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다가 전반기 끝난다.”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 이승엽 감독은 지난 27일 대전 한화전을 앞두고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올 시즌 내내 정상 전력을 가동하지 못하는 상황을 두고 쓴웃음을 지었지만 무너지지 않고 잘 버텼다. 1위에 3.5경기 뒤진 4위로 선두권 경쟁을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전반기 두산의 가장 큰 악재는 외국인 투수들의 거듭된 이탈이었다. 지난해 에이스였던 라울 알칸타라가 4월말 팔꿈치 통증을 느낀 뒤 정밀 검진 결과 별다른 이상 발견되지 않았지만 불안감을 호소했다. 주치의를 만나기 위해 구단 배려로 미국에 다녀오며 한 달이 조금 넘는 기간을 빠져 있었다. 그러나 부상 복귀 후에도 6경기 1승1패 평균자책점 5.81로 좋을 때 모습을 찾지 못하고 있다.
또 다른 외국인 투수 브랜든 와델도 몸이 말썽이다. 14경기 7승4패 평균자책점 3.12로 좋은 투구를 하고 있지만 건강이 받쳐주지 않는다. 4월 중순 허리 통증으로 3주간 공백기를 갖더니 지난 23일 대구 삼성전 더블헤더 1차전에서 3회 어깨 뒤쪽에 불편함을 느껴 자진 강판했다. 검진 결과 어깨 견합하근 부분 손상으로 3주 후 재검진받기로 했다. 최소 한 달 이상 장기 이탈이 불가피하다.
외국인 투수 2명이 연이어 부상으로 들락날락하면서 선발진이 정상적으로 굴러가지 않고 있다. 올해 외국인 투수 선발등판이 25경기로 한화와 함께 가장 적은 팀이 두산이다. 브랜든(75이닝), 알칸타라(62⅓이닝)가 합쳐서 137⅓이닝을 던졌는데 한화(118⅓이닝), SSG(121⅓이닝)에 이어 외국인 투수들의 투구 이닝이 3번째로 적다.
외국인 원투펀치가 이 모양인데도 두산은 무너지지 않고 지금까지 잘 버텼다. 지난 27일까지 43승37패2무(승률 .538)로 4위에 랭크되며 1위 KIA(45승32패2무 승률 .584)를 3.5경기로 쫓고 있다. 일주일 전까지 2위로 호시탐탐 선두 자리를 넘볼 정도였다.
한 번 이상 선발등판한 투수만 리그 최다 13명이나 될 정도로 로테이션 돌리기도 벅찬 시즌이다. 최준호, 김유성 등 젊은 대체 선발들이 잇몸 야구를 보여줬지만 결국 불펜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불펜이 리그 최다 344⅓이닝을 던지면서도 평균자책점 1위(4.08)로 잘 막아줬다. 마무리를 꿰찬 신인 김택연을 비롯해 좌완 이병헌, 우완 최지강 등 젊은 피들의 성장이 큰 힘이 되고 있다. 베테랑 홍건희, 이영하, 김강률도 두산 버티기 야구를 뒷받침하고 있다.
하지만 시즌 후반까지 계속 불펜 야구를 할 순 없다. 이승엽 감독도 “중간투수들이 잘해주고 있지만 선발들이 긴 이닝 소화를 못했기 때문에 조금씩 힘에 부치는 상황이 나온다. 외국인 투수가 한 명 빠지고, 여러 문제가 생겼다. 이번 주말만 지나면 장마가 오고, (올스타전 휴식기) 4일 여유도 있다. 비 예보가 있어도 경기를 한다는 생각으로 준비하겠지만 장마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꿀맛 같은 장마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근본적인 선발 해결책은 외국인 투수 정상화. 이 감독은 “브랜든을 대체할 선수를 찾고 있다. 좋은 방향으로 길지 않게 공백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며 “선수들이 진짜 열심히 하고 있다. (2군에서) 더 이상 올라올 선수가 없을 정도로 버티고 있다. 조금만 더 버텨서 외국인도 들어오고 하면 좋아질 것이다. 좋은 일이 생길 것이다. 좋은 생각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브랜든을 단기 대체할 투수가 어느 정도 준비된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알칸타라의 거취에도 관심이 모인다. 지난 26일 한화전에서 3회까지 수비 실책 하나를 빼고 노히터로 막던 알칸타라는 그러나 4회에만 홈런 2개 포함 4피안타 3볼넷 5실점으로 와르르 무너지며 이닝 도중 강판됐다. 기복이 심한 알칸타라에 대해 이 감독은 “많이 안 좋다. 고민이 많이 된다”고 말했다. 외국인 투수 악재 속에서도 4위로 버티는 두산이 더 높은 곳을 바라보기 위해선 지금 이 상황을 그대로 놓아둘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