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의 투고타저가 시즌을 거듭할수록 깊어지고 있다. 10점차도 안심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날이 더워지면서 타자들의 배트에 불이 붙었고, 투수들은 그야말로 죽어나고 있다. 볼질로 자멸하는 수준 이하 경기도 급증했다.
지난주 KBO리그에선 다득점 경기가 쏟아졌다. 지난달 25일 사직 KIA-롯데전은 15-15, 역대 최다 득점 무승부로 화제가 됐다. KIA가 4회초까지 14-1, 무려 13점차로 앞서던 경기를 롯데가 7회말 15-14로 역전했다. 역대 최다 점수차 역전승이 나올 뻔했는데 8회 KIA가 1점을 내면서 15-15, 12회 무승부로 종료가 됐다.
이어 26일 고척 NC-키움전은 10-0으로 앞서던 9회초 키움 투수 박승주와 문성현이 무려 9사사구(8볼넷 1사구)를 남발하며 7실점으로 흔들렸다. 한 이닝 최다 사사구 허용이라는 불명예 기록을 쓴 키움은 10점차 리드 경기에서 마무리 조상우를 쓰며 10-7로 진땀승을 거뒀다.
30일 창원 LG-NC전에서도 LG가 7회초까지 9-1, 7점차 앞서던 경기가 9-6으로 쫓겼다. 8회말 이우찬과 김대현이 각각 2볼넷, 1볼넷 1사구로 안타 없이 밀어내기를 점수를 주며 만루를 쌓아둔 채 강판됐다. 마무리 유영찬을 8회 1사에 조기 투입해 승리했지만 찜찜한 뒷맛을 남겨야 했다.
경기 흐름이 한순간에 휙휙 바뀐다. 타고투저 시즌의 특징이다. 올해 리그 타율은 2할7푼6리로 역대 43번의 시즌 중 6번째로 높다. 리그 평균자책점 역시 4.87로 5점대에 육박한다. 규정타석 3할 타자가 22명이나 되는 반면 규정이닝 평균자책점 2점대 투수는 2명밖에 없을 만큼 투타 간극이 크다.
눈 뜨고 보기 힘든 경기들도 속출하고 있다. 지난달 22일 문학 NC-SSG전에선 한 경기 최다 6번의 밀어내기 득점이 나왔다. 2회말에만 NC 투수 김시훈, 서의태가 안타 없이 볼넷 7개로 밀어내기 4실점을 합작했다. 앞서 5월3일 같은 장소에선 반대로 6회초 SSG 한두솔, 서진용, 김주온이 초유의 5연속 밀어내기 실점으로 자멸하기도 했다.
특정 팀이 아니라 리그 전체에 이 같은 경기력이 자주 나타나고 있다. 지난 2015년 10개 구단 체제가 시작된 뒤 KBO리그는 양적 팽창을 이뤘지만 질적 하락은 피할 수 없었다. 2020년대 들어 ‘베이징 키즈’ 영건들이 등장해 세대 교체를 이루는가 싶었지만 올해 들어 투수력 저하가 심각해지고 있다.
단순히 투수 수준만을 탓할 수 없다. 가뜩이나 투수력이 모자란 KBO리그인데 올해 도입된 ABS(자동투구판정시스템), 베이스 크기 확대, 수비 시프트 제한은 모두 투수들에게 불리한 규정이다. 자신만의 존이 확실한 타자들이 ABS에 적응하면서 투수들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형국. KBO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공인구 반발력 상승도 투수들에겐 큰 악재다.
타이트해진 일정도 투수들을 죽어나게 한다. 시즌 후 프리미어12 준비를 위해 역대 가장 이른 시기에 개막한 KBO리그는 4~6월 주말에 우천 취소시 더블헤더를 편성하면서 일정이 타이트해졌고, 투수들의 부담도 크게 가중됐다. 6월까지 투수의 부상자 명단 등재만 52회로 지난해 같은 시기 42회보다 10회 더 늘었다. 이의리(KIA), 김민우(한화), 김윤식(LG) 등 팔꿈치 수술로 시즌 아웃된 투수들도 있다. 2군에서 경험을 쌓아야 할 투수들이 부상 공백을 메우기 위해 1군에 올라오다 보니 금방 한계에 부딪친다.
리그 전체 9이닝당 볼넷도 3.86개로 역대 5번째로 높은 시즌인데 ABS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ABS 도입시 볼넷 증가가 예상돼 좌우 기준 양 사이드를 2cm씩 확대했지만 지난해(3.60개)보다 9이닝당 볼넷이 늘었다. 사람 심판이 볼 판정을 할 때만 해도 승부가 기울면 존을 넓게 가져가며 ‘운영의 묘’를 발휘하곤 했지만 ABS 도입으로 칼같은 판정이 스코어에 관계없이 적용된다. 추격조 투수들에겐 가혹한 환경이고, 경기 중후반 7~10점차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