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얼마나 무서운 타자길래 2회에 주자가 없는데 고의4구로 피했을까. 천하의 오타니 쇼헤이(30·LA 다저스)도, 전성기 그렇게 무서웠던 배리 본즈도 이런 경우는 없었다. 2년 만에 또 60홈런을 향해 나아가는 애런 저지(32·뉴욕 양키스)가 그 주인공이다.
저지는 지난 4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뉴욕주 브롱스 양키스타디움에서 치러진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홈경기에 3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장, 시즌 41호 홈런 포함 3타수 2안타 2타점 2득점 2볼넷으로 4출루 경기를 펼치며 양키스의 8-3 승리를 이끌었다.
1회 첫 타석부터 저지의 배트가 무섭게 돌았다. 1사 1루에서 토론토 우완 선발 호세 베리오스의 2구째 몸쪽에 들어온 시속 94.2마일(151.6km) 싱커를 받아쳐 좌중간 담장을 넘겼다. 시속 102.5마일(165.0km) 속도로 날아간 비거리 426피트(129.8m) 투런포. 발사각은 31도 측정됐다.
그 전날(3일) 토론토전에 이어 2경기 연속 홈런으로 시즌 41호포. 이 부문 아메리칸리그(AL) 부동의 1위로 양대리그 통틀어서도 압도적이다. 내셔널리그(NL) 홈런 1위 오타니(33개)보다 8개나 더 많이 쳤다.
저지의 홈런은 이제 놀라운 일이 아니다. 진짜 놀라운 장면은 그 다음 타석에 있었다. 양키스가 4-1로 앞선 2회 2사 주자 없는 상황. 저지가 타석에 나오자 토론토 벤치에서 자동 고의4구 사인이 나왔다.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고의4구도 희귀한 일인데 2회 경기 초반이라는 점에서 더욱 파격적이었다. 다음 타자 오스틴 웰스에게 안타를 허용한 베리오스는 글레이버 토레스를 헛스윙 삼진 잡고 이닝을 실점 없이 마무리했다.
‘MLB.com’에 따르면 1~2회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고의4구가 나온 것은 무려 52년 만이었다. 지난 1972년 8월11일 캘리포니아 에인절스가 2회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미네소타 트윈스 타자 글렌 보그먼을 고의4구로 1루에 보낸 이후 처음이다. 당시에는 AL 지명타자 도입 전으로 에인절스는 보그먼 다음 타자인 투수 레이 코빈 상대를 위해 고의4구를 한 것이었다.
엄청난 대우를 받은 저지는 “경기 초반이었고, (3점차로) 꽤 접전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투아웃이라 다음 타자를 잡기 위해 그렇게 한 것 같다”며 “다신 이런 상황이 나오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타격할 기회를 얻지 못한 게 아쉬웠던 모양이다.
고의4구 사인을 낸 존 슈나이더 토론토 감독은 “솔직히 저지의 스윙을 보고 싶지 않다. 그를 정말 조심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잘하려다 보면 실투가 나올 수 있다. 리그에서 다른 범주에 속하는 선수다. 한 번의 스윙으로 경기 판도를 뒤집을 수 있는 선수”라고 경외심을 나타냈다.
이날 양키스 선발투수 카를로스 로돈은 이 장면에 대해 “놀랍지 않다. 저지는 이 게임 최고의 타자다. 팬 입장에서 저지가 나오면 홈런을 치거나 볼넷을 얻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항상 타석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쉽게 따라가지 않고, 상대에 대미지를 입힌다. 보는 재미가 있다. 매 타석마다 꼭 봐야 할 선수”라고 말했다.
이날까지 저지는 올 시즌 110경기 타율 3할2푼1리(393타수 126안타) 41홈런 103타점 87득점 79볼넷 122삼진 출루율 .452 장타율 .702 OPS 1.154를 기록 중이다. AL 홈런·타점·출루율·장타율 1위, 볼넷 2위, 타율 3위, 득점 4위, 안타 5위에 오르며 2022년에 이어 두 번째 AL MVP가 유력하다. 산술적으로 59홈런 페이스라 2022년(62개) 이후 2년 만에 또 60홈런도 기대할 만하다.
애런 분 양키스 감독은 “우리는 위대함을 보고 있다. (저지의 등번호) 99번이 하는 일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라. 베이브 루스, 미키 맨틀, 루 게릭, 조 디마지오 등 저지가 해낸 많은 일들과 얽혀있는 이름들을 자주 들었을 것이다. 때로는 우리가 가진 것에 감사하기 위해 노력한다”며 저지의 존재를 새삼 고마워했다.