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글러브 수상자가 상무야구단에 입대한다. 흔치 않은 케이스의 주인공은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내야수 정은원(24)이다.
국군체육부대는 지난 1일 상무 야구단 최종 합격자를 개별 통보했다. LG 투수 강효종, KT 투수 김영현, 외야수 정준영, SSG 내야수 전의산, NC 투수 송명기, 이용준, 두산 투수 김동주, 롯데 투수 김진욱, 내야수 정대선, 삼성 외야수 김현준, 한화 투수 한승주, 내야수 정은원, 키움 투수 김동혁, 포수 김시앙 등 모두 14명이다. 이들은 오는 12월2일 입대한 뒤 1년6개월간 병역 의무를 수행하면서 야구를 한다.
이 중 가장 눈에 띄는 이름은 정은원이다. 무려 골든글러브 수상자다. 상무에 골든글러브 수상자가 입대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20대 초중반 젊은 선수들이 주로 입대하는 상무는 1군에 자리잡기 전 유망주들이 주를 이룬다. 어린 나이에 1군에서 골든글러브를 받을 정도로 주축이 된 선수들은 대개 국제대회에서 병역 혜택을 받곤 한다. 정은원에게도 몇 차례 태극마크 도전의 기회가 있었지만 인연이 닿지 않았다.
정은원에게 최고 시즌은 2021년이었다. 139경기 타율 2할8푼3리(495타수 140안타) 6홈런 39타점 85득점 105볼넷 105삼진 19도루 출루율 .407 장타율 .384 OPS .791로 활약했다. 역대 최연소(21세) 100볼넷 시즌을 보내며 극강의 선구안을 과시했고, 순수 한화 선수로는 첫 2루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그러나 2022년부터 수비가 흔들리며 타격 지표도 떨어졌고, 지난해 후반기부터 주전 2루수 자리를 문현빈에게 내줬다. 당초 지난해 시즌을 마친 뒤 상무 입대 지원을 고려했지만 1년 더 뛰고 가기로 마음을 바꿨다. 일본 미야자키 마무리캠프 때부터 2루만 고집하지 않고 외야 수비 연습을 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문현빈에 FA로 안치홍까지 오면서 한화 2루는 더 이상 정은원의 자리가 아니었다. 스프링캠프를 통해 좌익수로 안착하면서 올해 개막전을 맞이했지만 타격이 올라오지 않아 9경기 만에 2군으로 내려갔다. 이후 18일 만에 다시 1군의 콜업을 받은 정은원은 5월3일 광주 KIA전에서 시즌 첫 홈런 손맛도 봤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이전처럼 기회가 무한정 보장되지 않았고, 타격감을 잡는 데 애를 먹었다. 올해 1군 성적은 27경기 타율 1할7푼2리(64타수 11안타) 1홈런 6타점 13볼넷 16삼진 OPS .609. 선구안은 살아있지만 컨택이 회복되지 않았다. 지난 5월20일 2군으로 내려간 뒤 두 달 반의 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아직 1군의 부름이 없다. 2군 퓨처스리그에선 더 이상 보여줄 게 없는 수준이다. 퓨처스리그 39경기 타율 3할8리(120타수 37안타) 3홈런 21타점 30볼넷 10삼진 출루율 .451 장타율 .442 OPS .893을 기록 중이다.
그러나 2군에서 원래 포지션인 2루수로 뛰다 보니 1군에 자리가 마땅치 않다. 올해 한화 2루는 문현빈이 주전으로 시작했지만 성장통을 겪자 신인 황영묵이 5월 중순부터 들어가 공수에서 기대 이상 활약을 펼쳤다. 김경문 감독이 부임한 후에는 안치홍의 2루 출장 비중 늘었다. 황영묵의 체력이 떨어진 뒤 최근 7경기에서 안치홍이 선발 2루수로 나서고 있다.
2루수만 안치홍, 황영묵, 문현빈 3명이나 된다. 안치홍과 황영묵이 2루를 번갈아 맡다 보니 문현빈도 출장 기회를 자주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팀 구성상 2루수 정은원을 1군에 콜업하기 어려운 상황. 최근 6연승으로 김경문 감독 부임 후 최고 상승세를 타면서 타선도 제대로 불붙었다. 6연승 기간 평균 9.3득점을 폭발하고 있다. 9월 이후 확대 엔트리를 노려야 할 상황이지만 시즌 중 부임한 김경문 감독은 당장 성적만큼 내년 시즌 밑그림도 그리고 있다. 내년에 없을 정은원은 우선 순위에서 밀릴 가능성이 높다.
정은원으로선 여러모로 답답한 상황이다. 지난해부터 시련의 시간이 계속되고 있지만 포기해선 안 된다. 입대를 1년 미루며 승부를 걸었던 올해 결과가 아쉽긴 하지만 아직 나이가 24세밖에 되지 않았다. 군대를 다녀온 뒤에도 26세로 한창 나이다. 상무에서 야구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무나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아니다.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다.
정은원에 앞서 골든글러브를 받고 상무에 입대한 선수가 있다. 손시헌 SSG 퓨처스 감독이 그랬다. 2005년 두산에서 유격수 골든글러브를 받았던 손시헌은 2006년 좋은 활약에도 불구하고 도하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붙지 못해 시즌 후 상무에 입대했다. 입대 당시 26세. 그때는 지금보다 복무 기간도 더 길었고, 2시즌을 통째로 날렸지만 2009년 복귀하자마자 바로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건재를 알렸다. 이후 꾸준한 활약으로 NC에 이적하며 FA 대박을 쳤고, 2019년 39세까지 롱런하며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냈다.
지금은 시련의 시간이지만 정은원의 야구 인생에는 많은 시간이 남아있다.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미래가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