홈런을 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배럴 타구의 확률이 올라야 한다. 시즌 초반부터 그렇게 할 수 없었는데 점점 나아지고 있고 이 추진력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반등을 자신했다.
김하성이 ‘바빕신’의 외면을 말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데이터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지난해 김하성의 인플레이 타구 타율(BABIP)은 2할3푼7리에 불과하다. 지난해 3할6리보다 7푼 가까이 낮아진 수치다. 자신의 메이저리그 평균 2할8푼보다도 현저히 낮다. 지난해가 통계의 플루크 시즌으로 볼 수 있지만 시즌 평균과 비교해서도 낮은 점은 분명 김하성이 주장한 “운이 없다”의 근거가 충분하다.
이 뿐만 아니다. 다른 데이터들도 김하성의 불운을 말하고 있다. 김하성이 치는 모든 타구의 질이 좋아졌다. 배럴 타구(타율 .500, 장타율 1.500 이상을 기록할 수 있는 타구)를 때려낸 비율이 5.9%로 커리어 최고 수준이다. 평균 타구 속도도 지난해 86.2마일에서 88.2마일로 상승했다. 발사각도 16.3도, 발사각 8~32도 사이에서 스위트 스팟에 맞는 타구의 비율도 지난해 36.1%에서 38%오 올랐다. 하드 히트(95마일 이상)비율도 26.7%에서 35.8%로 10% 가까이 상승했다. 타구의 질을 나타내는 대부분의 수치에서 메이저리그 커리어 4년 중 가장 좋다. 김하성이 ‘바빕신의 외면’을 토로한 이유를 충분히 알 수 있다.
여기에 김하성의 성적이 상승할 수 있는 또다른 명분은 선구안이다. 김하성은 올해 삼진은 더 적게 당하고 더 많은 볼넷을 얻어내며 타격의 생산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타자로 거듭났다. 올해 삼진 비율은 16%로 커리어에서 가장 낮고 볼넷 비율이 13.8%다. 삼진 비율은 메이저리그 상위 17%, 볼넷 비율은 상위 4%에 해당한다. 타율이 2할2푼에 머물고 있지만 출루율이 1할이 더 높은 3할2푼8리라는 점은 타구의 불운이 사라지고 정상 범주로 회복이 되면 더 높은 가치를 지니는 기록이 될 수 있다. 지난해에 비해 타율이 4푼이 떨어졌지만 OPS가 .749에서 .725로 그리 크게 떨어지지 않은 것도 선구안으로 성적을 방어하고 있었기 때문.
BABIP와 같은 데이터는 결국 평균에 수렴하게 되는 데이터다. 김하성이 지금처럼 조급해하지 않고, 자신의 타격 방향성을 이어간다면 결국 지난해 못지 않은, 어쩌면 그 이상의 기록으로 보답받을 수 있다. 지금 부진하다고 FA 시즌 1억 달러 이상의 초대형 계약이 아직 물건너 간 것은 아니다.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