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수 이야기도 좀 써줘요.”
프로야구 KT 위즈 ‘주장’ 박경수(40)는 지난 4월6일자로 말소된 뒤 90일째 1군 엔트리에 없다. 시즌 초반 5경기 모두 교체로만 출장해 3타수 2안타 1타점을 기록했지만 천성호, 오윤석 등 후배들에게 2루수 자리를 물려줬다.
하지만 엔트리 말소 후에도 박경수는 2군에 내려가지 않고 1군 선수단과 계속 동행하며 보이지 않게 주장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경기 전 후배들을 위해 배팅볼을 던져주고, 수비 훈련도 같이 하면서 자신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하고 있다.
지난해 시즌을 마치고 은퇴가 유력했던 박경수를 이강철 KT 감독이 1년 더 붙잡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강철 감독은 지난 4일 대전 한화전을 앞두고 전반기를 결산하며 “부상 선수들이 많아 어려운 상황에서도 팀 분위기가 처지지 않았다. 고참들이 잘해줬는데 경수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분위기를 좋게 만들어준 게 크다”고 말했다.
이어 이 감독은 “배팅볼도 던져주고, 수비 연습 때 가르쳐주면서 (오)윤석이 수비도 많이 좋아졌다. 선수들의 멘탈적인 부분에서 경수가 여러 가지로 도움 주고 있다. 분위기가 안 좋을 때가 있어도 경수가 해결해준다”며 “내 생각으로는 우리가 포스트시즌에 나가면 엔트리 한 자리에 경수를 넣고 싶다. 포스트시즌은 엔트리가 늘어난다. 경수가 들어가서 마무리하면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정규시즌 1군 엔트리는 28명이지만 포스트시즌에는 2명이 추가돼 30명까지 등록 가능하다. 단순히 예우 차원에서 박경수를 넣고 싶은 것은 아니다. 이 감독은 “수비는 아직도 좋다. 박경수만한 수비가 어디 있나. 몸 관리도 계속 잘하고 있다”며 “(박경수를 위해) 그래서 더 포스트시즌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박경수는 KT에서 충분히 이런 예우를 받을 만한 선수다. 2014년 시즌을 마친 뒤 LG를 떠나 KT와 FA 계약하면서 창단 첫 시즌부터 함께한 박경수는 주전 2루수 자리잡아 팀의 토대를 마련했다. LG 시절에는 만년 유망주였지만 KT에 와서 잠재력을 뒤늦게 꽃피우며 20홈런 시즌만 3번을 보냈다. 2016년부터 3년간 주장으로 리더십도 발휘했다.
2019년 이강철 감독이 부임한 뒤에도 박경수는 꾸준한 활약을 이어갔고, 2021년 큰 경기마다 슈퍼 캐치를 선보이며 창단 첫 통합 우승 주역이 됐다. 한국시리즈 MVP도 박경수의 몫이었다. 2022년부터 다시 주장을 맡았고, 올해까지 3년 연속 완장을 떼지 않고 있다. 이 기간 KT는 매 시즌 초반 줄부상으로 힘겨운 시기를 보냈지만 보란듯 극복하며 ‘올라올 팀은 올라온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런 KT 특유의 ‘회복 탄력성’도 박경수가 만든 분위기의 힘이 크다. 올해도 개막부터 시즌 내내 베스트 전력을 가동하지 못한 KT는 지난달 16일까지 승패 마진이 -13까지 떨어졌다. 이번에는 정말 쉽지 않을 것으로 보였는데 토종 에이스 투수 고영표의 복귀를 기점으로 5연속 위닝시리즈로 반등, 승패 마진을 -7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 전반기를 5위 SSG에 3경기차 뒤진 7위로 마쳤다.
한때 고정 선발투수 한 명으로도 버텼던 이 감독은 전반기에 대해 “정말 훌륭하게 잘 버텼다. 부상으로 많이 빠진 상황에서도 선수들이 어떻게든 포기하지 않고 매 경기 집중해줬다. 부상자들이 돌아오기 전까지 -10개 안으로 가는 게 목표였는데 생각했던 대로 되지 않았나 싶다. 전반기 열심히 고생해준 우리 선수 모두에게 고맙다”며 “생각했던 것보다 5위와 가까워졌다. 후반기에 찬스를 잡을 수 있는 틀은 만들어놓은 것 같다. 다른 팀들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우리 전력대로 가면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후반기 5위 싸움을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