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구장은 내가 고교 때 예선 대회부터…”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김경문(66) 감독은 지난 3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홈경기를 앞두고 옛 추억에 잠시 젖었다. KBO리그 역대 단일 시즌 최다 홈경기 매진(38회) 기록을 세운 대전 팬들의 한곁같은 성원에 감사한 마음을 표하면서 “이 구장은 내가 고교(공주고) 때 예선 대회부터 와서 경기를 많이 뛰었던 곳이다. (1982~1984년) OB 시절에도 여기 있었다”고 떠올렸다.
김경문 감독이 고교생 시절부터 선수로 누볐던 야구장이니 참으로 오래됐다. 지난 2015년부터 구장 네이밍 스폰서를 통해 한화생명이글스파크로 불리고 있지만 원래 명칭은 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으로 지난 1964년 1월 개장했다. 올해로 61년째를 맞이한 야구장으로 KBO리그 경기가 열리는 전국 야구장 중 연식이 가장 오래 됐다.
2012년부터 관중석을 3층으로 증축하며 전광판을 하나 더 추가했고, 외야 펜스를 뒤로 미루면서 인조잔디를 천연잔디로 바꾸는 등 수차례 투자로 리모델링 및 개보수를 하며 꾸준히 관리했지만 날이 갈수록 세월의 흔적을 감출 순 없었다.
지난해부터 노후화 현상이 뚜렷했다. 지난해 8월1일 두산 베어스전에선 1회초부터 전광판이 멈췄다. 구장 내 시설 곳곳에 불이 꺼지면서 내부 전력 설비가 작동하지 않았다. 폭염으로 인한 정전으로 TV 중계 방송 송출도 끊겼다. 당시 오후 6시32분부터 37분까지 5분간 정전이 됐지만 조명탑이 꺼지지 않아 경기는 정상 진행됐다. 다만 전광판에 볼카운트 표기가 되지 않아 선수들과 관중들이 짧게나마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그로부터 1년의 세월이 흘러 또 야구장이 정전됐다. 지난 3일 KIA전. 한화가 2회말 최재훈의 스리런 홈런으로 기선 제압하며 이어진 2사 주자 없는 상황. 한화 1번 타자 요나단 페라자 타석을 앞두고 갑자기 구장 조명탑과 전광판이 꺼지고, ABS 시스템은 먹통이 됐다. TV 중계 방송도 송출이 되지 않으면서 깜깜이 상태가 되자 그라운드에 있던 선수들이 얼어붙었다.
심판진이 오후 6시33분 경기 중단을 선언했고, 선수들은 덕아웃으로 철수했다. 텅 빈 그라운드에 1만2000명 만원 관중이 들어찬 스탠드도 크게 술렁였다. 한화 구단은 “폭염으로 인한 전력 사용량 급증으로 전기설비가 부하를 감당하지 못했다. 오후 6시33분부터 37분까지 4분간 정전이 됐다”고 설명했다.
정전된 시간은 4분이었지만 전기를 다시 공급하며 조명탑과 전광판 작동을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오후 6시33분 중단된 경기는 7시11분 재개됐다. 38분간 보기 드문 정전 중단이었다.
공교롭게도 정전 이후로 경기 흐름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정전되기 전까지 한화는 KIA 유격수 박찬호의 송구 실책으로 이어간 1사 2,3루 찬스에서 최재훈의 스리런 홈런이 터지며 3-0 리드를 잡았다. 다음 타자 이원석이 유격수 땅볼로 아웃됐지만 1번 타자 페라자 타석으로 상승 흐름을 이어갈 수 있었다. KIA 선발 양현종도 실책 이후 홈런을 맞고 흔들리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정전으로 흐름이 끊겼고, 38분 쉬고 다시 마운드에 오른 양현종은 페라자를 헛스윙 삼진 잡았다. 곧 이어진 3회초 공격에서 KIA는 박찬호의 좌전 안타에 이어 김도영의 좌측 1타점 2루타로 첫 득점을 내면서 추격을 알렸다. 5회초에도 박찬호의 우중간 2루타, 최원준의 좌전 적시타로 1점을 추가하더니 김도영의 우측 담장 넘어가는 투런 홈런으로 역전에 성공했다. 한 번 넘어온 흐름을 놓치지 않고 쭉 밀어붙인 KIA가 7-3으로 승리하며 4연패를 끊었다.
경기 후 이범호 KIA 감독은 “경기가 도중에 중단돼 흐름이 한 차례 끊기긴 했지만 양현종이 끝까지 6이닝을 책임져주며 경기를 풀어나가는 데 도움이 됐다”며 수훈 선수로 양현종을 가장 먼저 꼽았다. 경기 리듬 측면에선 2회말 투구 중 멈췄다가 다시 던진 양현종이 38분의 대기로 인해 더 어려웠다. 양현종도 “정전이 경기 흐름에는 큰 영향이 없었던 것 같다. (김)도영이 홈런으로 분위기가 많이 올라왔다”고 말했다.
그동안 7연승을 달렸으니 한화로선 한 번 질 타이밍이 되긴 했다. 하지만 야구는 흐름의 스포츠라고 한다. 7연승으로 기세가 바짝 오른 상황에서 상대 에이스에게 3점을 선취한 이닝에 38분 중단은 찬물을 끼얹는 느낌이 없지 않았다. 결승 홈런 포함 3안타 3타점으로 역전승을 이끈 김도영은 “(KIA에 안 좋은) 분위기를 끊어갈 수 있어서 정전 상황을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오늘만큼은 이기고 싶어 (노게임되지 않고) 경기를 계속 하고 싶었다”고 상황을 돌아봤다.
꼭 정전 때문은 아니겠지만 한화의 7연승은 그렇게 한순간 전기가끊기듯 끝났다. 올 시즌 끝으로 1군 구장으로서 수명을 다하는 한화생명이글스파크도 이제 끝이 보인다. 내년에는 바로 옆에 지어지고 있는 신구장 베이스볼 드림파크(가칭)가 마침내 문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