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의 ‘괴물 투수’ 류현진(37)이 KBO리그에서 14년 만에 완봉승 기회를 잡았지만 스스로 포기했다. 다음 등판을 위해 눈앞의 욕심을 버렸다. 개인의 영광스런 기록에 연연하지 않고 팀을 위해 다음 경기 준비에 포커스를 맞췄다.
류현진은 지난 18일 청주구장에서 열린 키움 히어로즈와의 홈경기에 선발등판, 8이닝 5피안타 무사사구 8탈삼진 무실점 호투로 한화의 3-0 승리를 이끌었다. 총 투구수 101개로 최고 시속 149km, 평균 143km 직구(50개)에 커브, 체인지업(이상 23개), 커터(5개)를 구사했다. 시즌 5승(4패)째를 거둔 류현진은 평균자책점을 3.38로 낮췄다. 이 부문 리그 전체 4위로 국내 투수 중에선 삼성 원태인(3.04)에 이어 2위로 뛰어올랐다.
지난 4월5일 고척 키움전에서 4⅓이닝 9피안타 2볼넷 2탈삼진 9실점으로 커리어 최악의 투구를 한 뒤 8.36으로 치솟았던 평균자책점을 74일, 11경기 만에 3.38까지 낮췄다. 74일 만의 리턴 매치에서 키움을 압도한 류현진은 최근 6경기에서 3승 무패 평균자책점 0.73으로 압도적인 투구를 펼치며 우리가 알던 ‘괴물 투수’로 완전하게 돌아왔다.
7회까지 투구수 84개로 여차하면 완봉까지 노려볼 만했다. 8회 2사 후 고영우에게 좌전 안타를 맞아 투구수가 96개로 불어나자 박승민 한화 투수코치가 마운드에 올랐지만 금세 내려왔다.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박 코치의 말에 류현진이 “제가 책임질게요”라고 말한 뒤 다음 타자 이주형을 5연속 직구로 헛스윙 삼진 처리하며 실점 없이 8회까지 이닝을 직접 마무리했다.
투구수가 101개라 교체가 예상되긴 했지만 완봉승이 걸린 경기라 김경문 감독과 한화 코칭스태프도 류현진의 의사를 계속 체크했다. 류현진은 KBO리그에서 통산 8번,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3번의 완봉승을 거둔 바 있다. 한화 소속으로는 지난 2010년 7월21일 대전 롯데전(9이닝 5피안타 1볼넷 9탈삼진 무실점)이 마지막 완봉승으로 남아있다.
그로부터 14년 만에 한국에서 완봉승 기회가 왔지만 류현진은 9회 마운드에 오르지 않았다. 3-0 리드 상황에서 마무리투수 주현상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경기 후 류현진은 완봉승에 대해 “안 아까웠다. 전혀 아깝지 않았다”면서 “오늘이 화요일이 아니었더라면 (9회까지) 내가 던지겠다고 했을 것이다. 일요일(23일 광주 KIA전) 경기도 있다”며 4일 휴식을 갖고 나설 다음 등판 위해 완봉승에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류현진에게 완봉승보다 중요한 건 건강한 몸으로 시즌을 끝까지 완주하는 것이다. 완봉승을 하면 물론 좋겠지만 100개 이상 던진 상황에서 무리하게 기록에 욕심낼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했다. 워낙 영리한 선수라 눈앞의 1승, 기록에 연연하지 않고 길게 바라볼 줄 안다.
지난달 31일 대구 삼성전에도 류현진은 경기 시작 30분 전을 앞두고 팔꿈치 통증을 이유로 등판을 취소했다. 크게 심각한 부상은 아니었고, 참고 던질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팔꿈치에 뻐근함을 느끼자 스스로 ‘스톱’했다. 로테이션을 한 차례 건너뛰고 난 뒤 3경기 20이닝 무자책점으로 위력을 떨치고 있다. 그때 한 번 쉬고 난 뒤 비축한 힘으로 투구가 더 좋아졌다.
류현진은 메이저리그 시절에도 조금이라도 몸이 안 좋다 싶으면 무리하지 않고 스스로 쉬어갈 줄 아는 현명한 선수였다. LA 다저스 시절이었던 지난 2019년 4월9일(한국시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전에서 2회 투구 중 왼쪽 사타구니에 통증을 느낀 뒤 자진 강판했다.
그때 당시에도 류현진은 “(통증이) 살짝 경미하게 왔다. 이 상태에서 멈추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몸을 생각하면 잘 스톱하고 내려온 것 같다”고 말했다. 이후 부상자 명단에 오르긴 했지만 부상이 악화되진 않아 12일 만에 복귀했다. 만약 그때 멈추지 않고 무리했더라면 내셔널리그(NL) 평균자책점 1위, 사이영상 2위의 영광은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