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5연패를 당하며 가을야구 경쟁에서 점점 밀려나는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올해도 여러모로 진 빠지는 여름을 보내고 있지만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꽃이 있다. 데뷔 첫 10홈런을 치며 규정타석 3할 타율을 기록 중인 김태연(26)의 재발견이 한화에는 큰 수확이다.
한화는 지난 19일 대전 KIA전에서 3-7로 패하며 5연패 늪에 빠졌지만 김태연의 활약에 위안을 얻었다. 3번타자 우익수로 중심타선에 배치된 김태연은 1-5로 뒤진 7회말 무사 1루에서 추격의 투런 홈런을 터뜨렸다. KIA 우완 필승조 장현식의 6구째 몸쪽 높게 들어온 시속 149km 직구를 받아쳐 좌측 담장 밖으로 넘겼다. 비거리 120m. 3-5로 따라붙으면서 KIA 불펜을 추가로 이끌어냈다. 답답한 한화 팬들의 체증을 잠시나마 뚫어준 한 방이었다.
시즌 10호 홈런으로 김태연 개인적으로는 첫 두 자릿수 홈런이기도 했다. 지난 2017년 6월21일 대전 넥센전에서 순수 신인 타자 역대 최초로 데뷔 첫 타석 초구 홈런으로 강렬하게 등장한 김태연은 프로 8년 차에 10홈런 고지를 밟았다. 종전 개인 최다 홈런은 2022년 7개. 올해는 산술적으로는 16개까지 가능한 홈런 페이스다.
10홈런만큼 주목해야 할 기록이 3할 타율이다. 군복무를 마치고 후반기만 소화한 2021년 53경기에서 타율 3할1리(176타수 53안타)를 기록한 적이 있지만 규정타석은 아니었다. 올해는 지난달 27일부터 규정타석에 진입하며 3할 타율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김태연은 백업 멤버로 시즌을 시작했다. 내야수, 외야수에 1루수 미트까지 3가지 종류의 글러브를 챙겨 스프링캠프에 나서며 유틸리티로 준비했고, 4월 중순 채은성의 손가락 부상으로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채은성이 돌아온 뒤에도 김태연은 라인업에서 빠지지 않았다. 1루수(40경기 29선발 282⅓이닝), 우익수(25경기 24선발 191이닝), 2루수(6경기 6선발 30⅔이닝) 등 3개 포지션을 넘나들며 수비 위치는 자주 바뀌었지만 타선에선 붙박이로 자리잡아갔다.
19일까지 김태연의 시즌 전체 성적은 77경기 타율 3할2리(248타수 75안타) 10홈런 43타점 36득점 31볼넷 52삼진 출루율 .384 장타율 .484 OPS .868. 거의 모든 부문에서 커리어 하이 성적이다. 한화 팀 내 타율, OPS 그리고 wRC+(조정득점생산력·123.5)까지 외국인 타자 요나단 페라자 다음 가는 기록. 지난해 홈런왕 노시환, FA 채은성과 안치홍을 제치고 한화 국내 타자 중 최고 생산력을 보여주고 있다.
리그 전체로 봐도 김태연의 타격 생산력은 연봉 대비 최고 수준이라 할 만하다. 규정타석 3할 타율 타자 25명 중 연봉 1억 미만 선수는 김태연(7800만원)과 롯데 고승민(.302·8000만원) 2명뿐이다. OPS 부문에서도 전체 18위에 랭크돼 있는데 상위 25명 중 유일하게 연봉 1억 미만이다. 가성비 최고 성적을 내고 있는 것이다.
독한 마음을 먹고 준비한 만큼 빛을 보고 있다. 지난해 9월22일 대전 키움전에서 2루 도루를 하다 왼손 중지 중수골 골절로 시즌 아웃된 김태연은 재활을 하면서 올 시즌 준비에 일찌감치 들어갔다. 겨울에 결혼식을 올렸지만 신혼 여행도 가지 않고 팀 선배 최재훈과 함께 대전에서 훈련을 이어갔다. “여행은 나중에 가면 된다. 지금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야구부터 열심히 해야 한다”며 절박함을 드러냈다.
올해 도입된 ABS(자동투구판정시스템)도 김태연에겐 호재였다. 그는 “ABS가 일정하게 볼 판정을 하다 보니 나만의 존이 확실해졌다. 내가 칠 수 있는 공과 아닌 공을 나눠서 치다 보니 삼진도 줄었다”고 설명했다. 헛스윙률(9.3%)을 10% 미만으로 낮추며 삼진율(18.1%)도 커리어 최저로 떨어뜨려 질 높은 타석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2년간 시즌 초반에 헤매다 후반부터 서서히 살아나는 그래프를 그렸지만 올해는 시작부터 지금까지 큰 기복 없이 꾸준함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인 변화다. 기록으로나 존재감으로나 올 시즌만 놓고 보면 한화 최고의 토종 타자는 김태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