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나승엽(22)은 메이저리그도 눈독 들이던 재목이었다. 덕수고 시절부터 남다른 타격 재능으로 메이저리그 미네소타 트윈스와 가계약을 맺고 미국 무대 진출 직전이었다. 하지만 롯데가 2021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지명을 했고 또 설득을 하면서 롯데 유니폼을 입혔다. 2차 2라운드로 지명된 선수였지만 1라운더급 계약금인 5억원이라는 거액도 안겼다.
나승엽이 처음 프로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자 관계자들이 공통적으로 얘기한 것은 바로 ‘공을 잘 본다’였다. 나승엽은 자신의 히팅 존에 들어오는 공을 침착하게 기다렸다. 신인의 패기로 과감하게 휘두르는 모습이 아니었다. 나승엽은 섣불리 방망이를 내지 않으면서 자신만의 타격 자세를 지켜나갔다. 2021년 신인 시절, 나승엽의 타석 당 투구수는 4.44개였고 루킹 스트라이크 비율도 리그 평균 17.5%를 훨씬 상회하는 21.6%였다. 대신 헛스윙 비율은 리그 평균 9.5%보다 낮은 7%였다.
그리고 2022년부터 국군체육부대(상무)에서 병역을 해결했다. 일찌감치 군대에 다녀오면서 달라진 것은 체격이다. 8kg 가량 체중을 늘리면서 190cm의 큰 키에 걸맞지 않은 마른 체구에서 벗어났다. 제법 탄탄한 몸으로 돌아왔고 상무에서 실전 감각을 쌓고 돌아온 나승엽에게 과연 기회가 주어질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김태형 감독은 나승엽의 재능을 확인하면서 개막전 1루수 자리를 맡겼다. 스프링캠프에서 베테랑 정훈을 제치고 주전 1루수로 낙점을 받았다. 나승엽에게 본격적인 풀타임 시즌이 다가왔다. 3월23일 SSG와의 개막전에서 멀티히트를 때려내면서 기대감을 높였다. 그런데 이후 5경기에서 때려낸 안타는 11타수 1안타에 그쳤다. 정타를 거의 만들어내지 못했고 무기력하게 물러났다. 나승엽은 재능을 마음껏 펼치지 못하고 2군으로 내려갔다. 2군에서 한 달 가량 재조정을 거쳤다.
4월28일 1군에 다시 복귀한 나승엽은 자신의 재능을 다시 펼치고 있다. 타격 기술에 상무에서 갖추고 돌아온 파워를 바탕으로 2루타를 양산해내고 있다. 홈런은 1개 뿐이지만 2루타로 장타력을 보충하고 있다. 4월28일 1군에 복귀한 이후 이 기간 타율 3할3푼8리(130타수 44안타) 1홈런 17타점 OPS .932를 기록하고 있다. 2루타는 15개로 이 기간 키움 로니 도슨과 함께 공동 1위다.
그리고 나승엽은 신인 때처럼 타석에서 침착하게 접근하고 있다. 나승엽의 기본적인 마인드는 “덤비려고 안한다. 공은 어차피 오는 것이기 때문에 공이 오는 것을 기다리고 그대로 친다는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마인드는 여전히 기록으로 드러난다. 타석 당 투구수 4.15개로 리그 평균 3.90개를 훨씬 상회한다. 리그에서 많은 쪽으로 10위 권이다. 그리고 신인 때처럼 헛스윙 비율은 낮고, 루킹 스트라이크 비율은 높다. 올해 헛스윙 비율은 6.8%(평균 9.5%), 루킹 스트라이크 비율 20.6%(평균 17.7%)다. 선구안은 유지한 채, 힘까지 기르고 돌아오니 성적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김태형 감독은 나승엽의 재능을 인정하고 높게 평가하고 있다. 다만, 초구 공략을 권장하며 3볼 카운트에서의 타격도 지지하는 공격적인 성향의 김태형 감독 입장에서는 이러한 나승엽의 침착한 면모가 때로는 답답하게 다가올 때도 있다. 침착성과 공격성의 접점을 찾으면 잠재력이 더 폭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김태형 감독은 “공을 조금 많이 보는 경향이 있다. 본인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공에 스트라이크를 많이 당하는데 그것을 따라가서 쳐야 한다. 그 부분만 개선하면 더 괜찮을 것 같다”라면서 “심판이 볼 판정을 하더라도 봤을 때 ‘저 정도는 배트가 나가야 하는데’라는 공이 있다. 또 당연히 스트라이크라고 생각한, 할 말이 없는 공들도 지켜보는 경우도 많이 나왔다”라고 설명했다.
“이제 풀타임 첫 해인데 저 정도면 정말 잘하고 있다. 타격할 때 따라가서 팔을 놓을 줄 아는 선수라 그대로 스윙을 돌리면 된다”라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코스에만 공이 오지 않는다. 한 타석에 올까 말까다”라고 말하면서 나승엽의 적극적인 타격을 권장했다.
취재진에게 했던 얘기를 나승엽에게도 건넨 김태형 감독이다. 나승엽도 이러한 지적을 수용하고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 나승엽도 “감독님께서 좀 더 적극적으로 스윙을 하라고 얘기해주시면서 저도 적극적으로 치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런 얘기를 감독님께서 정말 많이 해주신다”라고 설명했다.
이제 막 풀타임을 치르는 신인급 선수. 시행착오는 불가피하고 또 쓰라린 아픔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를 이겨내는 과정이 성장이자 경험이다. 지난 14~15일 잠실 LG전, 나승엽은 남다른 흡수력으로 빠르게 피드백을 받으면서 달라졌다.
롯데는 14일 경기에서 3-5로 석패를 당했다. 대등한 경기를 펼쳤지만 경기 중후반 결정적인 득점권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특히 3-4로 뒤진 8회초 상황이 아쉬웠고 그 중심에 나승엽이 있었다. 롯데는 1사 후 손호영과 레이예스의 연속안타로 1사 1,3루 기회를 잡았다. LG 마무리 유영찬을 빠르게 끄집어 냈다.
첫 타자가 나승엽이었다. 그런데 나승엽은 결정적인 득점권 타석에서 배트를 한 번도 내지 않았다. 너무 방어적이었고 기다렸다. 나승엽의 기본적인 기질이 드러난 타석이었다. 2볼 1스트라이크의 히팅 카운트에서 바깥쪽 코스였지만 148km 패스트볼을 그대로 지켜보면서 스트라이크를 당했다. 그리고 5구째 몸쪽으로 휘어져 들어오는 136km 포크볼을 지켜보며 루킹 삼진을 당했다. 나승엽의 히팅 존에 들어오지 않은 공들이었지만 대처가 아쉬웠다. 결국 이 이닝 득점에 실패했다.
그러나 이튿날인 15일, 나승엽은 바로 이를 개선해서 등장했다. 1회 2사 1,3루의 타점 기회에서 2구 만에 타격, 우중간 적시 2루타를 뽑아냈다. 3회에는 선구안을 과시하며 7구 승부 끝에 볼넷을 얻어냈다. 5회에는 2볼 1스트라이크 카운트에서 적극적으로 배트를 내며 2루타를 만들었다. 6회 1사 1,2루 기회에서는 2스트라이크에서 3구째를 타격했지만 우익수 홍창기의 호수비에 걸렸다.
그리고 8-8 동점에서 맞이한 9회초, 나승엽은 다시 한 번 타점 기회에서 유영찬과 마주했다. 2사 1,2루의 상황에서 초구부터 배트를 내면서 파울을 만들었다. 이후 볼을 골라낸 뒤 연거푸 배트를 냈고 파울이 됐다. 결국 5구 포크볼에 다시 한 번 스윙을 돌렸고 이것은 우전 적시타로 연결이 됐다. 하루 만에 더 성장해서 돌아온 나승엽을 확인했다.
재능을 믿고 피드백을 등한시 하지 않는다. 스스로 부족한 점을 채워가고 있고 그 덕에 현재 롯데가 자랑할 수 있는 재능의 선수로 거듭났다.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