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번을 쓰려고 데려온 투수가 그 가운데 절반의 경기를 망쳤다. 남은 3경기서 모두 호투한다 해도 절반의 성공이며, 지금까지 3경기를 봤을 때 그럴 가능성 또한 희박해 보인다.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의 단기 외국인투수 시라카와 케이쇼는 지난 25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4 신한 SOL뱅크 KBO리그 키움 히어로즈와의 시즌 12차전에 선발 등판해 4⅔이닝 3피안타 5볼넷 2탈삼진 2실점 난조로 시즌 3패(2승)째를 당했다. 두산 이적 후 3경기 연속 조기 강판되며 총 6번의 기회 가운데 절반을 날렸다.
인기 아이돌 윈터의 시구로 인해 1만9000명이 넘는 관중이 들어찬 잠실구장. 그러나 3회까지 이를 의식하지 않고 완벽에 가까운 투구를 펼쳤다. 2회초와 3회초 모두 삼자범퇴였고, 3회초까지 출루 허용은 1회초 선두타자 이주형의 볼넷이 전부였다.
시라카와는 0-0으로 맞선 4회초 첫 실점했다. 선두타자 이주형 상대 중전안타를 맞은 뒤 폭투에 이어 풀카운트 끝 로니 도슨을 볼넷 출루시켰다. 이어 송성문을 만나 1타점 우전 적시타를 헌납했다.
그러나 이전과 달리 위기에서 관리능력을 선보였다. 후속타자 김혜성을 8구 승부 끝 좌익수 뜬공으로 잡아낸 뒤 고영우를 유격수 병살타 처리, 추가 실점 없이 이닝을 끝냈다.
0-1로 뒤진 5회초 시라카와의 ‘관중 울렁증’이 재발했다. 선두타자 김웅빈의 안타와 김재현의 희생번트로 1사 2루 득점권 위기에 처한 상황. 이어 이재상을 3루수 뜬공 처리하며 한숨을 돌렸지만, 이용규, 이주형을 연달아 볼넷으로 내보내 만루 위기를 자초했고, 도슨 상대 밀어내기 볼넷을 허용했다.
시라카와는 결국 0-2로 뒤진 5회초 2사 만루에서 김명신과 교체되며 아쉽게 경기를 마쳤다. 투구수는 82개. 김명신이 송성문을 범타로 막아내며 승계주자 3명이 모두 지워졌지만, 이미 2점을 내준 뒤였다.
시라카와는 지난 10일 어깨를 다쳐 이탈한 브랜든 와델을 대신해 두산과 총액 400만 엔(약 3400만 원)에 단기 대체 외국인선수 계약을 체결했다.
일본 독립리그 에이스 출신인 시라카와는 지난 5월 SSG 랜더스의 단기 대체 외국인선수로 KBO리그에 입성해 5경기 2승 2패 평균자책점 5.09로 경쟁력을 입증했다. 잠시 시행착오를 겪었던 7일 사직 롯데 자이언츠전(1⅓이닝 8실점 7자책)을 제외하면 평균자책점이 2점대였다. 또한 인성, 동료들과의 융화, 야구를 대하는 태도 또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시라카와는 SSG와 6주 계약이 만료된 뒤 때마침 단기 외인 구인에 나선 두산의 영입 제의를 받으며 한국 생활을 6주 연장했다. 연봉도 SSG 시절 180만 엔(약 1620만 원)에서 두 배가 넘게 뛰었다. 이승엽 감독은 “아마 최대 6회 정도 마운드에 오를 거 같다. 그 기간 동안 브랜든의 빈자리를 잘 메워주길 바란다. SSG에서 이미 리그 적응을 마쳤기 때문에 기대가 된다”라고 말했다.
6경기 가운데 어느덧 3경기를 소화한 시라카와. SSG 시절의 안정감 있는 투구는 언감생심이다. 데뷔전이었던 13일 잠실 삼성 라이온즈전부터 전날 경기까지 3경기에서 승리 없이 1패 평균자책점 7.15(11⅓이닝 9자책)의 부진을 겪었다. 13일 삼성전 3⅔이닝 4실점(2자책), 19일 잠실 LG 트윈스전 3이닝 5실점, 전날 4⅔이닝 2실점으로 모두 5회 이전에 교체됐고, 제구력이 강점이라는 평가와 달리 이 기간 무려 15사사구를 헌납했다.
프로 무대가 처음인 시라카와는 관중이 많은 경기에서 유독 흔들리는 경향을 보였다. SSG 시절이었던 6월 7일 2만678명이 들어찬 사직구장에서 롯데 상대로 1⅓이닝 8실점(7자책) 최악투로 고개를 숙였고, 7월 13일 삼성전과 19일 LG전 역시 잠실구장 2만3750석이 매진됐다. 2만 명 이상이 입장한 3경기 시라카와의 평균자책점은 15.75(8이닝 14자책)에 달한다.
시라카와의 3경기 퍼포먼스가 유독 아쉬운 이유는 그가 그냥 외인이 아닌 단기 외인 신분이기 때문이다. 6주 만에 두산 필승조 최지강의 연봉을 수령한 상황에서 적어도 6번 가운데 4번은 제 역할을 해줘야하는데 이미 절반을 망쳤다. 이럴 거였으면 차라리 팀 내 젊은 투수를 5선발로 기용해 육성을 하는 게 나았을 지도 모른다. 더불어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7월 시라카와의 3경기 연속 조기 강판은 불펜 과부하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이미 3경기가 지났고, 앞으로 최대 3경기가 남아 있다. 브랜든이 예상보다 빠르게 돌아오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시라카와가 3경기에서 어떻게든 6주 3400만 원의 가치를 입증해야 한다. 두산은 치열한 순위 싸움에 휘말려 있고, 전반기 내내 선발진이 부상과 부진으로 불펜진이 지칠 대로 지쳐 있다.
다만 다음 경기 전망도 그리 밝진 않다. 비가 안 온다는 가정 아래 시라카와의 4번째 등판은 오는 31일 광주 KIA 타이거즈전이 될 전망. 압도적 선두를 질주 중인 호랑이 군단을 상대로 3전4기 끝 첫 승을 거둘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KIA 상대로는 SSG 시절이었던 6월 13일 인천에서 5이닝 1실점으로 승리를 거둔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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