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감독은 20승 투수와 바꿀 수 있을까?
타이거즈 레전드 이종범을 '야구천재'로 칭하는 이유는 경기를 지배하는 능력이었다. 안타나 볼넷으로 출루하면 2루 도루는 기본옵션이고 3루까지 훔친다. 안타없이도 득점이 가능했다. 투수들이 워낙 강했던 시절이라 이종범의 득점은 곧 승리로 이어졌다. 찬스에서는 적시타나 홈런으로 승부의 물줄기를 가져온다. 도루가 아니더라도 상대의 허를 찌르는 주루 하나로 분위기를 확 바꾼다.
도무지 제어가 불가능한 공격수였다. 상대에게는 좌절을 안기고 팀에게는 승리를 가져왔다. 1993년, 1996년, 1997년 우승을 이끌었다. 1994시즌에는 3할9푼6리, 196안타, 84도루 등 만화같은 수치를 내놓았다. 그것도 126경기 체제였다. 그만큼 타이거즈 공격 전력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스승 김응용 감독이 "20승 투수를 주더라도 바꾸지 않겠다"고 말한 이유였다.
2024시즌 타이거즈에 비슷한 향기를 가진 김도영이 등장했다. 다만 부상을 우려해 무지막지하게 도루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주루능력은 비슷하다. 주루 하나로 승부의 물줄기를 가져온다. 지난 10일 LG와의 잠실 경기에서는 단타 하나에 1루에서 홈까지 질주해 동점을 만들고 역전의 발판을 놓았다. 원히트 투베이스는 당연한 일이다. 이종범처럼 빠르다. 일부에서는 더 빠른 것 같다는 평가도 나온다.
주루에 그치지 않는다. 빼어난 타격에서도 이종범의 향기가 난다. 지난 4월 KBO리그 최초로 월칸 10홈런-10도루 기록을 세웠다. 그의 홈런 러시는 팀을 선두로 등극시키는 결정적인 동력이었다. 에이스와 외국인투수, 마무리를 가리지 않고 대형홈런을 펑펑 터트리며 분위기를 띄워주었다. 동료들도 덩달아 소나기 안타를 터트렸다.
최근의 선두질주도 김도영의 타격이 많은 힘이 되고 있다. 지난 21일 대전 한화전에서 모처럼 선발명단에서 빠졌다. 휴식을 위해서였다. 5-0으로 앞서던 경기가 5-7로 뒤집혔다. 9회초 마지막 공격이 되자 이범호 감독은 김도영을 대타로 내세웠다. 상대는 리그 최강의 마무리 주현상이었다. 곧바로 3유간을 가르는 안타를 날렸다.
김도영이 출루하자 더그아웃이 활력이 생겼다 최원준은 볼넷을 골라내 무사 1,2루 동점찬스를 만들었다. 소크라테스가 범타로 물러났으나 최형우가 우월 스리런홈런을 날려 8-7로 역전했다. 최형우는 "김도영이 대타로 나가니까 다들 업이 된 것 같았다"며 공을 김도영의 출루로 돌렸다.
23일 광주 NC전에서는 김도영의 방망이로 7연승을 가져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회 무사 1,2루에서 유격수 내야안타로 출루해 3득점을 이끌었다. 5회는 1사후 좌중간에 타구를 보내고 빠른 발을 이용해 3루까지 진출했다. 팀이 2회, 3회, 4회 추가득점 기회를 계속 놓치자 발로 3루타를 만들어 승기를 가져오는 3득점의 발판을 놓았다. 이어 6-1로 앞선 가운데 6회는 좌월 투런포를 가동해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이종범의 선배이자 타이거즈 레전드 김정수 전 코치(김정수 피칭아카데미 원장)는 "타격이든 주루든 승부를 가져오는데 결정적인 몫을 하고 있다. 꼭 펄펄 날던 종범이를 보는 것 같다. 종범이가 잘할 때보다 더 어린거 같다"며 박수를 보냈다. 이종범은 대학 졸업후 프로에 진출해 천재로 발돋음했고 김도영은 이제 대학교 3학년의 나이이다.
이런 분위기는 이범호 감독이나 팀내 동료에게도 읽혀진다. 완투쇼를 펼친 양현종은 승리를 안겨준 김도영에게 특별한 마음을 보냈다. "올해 어린 선수들이 워낙 잘하고 있고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오늘은 도영이가 너무나 좋은 기록을 세웠다. 워낙 잘했고 팀에게 도움이 많이 됐다"며 박수를 보냈다.
이범호 감독도 경기후 "김도영이 역대급 활약을 펼치면서 팀 분위기를 잘 이끌어주었다. 4타석만에 사이클링히트를 달성했는데 정말 대단하다는 말 외에 어떤말이 필요하겠는가. 대기록 달성을 축하한다"며 박수를 보냈다. 수비력과 경기의 흐름을 읽는 능력도 보강하고 부상관리도 필요하지만 20승 투수와 바꾸지 않겠다는 말을 조만간 할 것 같은 기세이다. /sunn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