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메이저리그 최고 투수로 군림한 클레이튼 커쇼(36·LA 다저스)에게도 이런 날이 다 있다. 삼진을 단 하나도 못 잡고 끝났다. 스스로도 “녹이 슬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할 만큼 세월의 무게를 느끼는 모습이다.
커쇼는 지난 1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펫코파크에서 열린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원정경기에 선발등판, 3⅔이닝 6피안타(1피홈런) 1볼넷 7실점(3자책)으로 무너졌다. 다저스의 1-8 패배와 함께 커쇼는 시즌 첫 패를 안았다. 평균자책점은 5.87.
1회 수비 실책이 있었지만 나머지 3타자를 아웃 처리한 커쇼는 그러나 2회 4실점 빅이닝을 허용했다. 1사 후 잭슨 메릴에게 중전 안타, 김하성에게 볼넷, 루이스 캄푸사노에게 중전 적시타를 맞아 첫 실점하더니 브라이언 존슨의 투수 앞 번트 타구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추가 실점을 내줬다. 커쇼의 포구 실책.
실책 직후 폭투까지 나오면서 이어진 1사 2,3루에서 커쇼는 루이스 아라에즈의 1루 땅볼, 주릭슨 프로파의 우전 적시타로 추가 2실점했다. 3회는 삼자범퇴로 막았지만 4회 캄푸사노에게 좌월 솔로 홈런을 맞은 뒤 안타 2개와 수비 실책, 희생플라이로 2점을 더 내줬다. 결국 4회 이닝을 마치지 못하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총 투구수 83개로 최고 시속 92.4마일(148.7km), 평균 89.6마일(144.2km) 포심 패스트볼(34개) 외에 슬라이더(34개), 커브(10개), 체인지업(5개)을 구사했다. 포심 패스트볼의 구위가 약했고, 주무기 슬라이더도 공략당하면서 경기 내내 쩔쩔맸다. 헛스윙이 단 2번밖에 없을 정도로 샌디에이고 타자들을 유인하거나 압도하지 못했다.
가장 충격적인 건 탈삼진이 1개도 없었다는 점이다. MLB.com에 따르면 커쇼는 포스트시즌을 제외하고 정규시즌에서 통산 423번의 선발 경기 모두 삼진을 1개 이상 잡으며 이 부문 메이저리그 역대 최장 기록을 갖고 있었는데 이날 연속 기록이 끊겼다. 구원으로 나선 경기를 포함해도 신인 시절인 2008년 9월29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전(1이닝) 이후 처음으로 탈삼진 없는 경기였다.
경기 후 커쇼는 “실투가 많은 경기였다. 지난 경기는 전반적으로 괜찮았는데 이번 경기는 정말 안 좋았다. 내가 원하는 곳으로 던지지 못했다”며 “내가 녹슬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럴지도 모른다. 모르겠다. 더 잘 던져야 한다”고 답답한 속내를 드러냈다.
2회 번트 타구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것에 대해 커쇼는 “거기서 바로 홈에 던졌으면 쉽게 아웃 잡을 수 있었다. 그랬다면 이닝이 완전히 달라졌을 텐데 내 책임이다. 정말 실망스러운 실수였다”고 자책했다. 헛스윙 유도가 2번밖에 되지 않은 것과 관련해 “샌디에이고 타자들에게 공을 돌린다. 그들이 잘했지만 그 중 일부는 내 책임이기도 하다”고 거듭 아쉬움을 나타냈다.
데이브 로버츠 다저스 감독은 “커쇼의 지난번 등판은 아주 좋았지만 오늘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과정의 일부다. 그가 부상에서 돌아와 2경기 만에 매번 빛을 발할 거라고 기대할 순 없다”며 복귀 후 2경기째라는 점을 강조했다.
커쇼는 지난해 11월 왼쪽 어깨 관절와상완 인대와 관절낭을 복구하는 수술을 받고 8개월 재활을 거쳐 지난달 26일 샌프란시스코전에 복귀했다. 복귀전에선 4이닝 6피안타 2볼넷 6탈삼진 2실점으로 크게 나쁘진 않았지만 인상적이지 않은 투구였다. 그로부터 5일 쉬고 나선 샌디에이고전 부진으로 커쇼의 부활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이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