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선수를 죽이는 것" 9회 대타 찬스 외면, 굴욕 같았던 배려…이틀 휴식으로 김현수 살렸다
OSEN 이상학 기자
발행 2024.07.14 14: 02

“그 상황에 대타로 넣는 건 현수를 죽이는 것이었다.”
프로야구 LG 트윈스 중심타자 김현수(36)는 지난 11일 잠실 KIA전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됐다. 6월말부터 이어진 타격 부진이 길어지자 염경엽 LG 감독이 뺀 것이다. 대타로 대기할 줄 알았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이날 9회말 마지막 공격에서 LG가 2-4로 따라붙으며 2사 만루 찬스를 이어갔다. 안타 한 방이면 동점이 될 수 있는 상황. 우완 전상현 상대로 우타자 구본혁 타석 때 대타 기용이 예상됐지만 염경엽 감독은 그대로 밀고 나갔다.
다음 타자 송찬의 타석에 신민재가 대타로 대기했고, 김현수는 아무런 준비 없이 덕아웃에 머물렀다. 김현수는 타석에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상대 투수를 압박할 수 있는 무게가 있다. 하지만 염 감독은 김현수를 외면했고, 구본혁이 중견수 뜬공 아웃되면서 LG의 패배로 경기가 끝났다. 선발 제외 후 대타로도 준비하지 못한 김현수에겐 굴욕적인 상황으로 비쳐졌지만 이튿날인 12일 대전 한화전을 앞두고 염경엽 감독이 밝힌 이유는 ‘배려’였다. 

LG 김현수.  2024.07.04 / ksl0919@osen.co.kr

LG 염경엽 감독이 김현수와 기뻐하고 있다. 2024.06.02 /soul1014@osen.co.kr

염 감독은 “현수에게 부담을 주기 싫었다. 득점권에서 자기가 해결 못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데 쉬게 해준다고 해놓고 그 상황에 대타로 넣는 건 현수를 죽이는 것이었다. 아직 준비하는 시간인데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현수를 쓰는 것은 악의 구렁텅이로 넣는 것이었다. 거기서 못 치면 선수가 더 살아나기 힘들어진다. 어제는 내 머릿속에서 현수를 지웠다”고 말했다. 
염 감독은 12일 한화전에도 김현수를 벤치에 앉혀뒀다. “오늘까지 안 쓰려고 한다. 조금 더 좋은 상황에 쓸 것이다. 문동주는 상대하기 힘든 투수다. 선수가 (폼을 재정비해) 새로 시작할 때는 결과의 확률을 높여줘야 한다. 그래야 선수가 빨리 살아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현수가 문동주에게 통산 9타수 2안타 2볼넷 2삼진으로 다소 약했던 점을 고려해 이틀간 완전히 휴식을 준 것이다. 순위 싸움 중 연패에 빠진 상황을 감안하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염 감독의 세심한 배려 속에 이틀을 쉬며 재조정한 김현수는 13일 한화전에 3번타자 좌익수로 선발 복귀했다. 1회 첫 타석부터 김현수답게 배트가 돌았다. 한화 좌완 선발 김기중의 슬라이더를 받아쳐 우전 안타로 선취점의 연결고리 역할을 한 김현수는 3회 박상원 상대로도 우측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날렸다. 한화 우익수 김태연의 다이빙 캐치에 잡혀 안타를 빼앗겼지만 타구의 질이 좋았다. 
6회에는 김규연과 8구 승부 끝에 볼넷을 골라내며 추가점 발판을 마련했다. 이어 8회 좌완 황준서의 바깥쪽 낮은 커브를 잡아당겨 우전 안타로 멀티히트에 성공했다. 4타수 2안타 1볼넷 3득점 활약으로 LG의 7-3 승리와 4연패 탈출을 이끌었다. 
LG 김현수. 2024.07.04 / ksl0919@osen.co.kr
LG 김현수가 염경엽 감독과 승리의 기쁨을 나누고 있다. 2024.05.18 / ksl0919@osen.co.kr
염 감독은 “현수가 옛날 자기 폼으로 돌아갔다. 자기 폼을 찾는 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더 잘하기 위해 레그킥을 하지 않고 간결한 토탭으로 변화를 줬지만 결과적으로 독이 된 김현수는 원래대로 다리를 들고 치면서 빠르게 자기 타이밍을 찾았다. 이제 한 경기를 한 것이지만 김현수다운 타격이 나왔다는 점에서 반등을 기대할 만하다. 
이날 LG는 김현수뿐만 아니라 박해민과 오지환도 모처럼 맹타를 치며 타격 반등 조짐을 보였다. 박해민은 그 전날(12일) 2안타를 친 데 이어 이날은 2회 우월 솔로 홈런을 터뜨렸다. 오지환도 1회, 8회 적시타로 2안타 2타점을 올렸다. 김현수, 박해민, 오지환이 제 모습을 보여주면서 모처럼 LG 타선이 활발하게 터졌다. 
염 감독은 “현수, 지환이, 해민이가 살아나야 우리다운 야구를 할 수 있다. 우리는 방어의 팀이 아니라 타격의 팀이다. 핵심 타자 3명이 안 맞으면 힘든 경기를 할 수밖에 없다. 이 선수들을 살리는 것에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래야 LG다운 야구로 승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 말대로 세 선수가 살아난 13일 한화전에서 4연패를 끊고 반등 계기를 마련했다. 경기를 마친 뒤 염 감독은 “박해민, 오지환, 김현수가 타격에서 조금씩 자기 느낌들을 찾아가는 것 같아 기대된다. 앞으로 연승을 통해 치고 나갈 수 있도록 다 함께 노력했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LG 박해민. 2024.05.10 / foto0307@osen.co.kr
LG 오지환. 2024.05.18 / ksl0919@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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