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폭염 취소 한 번 됐으면 좋겠는데…”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 이범호 감독은 지난 2일 대전 한화전을 앞두고 울산 LG-롯데전이 폭염으로 취소됐다는 소식을 듣곤 이렇게 말했다. 부러움이 섞인 한마디였다.
14일 연속 폭염 특보가 내려진 울산 지역은 이날도 기온이 33도에 달했고, 문수야구장은 인조잔디로 돼 있어 지열이 무려 50도에 육박했다. KBO리그 규정 27조에 따르면 하루 최고 기온이 섭씨 35도 이상인 상태가 2일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에는 경기를 취소할 수 있는 규정이 있다. 그동안 낮에 열리는 퓨처스리그 경기에선 폭염 취소가 드물게 있었지만 1군 경기는 처음이었다.
장마가 끝난 뒤 전국적으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날 KIA-한화전이 열린 대전도 기온 30.7도, 습도 81%로 숨이 턱턱 막히는 날씨라 폭염 취소를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이범호 감독은 “여기도 덥고, 지금 어느 구장이든 다 덥다. 울산은 인조잔디이기도 하고, 거기만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며 “우리도 폭염 취소 한 번 됐으면 좋겠다. 자주 오던 비도 이번 장마에는 다 피해갔다. 경기를 많이 하면서 선수들이 지친 상황이다. 폭염 취소됐다고 하니 우리도 하루 취소되길 바라는 마음이 든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KIA는 지난 2일까지 총 104경기로 두산(107경기) 다음 많은 일정을 소화했다. 지난달 16일 광주 삼성전이 우천으로 인한 그라운드 사정으로 취소된 뒤 15경기 연속으로 정상 일정을 소화했다. 이 기간 10개 구단 중 유일하게 취소 경기가 한 번도 없었다. 가장 더운 시기에 쉼없이 뛰었다.
그 사이 2위 LG는 무려 6번의 취소로 재충전 시간을 가졌다. 이범호 감독과 KIA 선수들이 폭염 취소를 부러워할 만한 이유가 납득된다.
KIA는 2일 한화전도 3-10 완패를 당하며 4연패에 빠졌다. 지난 5월21일 사직 롯데전부터 24일 광주 두산전까지 당한 4연패에 이어 시즌 두 번째 4연패. 최근 8경기 1승7패로 하락세가 뚜렷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위 LG에 4.5경기 차이로 비교적 넉넉한 1위를 달릴 정도로 아직은 여유가 있다. 그동안 벌어놓은 승수가 많다.
그만큼 KIA는 쉴 새 없이 달리며 승수를 쌓아왔다.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1위 자리를 계속 버티고 있는 것도 용하다. 시즌 내내 부상자가 끊이지 않아 베스트 전력을 가동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로 지금까지 왔다.
투수 쪽에선 선발 윌 크로우, 이의리, 윤영철, 마무리 정해영이 부상으로 이탈했다. 크로우와 이의리는 토미 존 수술로 시즌 아웃됐고, 임기영도 시즌 초반 두 달 공백기가 있었다. 야수 쪽에서도 나성범이 개막 한 달이 지난 뒤 합류했고, 4월 박찬호와 6월 김선빈이 엔트리에 한 번씩 빠졌다. 이우성도 6월말부터 이탈한 뒤 공백기가 한 달 이상으로 길어지는 중이다.
시즌 초반부터 선수들의 체력 과부하를 경계해온 이범호 감독이라 할지라도 제대로 된 관리는 어려웠다. 이기는 경기가 많다 보니 불펜 소모는 필연적이었다. 야수진도 전경기 출장 중인 소크라테스 브리토(104경기)를 비롯해 김도영(102경기), 최원준(100경기), 최형우(97경기), 박찬호(96경기)가 90경기 이상 소화했다. 체력적으로 지치고, 경기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시기다.
이범호 감독은 “여름이고, 체력적으로 많이 소진된 상태라 선수들이 베스트 플레이를 보여주기 어려운 상황이다. 비가 와서 쉰 경기도 없고, 선수들이 많이 지쳐있다. 점수를 많이 준 경기에서 야수들의 움직임이 많다 보니 체력이 더 소진됐을 것이다”면서 “(8월) 20일 정도 되면 날씨도 조금씩 풀리는 시기가 올 것이다. 그때까지 체력, 컨디션 관리를 잘해주면서 경기를 풀어나가야 할 것 같다. (뒤지고 있더라도) 선발투수 투구수를 지켜나가는 식으로 상황에 맞게 운영할 생각이다”며 적절한 선택과 집중을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