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뉴 트레일블레이저’ vs ‘트랙스 크로스오버’, 이유 있는 심야 쟁론기 
OSEN 강희수 기자
발행 2024.07.29 09: 12

주말의 분주했던 움직임이 점차 둔해지고, 주위가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수도권의 한적한 전원주택에 살면서 서울로 출퇴근 하는 K씨의 차고에서 은백색 불빛이 새어나온다. 
날카로운 눈매를 번뜩이며 볼멘 소리를 내는 주인공은 쉐보레 ‘더 뉴 트레일블레이저’다. 옆 자리에서 곤히 잠든 신참을 신경질적으로 깨운다. 
“이 봐 신참, 자는 척 하기야?” 요즘 들어 차주 K씨가 부쩍 신참을 찾는 횟수가 잦아졌다. 허구한 날 자신을 끼고 돌던 K씨가 요즘은 도시 나들이를 갈 때면 아예 전용차처럼 신참에 몸을 맡긴다.  

쉐보레 트랙스 크로스오버(왼쪽)와 더 뉴 트레일블레이저.

트랙스 크로스오버.
신참이 이 집을 처음 찾았을 때부터 잘 빠진 실루엣이 마음에 걸리긴 했다. 그래도 주인 K씨가 하루 아침에 변심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참을 만큼 참았다. 오늘은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다. 
‘더 뉴 트레일블레이저’의 목소리에 짜증이 더해졌다. 이제는 바퀴를 툭툭 치기까지 한다. 
먼지 한 톨 묻는 것도 용납치 못하는 깔끔한 성격의 신참이 그제야 눈을 배시시 뜬다. 평소 ‘미녀는 잠꾸러기’라는 화장품 광고 카피를 생활의 신조로 삼는 녀석인지라 밤 잠을 깨우는 행위는 역린을 건드리는 도발이다.  
짜증이 턱 밑까지 치솟아 올랐지만 그래도 상대가 K씨의 차고를 먼저 차지한 선참인 지라 목소리를 꾹 누른 채 대답했다. “이 밤에 왜 그러세요? 내일 아침에 주인님 출근시켜 드리려면 지금도 잠이 모자라요.” 내일 출근길 수발을 운운하는 신참은 ‘트랙스 크로스오버’다. 
더 뉴 트레일블레이저.
주말 사이 차주 K씨는 ‘더 뉴 트레일블레이저’와 함께 지냈다. 잠이 모자란다고? 이틀 내내 차고에서 편히 쉬었던 신참이 댈 핑계를 아니었다. 
게다가 ‘더 뉴 트레일블레이저’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K씨가 산으로 들로 어찌나 험하게 몰아붙였던지 온 몸이 먼지 투성이다. 물 구덩이도 괘념치 않고 철퍼덕철퍼덕 지나다닌 통에 네 바퀴에는 진흙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트랙스 크로스오버의 잠 핑계에 거의 욕이 나올뻔했다. 
몇 달 전이었다.
차주 K씨는 ‘더 뉴 트레일블레이저’에게 다정하게 말했다. “네가 혼자 고생하는 게 안쓰러워 동생 하나를 구해다주마.”
K씨의 달콤한 말에 ‘더 뉴 트레일블레이저’는 기대가 컸다. 그런데 웬걸. 새로 들어온 녀석은 산길 고생을 나눠하기는 커녕, 네온사인 번쩍이는 도회지로만 쏘다닌다. 되레 산길 들길은 ‘더 뉴 트레일블레이저’의 전담이 되다시피 했다.
K씨는 분명 저 녀석을 데려올 때 ‘형제’라고 했다. 형제라면 분명 같은 부모 밑에서 나왔다는 얘긴데, 질투가 날 정도로 말쑥하게 생긴 녀석이 K씨의 손에 이끌려 차고로 들어오는 게 아닌가? 엥? 쟤가 내 형제라고? 
쉐보레 트랙스 크로스오버.
돌이켜보면 그 때부터 녀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날을 기다렸다. 오늘은 꼭 담판을 짓고 말리라. 
“이봐 트랙스 크로스오버라고 했나? 넌 도대체 무슨 애교를 얼마나 부리길래 주인님이 서울 나들이를 갈 때마다 너만 찾게 만드는 거야? 응?”
트랙스 크로스오버는 “그걸 꼭 대답을 해야 아나? 보는 눈이 있으면 바로 답을 알 거 아냐?”라고 쏘아붙이고 싶었다. 그러나 이 말을 그대로 내뱉았다가는 큰 싸움이 날 게 뻔했다. 
“아이, 왜 그래 형? 그 동안 바빠서 인사도 제대로 못했네. 내가 이제부터 형이라 부를게. 그만 화 푸셔. 응? 오늘 고생 많았던 거 다 알아. 내가 내일 주인님께 말해서 세차 깨끗이 해 달라고 할게.”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말은 진리였다. 콧바람이 느껴질 정도로 씩씩거리던 ‘더 뉴 트레일블레이저’의 호흡이 눈에 띄게 누그러졌다.
때를 놓칠세라, ‘조선 제일 혀’ 트랙스 크로스오버의 현란한 공세가 틈을 주지 않았다. 
“사실 말이야, 나 그 동안 형의 산길, 들길 마다 않는 공력을 내심 부러워하고 있었어. 내가 클럽 좀 다니게는 생겼지만, 산길 들길만 만나면 기가 죽는 게 사실이거든.”
‘조선 제일 혀’의 내공은 명불허전이었다. ‘더 뉴 트레일블레이저’의 분노가 봄 볕에 눈 녹듯 했다. ‘트랙스 크로스오버’의 말이 공치사라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들지 않았다. 
쉐보레 트레일 블레이저.
“형, 누가 봐도 우리 덩치가 크지는 않잖아. 그런데 다른 집안의 우리 또래 차들을 봐봐. 어떤 애들도 형 만한 능력을 가진 녀석이 없어. 우리 또래에 사륜구동을 술술 읊어대는 수재가 누가 있다고? 게다가 형의 변속기는 무려 구단이나 되잖아? 흔히 하는 말 있잖아, 정치 구단이니 외교 구단이니 하는 말. 더 이상 오를 경지가 없는 사람들한테 붙이는 말인 거 알지?”
‘트랙스 크로스오버’의 칭찬이 빈말은 아니었다.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더 뉴 트레일블레이저’는 GM의 최신 E-Turbo 엔진을 탑재해 최고출력 156마력, 최대토크 24.1kg·m를 발휘한다. 2리터 자연흡기 엔진을 능가하는 출력과 토크다. 
이쯤 되니 화를 낸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진다. 
“어허 험.” 헛기침을 몇 번 한 ‘더 뉴 트레일블레이저’는 “뭐 듣고 보니까, 그렇긴 하네. 따지고 보면 아우도 자랑스럽기는 매한가지지. 내가 샘이 날 정도로 훌륭한 몸매를 갖고 있잖아? 아랫 동네, 윗 동네 친구들이 너 소개 시켜달라는 얘기를 한두 번 한 게 아냐. 속으로는 네가 내 동생인 게 자랑스러웠다구. 하하.”
트레일블레이저와 트랙스 크로스오버.
“맞아 형, 그리고 우리는 ‘온스타 서비스’도 시작했잖아? 모바일 앱에서 버튼만 누르면 시동을 켤 수도 있고, 스마트키 없이도 차문을 열거나 잠글 수 있지. 글로벌에서 560만 명 유료 회원을 보유한 서비스를 마침내 우리도 실시한다는 게 여간 자랑스럽지 않아.” 트랙스 크로스오버도 맞장구를 쳤다.
‘더 뉴 트레일블레이저’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렇지. 사실 우리가 같은 플랫폼에서 태어난 건 맞잖아? 그런데도 이렇게 감쪽같이 다른 성격을 띤 걸 보면, GM의 차세대 플랫폼이 대단하긴 해. 내가 아우의 늘씬한 실루엣만 칭찬했지만 내실도 만만치 않잖아? 콤팩트한 사이즈의 신형 1.2리터 E-Turbo엔진은 최고출력 139마력, 최대 토크 22.4kg·m의 동력성능을 내지. 그 뿐이야? 고강성 경량 차체 덕에 도심주행부터 고속주행까지 모든 영역에서 경쾌하게 내달릴 수 있어. 정말 팔방미인이야.” 
둘의 수다는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이어지다가 새벽녘에야 잠잠해졌다. 월요일 아침, 날이 밝자 ‘트랙스 크로스오버’는 출근길을 나서는 차주 K씨에게 “오늘 저녁에는 세차장에 가야겠어요”라며 한쪽 눈을 찡긋했다. /100c@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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