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고민했고 한 번도 치열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프로 데뷔 이후 15만 시간의 노력, 손아섭은 이렇게 안타 장인이 됐고, 한국프로야구 역사 최고의 자리에 올라섰다.
손아섭은 20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4 신한 SOL뱅크 KBO리그 두산 베어스와의 시즌 11번째 맞대결에 2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전해 6회초 좌전안타를 때려냈다. 이 안타로 개인 통산 2505번째 안타를 기록, 박용택의 2404안타를 제치고 개인 통산 최다 안타 신기록을 세우게 됐다. 역대 최고의 안타 장인을 공인받은 대기록이었다.
두산 선발 라울 알칸타라를 상대한 손아섭. 1회초 2루수 땅볼, 3회초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난 손아섭은 0-2로 뒤진 6회초,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3번째 타석을 맞이했다. 1볼 2스트라이크의 불리한 볼카운트에 몰렸지만 6구째 포크볼을 밀어쳐서 좌전 안타를 만들어냈다.
부산고를 졸업하고 2007년 신인드래프트 2차 4라운드로 입단해 그 해 데뷔한 손아섭은 2007년 데뷔 4월7일 수원 현대 데뷔전에서 첫 안타를 2루타로 때려냈다. 이듬해 2008년 66안타, 2009년 16안타를 기록했던 손아섭은 2010년부터 풀타임 선수로 본격적으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타격 장인’, ‘안타 장인’ 손아섭 역사의 시작이었다. 2010년 121경기 타율 3할6리(42타수 129안타) 11홈런 47타점 85득점 OPS .815의 기록을 남기며 성공적으로 풀타임 선수로 연착하기 시작했다. 2011년 타율 3할2푼6리 144안타로 활약을 이어갔다.
2010년부터 14시즌 연속 100안타 이상, 그리고 2012년부터는 매년 150안타를 때릴 수 있는 안타 생산 능력을 과시했다.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13시즌 동안 2014년 한 시즌을 제외하고는 모두 150안타 이상을 때려냈다.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역대 최다인 8년 연속 150안타 기록을 세우고 이 기록은 현재 진행형이다.
2017년 데뷔 11년차에 첫 프리에이전트 자격을 얻은 손아섭은 롯데와 4년 총액 98억원의 계약을 맺고 롯데에 잔류했다. 이후 2021년까지 롯데에서 2077안타를 기록했고 2022년 두 번째 FA 자격을 얻어서는 NC와 4년 64억원 계약으로 이적했다. 올해까지 428안타를 기록 중이다.
손아섭은 상위라운드에 지명을 받았고 데뷔 첫 해부터 커리어를 이어왔다. 보통의 선수라면 한 번도 하기 힘든 FA 자격을 두 번이나 행사했다. 3번째 FA도 가능한 현재 페이스다. 남들이 뭐라고 해도 성공적인 커리어라고 볼 수 있다. 모두가 손아섭의 천부적인 재능을 얘기한다. 그러나 지금의 자리까지 오기까지 손아섭은 데뷔 이후 한 번도 치열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데뷔전을 치르면서 첫 안타까지 만든 2007년 4월7일부터 최다안타 신기록을 만든 2023년 6월20일까지, 6285일, 시간으로 따지면 15만192시간 동안 손아섭은 한시도 야구를 떼어놓고 생각하지 않았고 매 순간 노력하고 고뇌했다. 경기 전 최상의 몸상태를 만들기 위한 루틴을 정립하며 이를 빠짐없이 실천했다. 또 술, 담배, 탄산 등 몸에 좋지 않은 것들은 일절 손에 대지 않았다.
잘 맞을 때도 더 나아지기 위해 고민했고 안 맞을 때는 더더욱 노력하면서 손아섭 스스로 생존의 방법을 찾아갔다. 손아섭 하면 떠오르는 ‘악바리 근성’은 모두 이러한 노력 때문이었다. 잘 맞은 타구가 잡히더라도 그 순간 만족한 게 아니라 “잘 맞은 타구가 잡히는 것은 결국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는 말로 반성하면서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했다.
매년 시즌 초반의 성적이 좋지 않았고 슬로우 스타터 기질을 드러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겨울 비시즌마다 이전 시즌을 복기하면서 어떻게 하면 더 좋아질 수 있을까를 생각했고 그러다 보니 새로운 타격폼과 메커니즘 등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리고 언제나, ‘손아섭다운’ 성적으로 회귀했다.
위기도 없지 않았다. 2022년, NC 이적 첫 해, 타율 2할7푼7리(548타수 152안타) 4홈런 48타점 72득점 OPS .714의 성적에 그쳤다. 커리어 최악의 성적을 기록한 게 이적 첫 시즌이었다. 손아섭을 향한 의문과 우려의 시선이 적지 않았다.
그리고 손아섭 스스로도 위기감을 느꼈고 벽에 부딪혔다. 이미 최고의 선수 반열에 올라 있었지만 누구에게 조언을 듣는 것에 거부감이 없었다. 손아섭은 다시 반등하기 위해 선수 시절부터 절친했던 강정호를 찾아갔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타격 아카데미를 하고 있는 강정호에게 레슨을 받았다. 이 자리에서 손아섭은 다시 반등의 동력을 얻었고 2023년, 생애 첫 타격왕(.339)에 최다안타왕(187안타) 2관왕에 올랐다. 그리고 올해 대기록까지 작성했다.
손아섭은 “내가 1위라는 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다만 내가 그 동안 정말 고생 많이 하고 노력했던 시간을 조금이나마 보상받는 느낌이 들어서 기분은 좋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아직 야구를 할 날이 많기 때문에 끝날 때까지 가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본다”라면서 “솔직히 난 천재형 타자는 아니다. 그런데 그 누구보다 간절하게 임했다. 투수에게 어떻게든 이기고 싶어서 치열하게 했다”라면서 최다안타 달성까지 커리어를 되돌아봤다.
그러면서 “할 수 있는 데까지 포기하지 않고 해봐야 한다. 난 신체조건이 많이 부족했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작은 체격을 커버할 수 있는 스윙을 많이 연구하면서 나만의 스윙을 만들었다. 포기하기보다 끝까지 준비하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빛을 낼 수 있다.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며 치열하게 생존했던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며 후배 선수들을 위한 조언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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